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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Dec 23. 2020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오해에
얽매이지 않을 것

 “저기요.. 제가 휴대폰을 새로 바꾸면서 컴퓨터에 연결할 때 동기화 버튼을 잘 못 누른 것 같아요. 

  지금 사진첩 일부가 많이 지워졌는데, 다시 되돌릴 방법이 없을까요?


 “고객님, 혹시 동기화 완료를 하신 건지요?”


 “그건 잘 모르겠고, 제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사진첩을 보니 기존에 저장해둔 것이 모두 날아갔어요.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 도움 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어떡하죠, 이렇게밖에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


 “앗, 여기 아이들 신생아 때 사진이 많이 담겨있었는데요..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면서 울먹이고 있었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휴대폰을 최신 폰으로 바꾸면서 설정을 변경하는 과정에 벌어진 오류다. 휴대폰에 들어 있는 사진을 PC에 저장한다는 것이 버튼을 잘못 클릭했다. 쌍둥이가 태어난 이후, 첫째 재모가 함께했던 지난 일 년의 기록이 클릭 한 번으로 웹을 타고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상담원과 통화를 끝내고 두 눈에서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허무하다 혹은 허망하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허덕거리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휴대폰 사진기를 통해 아이들의 모습을 찍어 매일을 기록했다. 사진첩에는 대부분 아이들의 모습이었지만 사진만 봐도 내가 그날 한 일이 흔적처럼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전에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에도 그 안에 넣어둔 현금이나 신용카드보다 더 찾고 싶었던 것은 빛바랜 사진과 귀퉁이가 달아 헤어진 편지였다. 


소중하게 간직하는 오래된 것들에는 소우주가 담겨있다. 마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에 나왔던 기억의 구슬처럼 말이다. 그때 사진에 담긴 내 시선과 일련의 상황이 갖가지 기억을 더듬어 언제 그 장면을 들여다봐도 자연스럽게 그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원망스럽고 안타깝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최신 폰과 내 추억의 구슬을 맞바꾼 것에 대하여. 




문득, 친구가 최근 내게 물어본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제 막 출산의 강을 건너 이승으로 살아온 초보 엄마였다. 그녀는 물었다. 

“조리원에서 먹이던 분유를 집에 돌아와서도 먹이니?”

“경우에 따라서 다르지. 근데 보통 엄마들이 출산 전에 집에 챙겨둔 것이 있지 않을까.”

“아니, 내가 조리원에서 먹이던 분유를 집에서도 먹이고 있으니 조리원 사람들이 의아하게 보더라고.” 

  “왜? 그냥 먹일 수도 있고.. 다른 분유도 잘 먹는다면 그걸 먹여도 되는 거 아닌가?” 


짐작컨데, 조리원 사람들의 의아한 반응은 아마도 요즘 모유에 가까운 성분 좋은 수입 분유가 많은데 굳이 왜 국산 분유를 주고 있느냐는 말로 풀이된다. 보통 사람들은 가장 좋은 것은 단순하고 보편적인 진리처럼 가장 비싼 것이라는 등호를 갖고 있다. ‘왜 좋은 것인가’라는 해석도 너무나 많은 정보로 가려져 비싼 값을 주고 지불하는데 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물론, 가장 비싼 것에는 그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값이 저렴한 데에도 역시나 같은 맥락의 이유가 존재한다. 한데, 보통은 순수하게 가장 좋은 재료비만으로 비싼 값이 책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경제학에서 배웠듯이, 가격은 수요자의 기대심리 효과에 의해 값이 비싸지기도, 낮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곧, 정직한 가격이란 애초에 없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황이 없다는 키즈 산업의 경우 육아 용품에서 이 기대심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육아는 아이템 발’이라는 말처럼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려는 부모의 열망과 심리를 잘 파고든 셈이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이 과연 아이에게도, 내게도 정말로 제일 좋은 것일까. 


육아용품은 사면 살수록 끝이 없다. 아이가 커 갈수록 늘어나는 장난감을 보면 어느 순간, 장난감 사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처음에는 장난감을 사 달라고 아이가 조르고 때를 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연거푸 장난감을 사는 일이 좌절되고 나면 아이가 없는 장난감을 만들어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블록으로 긴 칼을 만들고, 장난감 통 뚜껑으로 방패를 만들며 플라스틱 시장바구니를 눕혀 축구 골대를 만드는 등 없는 살림살이에서 노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럴 때면 장난감을 사고 싶은 건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기 위해 아이의 니즈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장난감 사는 것을 멈춰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는 기존에 집에 있는 것을 창고에 넣어 두면서 2주일 혹은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꺼내 주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는 갖고 놀던 장난감이 사라져 당황하기는 했지만 곧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기 시작한다. 주기적으로 장난감이 바뀌는 상황을 인지하면서는 가짓수가 줄어든 장난감을 가지고 다른 놀이로 변형시킨다. 문득, 모든 상황을 다양하고 풍족하게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리치 헝거(rich hunger)라는, 결핍이 주는 긍정적인 시그널이 삶을 더 귀하고 감사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부족함은 서로 나누면 더 많이 나눌 기회를 갖게 한다. 그럼으로써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배우게 하고, 삶이 주는 진중함을 깨닫게 한다. 인생에서 ‘힘듦, 어려움’이라는 카테고리가 있기에 어둠 속에서도 뚫고 나갈 힘과 용기를 기르며 부족한 듯 사는 일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내가 편하기 위해 새로운 폰으로 기계를 바꾼 것이 내 가장 소중한 기억을 앗아간 것처럼, 어쩌면 아이에게 선사하는 풍족한 환경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을 스치 듯 아무렇지 않게 놓치고 사는 것은 아닐는지. 가끔은 가장 좋은 것에 대한 오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20.12.9 첫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가 나왔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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