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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Jan 13. 2021

관찰하는 엄마가 되도록 적정 경계선을 넘지 않을 것

[나만보시리즈] 어느 날, 우리는-홍나리, 안승준


출처: <어느 날, 우리는>_홍나리, 안승준/사계절출판사


언젠간 보겠지

알아볼 수 있겠지

모습이 달라도 알아볼 수 있겠지..

구름이 되든 철새가 되든 


오리가 되든 또다시 사람이 되든..

눈물이 나든 웃음이 나든.. 냄새가 나듯 그래서 생각이 나듯..

다시 보겠지.. 보이지 않더라도..

알 수 있겠지.. 너란 걸 알 수 있겠지..

꽃잎이 되든.. 뿌리가 되든.. 모래가 되든 또다시 사람이 되든..


       - 안승준 <어느 날, 우리는(We will see someday)> 중에서



이 가사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어느 날, 우리는>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배경음악에 나오는 말이다. 

언젠가 친한 지인의 번개로 북 토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기호가 많이 닮은 언니의 추천은 늘 재미난 것들이 많아 설렌다. 그 날, 그녀가 인도한 곳은 합정의 작은 책방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이 책을 만났다. 

 

길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 시작된 인연이 친구가 되고 훗날 죽음까지 이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가 홍나리가 가수이자 남편인 안승준과 함께 아이들에게 죽음을 슬픔이 아닌 삶의 과정으로 이해시키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따뜻하고도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상이 돌아가는 동안, 앞으로 아이들이 겪게 될 삶의 다양한 주제를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 더불어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영상이 주는 메시지와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이따금 피할 수 없는 삶의 명제를 맞닥뜨리게 되면 입은 무거워진다. 입이 무거워질수록 눈과 귀는 열려있다. 그리고 눈은 눈꺼풀로, 입은 윗입술과 아랫입술로 스스로 열고 닫을 수 있지만 귀는 계속 열려있는 것이, 그중에서도 가장 세심하게 들어 살펴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우리의 눈과 귀가 가장 에너지를 발휘할 때는 무엇인가 ‘관찰’할 때다. 그런데 눈을 감고 있으면 귀가 더 민감해지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과 밤에 잠을 잘 때면 불을 모두 끄고 자는데 어둠 가운데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한 번은 더운 여름 하원길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가져가지 않아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돌아온 적이 있었다. 재모가 연신 눈이 부시다며 투정을 하길래, 그러면 눈을 감고 엄마 손을 잡으면 목소리로 길을 안내해 주겠노라고 했다. 


아이는 새로운 놀이인 듯 보여 바로 응했고, 눈이 보이지 않는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까르르 웃어대며 집으로 돌아왔다. 보이지 않으니 엄마의 말에 의지해 걸어야 했고 우리는 보이지 않을 때 얼마나 귀를 잘 기울여야 하는지, 눈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보이는 것에 연연하느라 귀로 담아야 하는 것을 스치듯 흘려보내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은 재모의 수학 학원에서 면담을 하면서 한글을 좀 더 익히면 윗반으로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수 셈은 잘하기 때문에 한글만 보완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얼핏 들으면 솔깃한 말이었다. 어차피 아이는 이미 한글을 읽고 쓰고 있었고, 거기서 조금만 더 보완해 주면 글 밥이 많은 내용도 읽고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으니까. 그러면 ‘좀 더 빨리 많은 내용을 배우고 익힐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매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내 욕심과 기준에 관한 것이다. 아이의 교육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던 시절, 불안한 시간을 보낼 때에도 오히려 아이는 동요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이 불안해 뭔가를 더 해야 사그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유치원에서는 한글과 수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었고 아이도 잘 따라가고 있다고 했다. 그 시간을 당겨 조금이라도 빨리 갈 것인가,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의 성장 시계에 맞춰 천천히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학원 선생님의 말은 솔깃하고 그럴듯했다. 수업시간마다 아이를 지켜본 의견으로 아이가 나아갈 방향을 가이드해 준 것이니까. 아이를 다그치면 가능한 일이기도 해서 더 솔깃했고, 그만큼 아쉬웠다. 그러나 내 욕심의 잣대를 잘 재 봐야 했다. 가끔 남편은 초등학교 때 꼴등 좀 하면 어떠냐고 말하곤 한다. 우리도 다 겪어봤듯이 본격적인 공부의 시작은 중, 고등학교 때이지 않냐며 말이다. 그래도 꼴등은 엄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일등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중간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학습의 진도가 얼마큼 나갔느냐를 확인하기보다는 학습을 위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준비하는 단계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의 가이드를 거절했고, 재모는 더 이상 학원에 가지 않았다.  


이따금 세 아이 모두 성향이 각기 달라서 힘들 때가 있다. 특히, 요구사항이 모두 다를 때에는 하나씩 원하는 것을 해결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러나 아이마다 다르다는 것은 각자가 갖는 고유한 개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영역으로 인정했다. 다만,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에 끊임없이 관찰하며 살피는 것은 세 아이 모두에게 늘 같은 생각으로 변치 않는 마음을 주자는 다짐을 한다. 


아이가 호기심을 갖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우리의 욕심이 그 안에 녹아들지 않게 하는 것이 나와 남편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더불어 부모이기에 ‘우리 아이가 행복할 때’가 언제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자주 느끼는 것이기에 아이의 행복에 내 주관과 생각이 겹치지 않도록 애쓴다. 사소한 말에도 귀 기울여 주고 가능한 영역 안에서는 무엇이든 허용하는 것, 아닌 것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일관성을 유지하되 아이다울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 이것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남편을, 가족을 사랑하는 내 방식이자 소중한 것에 대해 애정을 쏟는 모습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qK_0Gw-ko



*위 글은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 북스)>에 실리지 않은 글로, <나만보 시리즈(나만 보기 아쉬운 글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 다양한 글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 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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