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제철
(1) 상수의 봄 (현재) -2
“홍대야, 뭐 하냐?”
상수는 재료 손질을 끝내놓고, 나란히 위치해있지만 반대 상황에 있는 홍대의 꽃집을 익숙하게 찾아간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축하하기 위한 꽃다발을 만들고 있는 홍대가 고개를 들어 상수를 쳐다본다.
홍대는 상수의 20년 지기 친구로 이 골목에서 제일 잘나가는 꽃가게 사장님이다. 이 골목에 위치한 가게가 홍대의 꽃집, 상수의 식당만 있다는 건 함정이지만. 홍대가 상수보다 먼저 꽃집을 차렸고, 꽃집 옆에 있던 카페가 인플루언서 SNS에 올라간 후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확장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자 바로 상수에게 여기 좋은 자리가 났다며 연락했다. 해방촌엔 언덕길이 험난해서 가기 어려운 곳들이 많지만 이 골목은 유난히 험난해서 월 임대료가 매우 낮은 것도 상수의 구미를 당겼고, 무엇보다 카페가 잘 돼서 나갔다기에 좋은 기운이 있을 것 같았다.
홍대는 식당 운영 관련자이기도 하다. 홍대의 엄마는 잘 나가는 순댓국집 사장님으로 홍대, 신촌, 안암, 신림 등 각 대학가에 홍대의 엄마 얼굴이 각 대학교 총장 얼굴보다 더 유명하다는 썰이 있을 정도로 장사의 신이다. 홍대의 엄마가 만약 순댓국 장사를 안암에서 시작했으면 홍대의 이름은 안암이 됐을 거다.
“오늘은 무슨 요리해?”
“바지락 솥밥. 바지락이 제철이라 엄청 사왔잖아~”
“내가 여기 오는 손님들한테 옆 식당 맛있다고 소문 내는 것 알지? 곧 손님들 몰아닥친다 너. . 준비 단단히 하고 있으란 말이야!”
190cm의 커다란 몸으로 작고 소중한 꽃들을 만지는 것도 볼 때마다 새로운데 넙대대한 얼굴을 구겨가며 윙크하는 홍대의 얼굴 또한 볼때마다 새롭다. 상수는 고맙다는 말을 생략한 체 1인 테이블 위에 놓을 꽃들을 고른다. 상수가 재료 손질을 마치면 항상 홍대 꽃가게에 와서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위한 꽃들을 사고, 홍대는 다른 꽃들과 섞어서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게 둘만의 일상이 된지도 두달이 되어가고 있다.
“여보세요? 네. 저 이홍대 맞습니다.”
“아 정말요? 네네! 감사합니다.”
상대가 누군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상수는 홍대의 전화 내용인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까 상수를 향해 윙크를 했듯 모든 얼굴 근육을 이용해 웃는 홍대의 표정을 보고, 그 전화가 어떤 전화인지 눈치 챘다. 홍대는 꽃가게 사장님이자 단역배우로 활동 중이다. 홍대의 꿈은 엄마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고, 꽃가게 사장님으로서가 아닌 연기자로서 말이다.거대한 몸으로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 역할,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 등 대부분 힘쓰는 역할이었고,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다. 단역 배우라 불안정한 수입때문에 꽃꽂이 취미를 살려 이 골목에 꽃가게를 차리게 된 것인데, 함께 촬영했던 배우들과 찍은 사진, 배우들의 홍보 덕택에 꽃가게가 잘 되고 있어 배우의 꿈을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전화를 끊고, 바로 상수에게 안기는 홍대다.
“나를 꽃처럼 대해주지 않을래?”
평소 그의 에너지 10% 이상을 쓰면 꽃들이 다 꺾일까 노심초사하면서 꽃을 만지면서 20년지기 친구, 상수를 안을 땐, 그리고 지금처럼 행복할 땐 100% 이상의 에너지를 쓰는 듯했다.
“상수야, 나 사실 지난번에 가게 문 닫고, 오디션 하나 보러갔거든..근데 거기서 연락왔어!”
“너 그만둔 줄 알았는데 잘 됐다! 무슨 역할인데?”
“씨름 영화인데 씨름부 코치! 내가 좋아하는 감독님 영화라 꼭 해보고 싶었거든.”
“오~ 비중 좀 있겠는데~ 그럼 꽃가게는 쉬어야하는건가?”
“아니, 그래도 매일 촬영하진 않을 것 같아. 잘됐지?”
“응 너무 잘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거 나 공짜로 줘!”
“당연하지~ 또 필요한 꽃들 다 가져가! 기분이다!”
만약 사람이 날 수 있다면 무거워서 상수보다는 낮게 날 것 같은, 어쩌면 아예 못날 것 같던 홍대가 오늘 날았다. 상수는 놓을 수 있음에도 놓지 않고, 매달리는 홍대가 어쩔 땐 미련해보였는데 홍대가 나는 모습을 보니 오늘도 손님이 올지 안올지 모르는 식당에 매달리는 자신의 모습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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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살아나게 하는 봄도 그의 생명력을 다하는 때가 온다. 봄은 또다시 찾아올 그때를 기약하며 기운을 다하고 있었다. 상수 식당은 너무 수줍어서 늦은 봄에 피는 작약처럼 봄이 다 갈 때쯤 수줍게 꽃을 피워냈다. 상수의 식당은 홍대의 꽃가게처럼 성공스름했다. 해방촌에 있는 식당의 아르바이트생들이 브레이크 타임 때 교대로 상수 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왔고, 그때문에 상수식당의 브레이크타임은 다른 식당보다 1시간 늦었다. 다수의 무리에서 해방되고 싶어하는 해방촌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고, 상수의 손맛은 그의 인생과 달리 기복이 없어 그들을 단골 손님으로 만들었다. 성공을 했다고 말을 하기엔 아직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성공스름했다고 하자. ‘스름하다’는 빛깔이 옅거나 그 형상과 비슷하다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어떤 봄에 처음 만났던 그녀가 자주 쓰는 말이었다. 그녀는 상수와 만날 때 상수에게 다 맞춰주며 상수스름했지만 먹을 때만큼은 확실했다. 먹는 게 재미없다며 하루에 한끼만 먹던 그녀는 한 끼를 먹을 때 가장 완벽한 배부름을 추구했다. 상수는 그녀를 만나며 사람도 음식도 때가 있음을 알았다. 인간보다 제철 식재료들은 정확해서 그들의 제철일 때면 항상 시장 매대 앞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제철 식재료를 이용한 식당을 오픈했다.
식당을 오픈할 때 그녀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금방 사라졌다. 마치 방청소를 할 때 서랍에 있는 걸 꺼내는 것도 모자라 서랍장까지 빼서 정리하는 것처럼 기억 속 상수스름했던 그녀를 모조리 다 꺼내놓았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모두 잊기엔 아쉽고, 그렇다고 바깥에 두기엔 계속 생각이 날 것 같아 다시 서랍을 그대로 서랍장에 끼워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끼워넣을 때 레일 하나가 잘못 끼워졌는지 그 뒤로 서랍은 꺼내지지 않았고, 영영 열지 못할 것 같은 그곳에, 그걸 다시 열기엔 마음을 크게 먹어야하는 그곳에,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아 그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잊히는 그곳에 그녀를 두게 되었다.
브레이크 타임 때 홍대 꽃집에서 가져다놓은 작약이 그 공간에 어우러졌을 때 익숙한 손님 한명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상수가 1인 테이블로 안내하자 손님은 이 식당이 익숙한 듯 “저 일행이 있어서요.”라고 말하며 몇 없는 2인 테이블로 향한다. 사실 상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일행과 왔었고, 그 일행은 매번 바뀌었고, 요일과 시간도 매번 달랐다. 같았던 건 그녀의 옷뿐이었다. 몇 평 안되는 상수 식당이라 오픈 주방에서 그들의 말소리가 들려 살짝 들어보면 그녀는 상수 식당에서 소개팅을 했다. 세번쯤 그녀가 매주 한번 소개팅을 하고 며칠동안 안보여서 마지막 소개팅을 한 사람과 잘된 줄 알았는데.. 새로운 남자가 가게에 들어온다. 그 남자는 문 앞에 서있던 상수에게 고개를 까닥 인사하고, 휴대전화를 만진다. 먼저 왔던 여자가 휴대폰을 봄과 동시에 손을 들고 그 둘은 인사를 한다.
“혹시.. 백소진 씨 맞으시죠?”
소진이 일어나 인사한다.
“네, 안녕하세요. 백소진입니다.”
“안녕하세요. 소개남입니다.”
분명 상수의 귀엔 남자의 이름이 아닌 소개남이라고 들렸다. 아니, 상수는 둘의 모습을 보고, 역시나 소개팅이라고 확신했고, 흥미진진하게 그들을 관찰했다. 상수 식당에 흔하지 않게 둘이서 오는 소진이다.
미나리 보리새우 전, 된장 냉이 오일 파스타, 전통주 한 병.
늦은 오후, 소개팅을 하는 두 남녀의 소개팅 메뉴.
향긋한 봄나물 대표주자 미나리와 보리새우의 조합은 모두에게 유명한 S/S 시즌 대표 찰떡 조합이고, 냉이 된장찌개로 완벽한 궁합을 익히 증명한 둘을 파스타로 만들었다. 찰떡 궁합끼리 만난 두 메뉴처럼 저 둘도 잘 맞을지 궁금해지는 상수다.
오픈 주방에서 상수가 요리를 시작하고, 기름, 버터냄새와 함께 그들의 어색한 침묵에 칙칙 볶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빨리 먹고 싶네요” 소진이 먼저 침묵을 깼고, 남자는 소진의 말에 리액션으로 답했다.
“쉬실 때 주로 어떤 걸 하세요?”
남자의 질문에 소진이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상수가 먼저 속으로 대답한다.
‘예쁜 카페 가는 걸 좋아해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상수의 속 대답이 소진의 대답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음식이 완성되고, 상수는 오후 장사 첫 손님인 두 사람을 위해 사랑스러운 색깔의 그릇을 꺼냈다. 상수 눈에, 손에 걸린 접시가 각각 분홍색과 하늘색의 파스텔 톤 접시였는데 이 색깔은 너무 분홍색이지도 너무 하늘색이지도 않은 분홍스름, 하늘스름해 봄을 색깔로 표현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이 흥미로운 상수는 예쁘게 담긴 음식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되돌아올 때 네 걸음이면 될 거리를 여덟 걸음으로 보폭을 줄이고, 그들의 대화를 조금이라도 들으려고 노력했다.
두 사람의 첫 시작일 수 있는 설레는 순간을 보고 있노라니 상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어떤 봄에 만났던 그녀가 희무스름하게 나왔다. 뚜렷한 색깔보다 스름한 파스텔 톤 색깔의 옷을 잘 입었던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