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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biya Sep 25. 2023

[1] 누군가의 시작, 봄 (1)

우리의 제철

(1) 상수의 봄 (현재) -1  

해방촌 입구에서 쉬지 않고, 15분 동안 언덕길을 쌩쌩 지나다니는 차들을 피해 길 언덕을 오르다 보면 1층에 정형외과 건물이 나오고, 그 옆에 정육점 쪽으로 발길을 두면 차 한대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좁은 길이 나오고 그곳으로 쭈욱 가보자. 밥 냄새보다 꽃 향기로 먼저 사람들의 시선, 아니 코를 자극하는 그 골목길엔 꽃가게와 식당이 나란히 있다.       

해방촌에 오는 젊은이, 커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꽃을 좋아하는지 꽃가게엔 항상 사람들이 바글바글하지만 그 옆에 막 오픈한 식당은 오픈빨도 겪어보지 못한 체 그렇게 오픈한지 한달이 되어가고 있다.           

식당 사장은 송상수. 상수의 이름 초성 ‘ㅅㅅㅅ’처럼 굽이굽이 언덕을 오르고, 언덕의 끝자락도 아닌 더 깊이 들어가야 나오는 식당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해방촌에 식당을 낸 게 기적일 정도로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자신있었다. 이름처럼 항상 일정하게 살지 않고, 이름의 초성처럼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살았지만 상수의 손맛은 기복 없이 항상 좋았으니 분명 상수의 손맛은 사람들을 이끌거란 걸.             

제철 식재료로 만드는 밥 집 ‘상수 식당’. 식당 앞에 놓여 있는 작은 칠판엔 오늘의 메뉴가 가장 크게 쓰여있고, 그 밑엔 그보다 작은 글씨로 ‘혼자 오신 손님 환영합니다’, ‘가능하면 말동무 해드려요’, 그 밑에는 ‘죄송합니다. 3인 손님 이상은 받지 않습니다’ 친절한 듯 단호하고, 오지랖 넓은 이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정말 3명 이상이 가면 받아주지 않고 베길까 싶은 점심시간에도 텅텅 빈 상수 식당이다. 이 식당에 2인 손님까지만 받겠다는 베짱을 가진 이유는 딱 하나. 혼자 밥 먹길 좋아했던 누군가가 말했던 한마디 때문이었다. 

“혼자 식당에서 먹을 때도 어색하지 않게 먹었으면 좋겠어”      

상수가 식당 오픈 전 테이블을 놓을 자리를 정할 때도 1인 테이블의 위치를 가장 고심했다. 

밥을 먹다가 무심코 앞을 보았을 때 예쁜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혼자 온 손님들의 테이블 맞은편엔 홍대 꽃집에서 가져온 꽃들이 놓여져 있었고, 상수가 이곳 저곳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프린트해 액자로 걸어놓았다. 작은 식당, 총 6테이블만 있는 공간에 ‘간혹’ 2인 테이블이 보인다는 표현이 우습긴 하지만 2인 테이블이 두 개만 딸랑 놓여있었다. 2인용 테이블이 위치한 곳은 1인 테이블보다 덜 예뻤는데 그 이유는 누군가와 마주보며 밥을 먹을 때 공간의 아름다움을 크게 느낄까 싶어서였다.      

사람들은 상수의 이런 세심한 마음을 아직 몰랐고,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면 공양하는 스님, 전도하는 기독교 여인들, 상수 식당 옆 꽃집 사장 홍대, 옆집에 사는 건물주 할머니가 한 달 동안 찾아온 사람 전부였다. 오늘의 요리는 바지락 토마토 솥밥. 바지락 토마토 솥밥은 상수가 가게 오픈하기 전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에게 해줬던 백전백승 요리이다. 바지락 해감을 하고 있는데 상수가 기다리던 손님이 아닌 사람이 들어온다. 

“에휴 쯧쯧쯧.. 오늘도 내가 첫 손님이여?”     

오픈식 주방에서 식재료 다듬다가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은 상수를 보자마자 매번 똑같은 말로 상수의 속을 긁는 건물주 할머니다. 식당을 오픈하고, 일주일 동안 오전 7시부터 나와 재료 손질을 하던 상수는 매일 가게를 들르는 할머니를 보고, 멋있게 입고, 아침부터 어딜가는지 물어봤었다. 3일을 물어보고, 깨달았다. 화려한 의상 옆에 감춰진 할머니 손엔 장바구니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봄 꽃들이 다 여기에 납치된 것 같은 플라워 패턴의 샤 스커트에 연두색 뾰족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아직 오픈 전이잖아요~ 그리고 돈을 내야 손님이지! 나한테서 돈 가져가기만 하면서~”

“하하 그렇네”

“멋쟁이 누나! 시장가요? 아무리 봐도 시장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건물주 할머니는 세월이 흐른 피부의 흔적들을 지우려고 열심히 화장으로 노력했지만 ‘누나’소리에 즉각 반응하는 입가의 주름은 숨기지 못하는 눈치다.      

상수는 다음에 ‘애기야’ 호칭을 시도하기로 마음 먹지만 열 손가락에 반짝 반짝 빛나는 금반지를 모두 끼울 정도면 건물주 할머니를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은 확실한 월세뿐이란 걸 안다. 왠지 이번달도 가게 돈 통이 아닌 상수의 비상금 통장에서 나가게 생겼다. 건물주 할머니가 가게에 들어와 항상 앉던 가장 좋은 자리에 앉는다.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땐 할머니가 가게에 찾아오는 게 불편했지만 지금은 본인 아닌 누군가가 가게에 앉아있는 게 나쁘지 않다.           

“오늘 바지락 솥밥할건데 드실래?“

놓치지 않고, 은근슬쩍 가장 강렬한 플러팅인 반존대 기법을 쓰는 상수다. 역시나 씨알도 안먹혔다.     

“안돼. 오늘 제임쓰가 나 초대했어”  

“제임쓰? 지난주엔 미스터 폴 아니었어요? 누나 또 바뀌었어?”     

“폴은 애가 싸가지가 없어.”

“대한민국에서는 싸가지 없으면 안되지 암. 어떻게 싸가지가 없었는데요?”     

“처음엔 뿌리가 이태리라 스파게티처럼 흐느적 거리면서 부드러운 놈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김치찌개처럼 매워.. 불같더라고. 내가 한평생 불같은 영감탱이랑 같이 살아서 욱한 건 아주 지긋지긋해!”     

바지락이 소금물을 뱉어내듯 집주인 할머니 입에서 폴에 대한 불순물을 쏟아져나온다.     

반백년동안 한국 영감이랑 같이 살아봤으니 이제 글로벌하게 외국 영감들 만난다고 했던 집주인 할머니, 앨리스. 앨리스와 상수가 알게된 약 두달간 찰스, 폴에 이어 제임쓰까지. 상수는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자하는 앨리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다음번엔 여기도 데리고 와요! 남자는 남자가 봐야지 제대로 알지. 외국 영감이어도 남자는 다 남자잖수?”      

“내가 남자는 너보다 더 많이 만나봤어! 아무튼 나 가볼게. 월세 내려면 부지런히 일해!”     

처음과 끝이 모두 ‘월세’ 이야기라니.. 상수는 바깥에 나가서 전단지라도 돌려야하나 싶지만 

그러다 이 가게에 손님이 들어오면? 이라는 생각에 재료 손질을 마저하는 상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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