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그리운 것을...
“엄마, 엄마아!”
밤 열한 시경 잠들었던 셋째가 울부짖으며 나를 찾는다.
오늘도 이 방 저 방을 널뛰어야 할 것 같다. 자다가도 엄마가 없으면 엄마가 올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우는 셋째 때문에 하루가 참 길다. 몇 번 무시해 보기도 하고 울다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려도 봤지만, 정말 말 그대로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다. 잠을 자다가 아빠가 없다며 울부짖는 둘째의 목소리도 들린다. 다시 셋째 몰래 아이들 방으로 가 둘째를 안아 달래고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새벽이 밝아오자 첫째가 자신의 침대 옆에 와 있는 엄마를 보고 안긴다. 오른팔에는 첫째 재모를, 왼쪽에는 둘째 건모를 안고 싱글 사이즈 침대에 옹기종기 붙어 누워 있다. 재모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가 보여 좋았는지 연신 ‘엄마가 제일 좋아’라며 내 팔에 얼굴을 부비고 있다.
“엄마, 나 오늘은 안방에 안 가고 침대에서 혼자 잤어요.”
“그러네, 씩씩하게 혼자 잘 잤네. 근데 밤에 엄마한테 오고 싶은데 참은 거야, 아니면 스스로 자고 일어나는 게 괜찮은 거야?”
아이에게 묻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참은 거야.”
순간 아차 싶었다. 분리 수면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할까, 아니면 세 아이 모두 분리 수면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이른 수면시간은 일찍 자고 일어나는 습관을 들일 수 있어서 6년간 빼먹지 않고 지켰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분리 수면을 시작하는 것이 내 아이들에게 맞을지는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 서지 않는다.
내가 애써 재모에게 분리 수면을 강요하지 못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쌍둥이가 태어나던 해, 우리 다섯이 한 방에 누워 잠들던 그날. 세상 모든 피로가 내게 몰려와도 그것마저 잊게 만들었던 ‘함께’의 마법을 느꼈으니까.
이제는 다섯이 함께 있으려면 비좁은 침대에 억지로 몸을 뉘어야 하지만, 지금의 순간도 곧 그리워질 것임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거실에 이불을 깔고 함께 눕는다. 이따금 손을 뻗어 양옆에 누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발에 닿는 누군가의 온기를 확인하면서 불안해하지 않고 잠든다.
*본 글은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발췌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중순,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