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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biya Sep 29. 2023

[1] 누군가의 시작, 봄 (4)

우리의 제철

(1) 상수의 봄 (과거) -2

연희와 두 번째 만남 이후 맛집만 가득했던 상수 머릿속엔 오직 연희만 남아있었다. 연희의 오늘의 한 끼는 무엇일지, 오늘도 혼자 먹었는지, 만약 누군가와 함께 먹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인지, 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그녀의 머릿속에 1퍼센트라도 상수가 차지하고 있는지 궁금해 휴대폰을 열어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며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연애라고는 아주 짧게 누군가와 했었고, 연애의 감정이 뚜렷해지지 않았을 때 헤어져 모태 솔로에 가까운 상수의 연애 세포가 흐릿해졌을거라 생각했는데 상수는 이게 어떤 감정인지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어려울 뿐이었다.


상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상수의 마음은 연희에게 전송이 되었다. 고민을 길게 할수록 상수는 연희와 더욱더 만나고 싶고,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주꾸미 만남 이틀 후 상수는 용기를 내 연희에게 연락을 했고, 답장 없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상수는 초조해졌다.     

“답장 안 오면 어떡하지?”

“아, 됐어! 답장 안 온다고 해서 뭐! 내가 손해 볼 게 뭔데!”

“내가 뭘 잘못했나..?”     

급기야 여러 감정을 드러내며 혼잣말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르륵. 진동이 울렸고, 상수는 바로 휴대폰을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홍대>>

[송상수, 오늘 뭐 해?]


지금 이 순간, 초대받지 못한 손님 홍대였다. 짜증 섞인 손짓으로 휴대폰을 소파 위에 집어던진 상수는 다시 휴대폰을 주워 연희와의 톡방을 열어본다. 1이 사라졌는지 확인을 하던 찰나에 1이 사라져 바로 톡방을 나오고,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놀라 휴대폰을 다시 소파에 던져버린다.     


연희>>

[네, 안녕하세요! 오늘 한 끼는 뭘 먹을까 고민 중이에요]


드르륵, 1이 사라지고, 바로 답장이 왔다.

기다렸다가 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상수의 마음은 급하다.  


상수>>

[냉이 된장국 어떠세요?]

연희>>

[오! 냉이 된장국 좋네요. 감사해요.]

상수>>

[네, 맛있게 드세요!]


마무리 짓는 연락을 하고, 바로 후회한 상수는 온갖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다시 연락할 틈이 안나 정통으로 부딪힌다.     


상수>>

[사실 이번주 토요일 뭐 하시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습니다.]


본론을 던졌다.

벌써 냉이 된장국을 위한 냉이를 캐러 간 건지 답이 한참 없었다.     


연희>>

[이번주요?]

상수>>

[네. 별일 없으시면 혹시 저랑 노실래요?]     


앞에 연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메신저로 대화할 뿐인데 자세를 고쳐 잡고, 거울을 한 번 보고 몰골을 확인하는 상수다.    


연희>> 

[좋아요. 근데 뭐 하고요?]


상수의 눈에 연희의  ‘좋아요’가 2배가 커져서 보였다.

주꾸미를 먹었을 때 연희가 이야기했던 “전 프랜차이즈 보다 그 가게만의 느낌이 나는 곳이 좋아요”라고 했던 게 떠올라     

상수의 맛집 지도를 열어 연희가 좋아할 만한 장소 리스트를 추려 상사에게 회식 장소 리스트를 보내듯     

블로그 리뷰 하나, 간단한 설명 하나해서 연희에게 보내고, 결재를 기다린다. 

         


상수>>

[#놀거리

[뮤직플렉스]

: lp로 음악 듣는 곳       

#먹을 것

[oo삼겹살]

http:// www. 00 삼겹살 리뷰

: 푸짐한 미나리와 삼겹살 조합을 먹을 수 있는 곳.     

[oo피자]

http:// www. 00 피자 리뷰

: 한옥 인테리어에서 피자와 맥주를 한 번에 즐길 수 있음.]     

연희>> 

[우와.. 혹시 서울 가이드세요?.. 미나리 삼겹살 좋아요! 봄이니까요]

상수>>

[네! 그럼 토요일 오후 4시 괜찮으세요?]

연희>> 

[네네. 그럼 어디서 뵐까요?]

상수>>

[인사동 어떠세요?]

연희>> 

[네! 알겠습니다! 그때 뵈어요.]


더 연락하고 싶었다.

냉이 된장국을 정말 먹을 건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상수는 토요일에 연희와의 만남이 있으니 서두르지 않도록 했다.     

연희가 가고, 홍대에게 전화를 건다.

“홍대야, 나 이번주 토요일에 그 여자 만나기로 했다.”

[누구? 주꾸미?]

“어어, 아씨, 그렇게 부르니까 좀 그렇잖아. 연희 씨야.“

[그래 주꾸미 씨, 주꾸미 씨가 만나쟤?]

“아니, 내가 먼저 했지“

[근데 지금까지 밥만 먹은 게 다인데 뭐가 좋아?]

“좋은 건 느낌이야 새끼야. 네가 사랑을 아니?“

[모태 쏠로인 너보단 두 달 전까지 연애한 내가 잘 알지 않겠니?]

“야 100일은 만났다. 근데 만나자고 하는 거 보면 연희 씨도 나한테 관심 있는 것 같지?“

[음.. 그럴 수 있지. 네가 만약 먹는 걸로 미끼로 안 던졌으면.]

“그냥 미나리 삼겹살 이야기를 꺼내긴 했어.“

[네가 아니라 미나리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별한 지 얼마 안 됐다고, 약 100일의 연애를 한 상수를 놀리는 못된 심보를 가진 홍대다.     

“아 됐어, 끊어.“

[야야 장난이야. 잘해봐! 너 오랜만이잖아]     

토요일 오후 4시, 인사동.

상수는 연희가 한 끼도 못 먹었을 것 같아 식사부터 하자고 했지만 연희는 미나리 삼겹살보다 LP 듣는 곳이 너무 기대된다며 뮤직 플렉스부터 가자고 했다. 뮤직 플렉스는 예상과 달리 어수선하게 LP들이 놓여있었고,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려면 두더지처럼 LP소굴을 파내야했다. 상수와 연희는 서로 듣고 싶은 LP를 들고, 만나자고 했고 흩어져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았다. 상수는 한눈에 좋아하는 가수 ‘밥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가 들어있는 밥딜런 명곡이 모여있는 앨범을 찾았고, 연희 쪽을 바라보았다. 두더지 연희는 아직 LP소굴을 뒤지고 있고, 상수는 연희에게 방해가 될까 더 찾는 척을 하다가 연희에게 다가가 연희가 고민하는 앨범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이거 명반이예요“     

연희는 들고있는 LP중 상수가 명반이라고 한 LP를 골랐고, 그건 히트곡 ‘희망사항’이 수록된 변진섭 2집이었다.

두사람은 나란히 앉아서 한 LP를 턴테이블에 놓고, 두 헤드폰을 동시에 꽂을 수 있는 구멍에 각각 헤드폰 선을 꽂았다. 바늘이 LP판을 콕 찌르면 헤드폰 라인을 따라 귓구멍까지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곳. 여긴 온통 커플뿐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 그들이 고른 노래를 듣고 있을 것이다. 상수와 연희는 멀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붙지도 않은 그 간격을 유지하며 노래를 들었다. 두 사람이 고른 앨범들은 요즘 앨범과 달리 한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이 많았고, 다 들어볼 수 없으니 서로 듣고 싶은 노래를 골라 함께 들었다.     

이렇게 노래를 긴장하며 들었던 때가 있었나.

상수의 왼쪽 어깨가 연희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고, 상수는 자신의 몸이 기울어져 있으면서 연희의 몸이 자신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고 느꼈다. 연희는 그런 상수가 부담스럽지 않은듯 노래를 들으며 “이 노래 들어봤었어요!” 하며 흘러나오는 노래에 따라 발을 앙증맞게 움직였다. 훗날 연희도 그때를 이야기하면서 주변에 온통 몸을 붙이고 있는 커플들 뿐이라 담이 올 정도로 오른 쪽 어깨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었다고 했다.      

상수는 거의 연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외롭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하지 않고, 때가 되면 누군가 나타나겠지 생각한 상수는 이 시대 얼마 안 남은 운명론자였다.

인연이 왔다가 바람처럼 스쳐가도 그것도 운명이겠거니 생각했다. 오늘의 상수는 밥딜런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의 취향을 얼굴만 봐도 설레는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 이게 운명의 형태라는 걸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슬쩍 연희를 바라보았다. 연희의 속눈썹이 이렇게 길었구나 흘러나오는 노래에 발을 흔들어 연희의 몸도 흔들렸고 짙고 긴 속눈썹도 리듬에 따라 떨리고있었다.

상수의 마음처럼. 상수는 지금 이 순간 너무 좋을 뿐이었다.     

노래 몇곡 함께 들었을 뿐인데 더 가까워진 두사람.

두 사람은 미나리 삼겹살 집에 가면서 끊이지않는 대화를 했다. 아니 연희 혼자.

연희는 바지락과 주꾸미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밥 딜런의 노래에 섹소폰 소리는 항상 들어가 있는 것 같다며, 변진섭 노래는 ‘희망사항’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같은 앨범에 있는 노래 ‘숙녀에게’ 멜로디가 자꾸 생각이 난다고 했고, 다른 노래 ‘로라‘ 노랫속에서 변진섭이 애타게 부르던 ’로라‘가 외국인일지 변진섭이 사랑했던 사람의 애칭일지 이것도 아니면 누구일지 궁금하다고 했다. 모두 밖에 나와 놀고 싶은 계절, 봄의 토요일이라 그런지 어딜 가나 길거리엔 사람들이 많았고, 미나리 삼겹살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죠. 기다리기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상수가 이 많은 사람들을 모두 인사동에 집합시킨 것도 아닌데 연희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다른 곳 갈까요?”

상수의 걱정과 달리 연희는 쿨하게 제안한다.

“미나리.. 아니어도 괜찮아요?”

상수가 음식에 진심인 연희가 고른 미나리가 이 만남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 조심스레 물었다.

“아 하하하, 저 미나리 못 먹으면 병 걸리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 리스트에 있던 피자집 갈까요?”

미나리의 특유의 향처럼 연희만의 목소리로 웃으며 쿨하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상수는 연희도 자기와 같은 마음일까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좋아요! 여기 근처일 거예요”

상수는 곧바로 지도 어플을 켜서 피자집으로 안내한다. 피자집 안에 들어가자 연희는 가게가 너무 예쁘다는 말은 연발했고, 상수는 연희의 표정을 보고, 그제야 긴장된 얼굴 근육을 풀었다.     

“괜찮으세요?”

“네네! 저 피자 엄청 좋아해요.”

주문한 피자와 맥주가 나오고, 둘은 처음으로 음식이 아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저.. 혹시 궁금한 거 물어봐도 돼요?”

“네네 뭔데요?”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저랑 잘 맞는 사람이요. 이상형이 의미가 없어지는 때가 오더라고요.”

상수는 연희의 대답을 들었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했다.     

“상수 씨는요?”

연희도 상수의 이상형을 물었다. 상수는 남녀가 만나서 서로의 이상형을 물어보면 서로에게 마음이 있다는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 순간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저는.. 사실 연희 씨예요”

“네?”

연희의 눈이 커졌다.

“아.. 연희 씨가 제 이상형이에요”

”아.. 하하 감사.. 감사해요. “

세 번의 만남에서 볼 수 없었던 연희의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고, 상수는 내가 너무 오버했나 걱정했다. 하지만 입이 떼어진 김에 할 말은 꼭 했어야 했다.     

“연희 씨는 왜 연애 안 하세요? “

“저 연애 안 하는 것처럼 보여요?”

연희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던 상수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고, 머릿속엔 맥주의 탄산이 보글보글 끓다가 김이 새기 시작했다.

상수는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충분히 티가 난 체로 물었다.

“연애하고 계세요?”

“아니요. 농담이에요.”

상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연희에게 다시 이유를 묻는듯한 고갯짓을 한다.

“사실 소개팅도 하고 했지만 괜찮은 사람 만나는 게 힘들잖아요. 요즘.”

“맞아요.”

상수의 ‘맞아요’를 끝으로 둘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가 상수의 헛기침이 적막을 깼다.     

“흠흠, 맞아요. 아까 LP듣는 곳처럼 세상엔 많은 사람들은 있지만 거기서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서 듣는 게 힘든 것처럼요.”

“맞아요! 사실 어떤 걸 들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도 아까 들은 노래들은 다 좋았어요”

“근데 저는 찾았잖아요. 한 번에.”

“아 맞네! 진짜 어떻게 한 번에 찾았어요? “

“딱보였죠.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은 것 같아요. 전.”

상수가 연희를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였고, 연희는 ‘밥 메이트’ 상수가 다른 역할도 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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