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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Jan 15. 2021

가족은 공들여 만들어 가는 것임을 가벼이 여기지 말 것

[나만보시리즈] 남편, 너는 내 아들이 아니야~

출처: 도시바 전구 광고_with 10 years of life 광고영상



남편이 TV 드라마에 나오는 등장 인물들을 보며 말을 건다.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손예진 같은데.. 누구지?”라고. 나는 기가 차서 말한다.

“손예진이야.. 그리고 또 옆에 남자 MC는 누구 같다느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누구지’하면서 궁금해 하지마!”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또 물어 볼라고 한 거?”

“뻔하지 뭐.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또 누군지 찾아야 하잖아.”

“아니, 안 찾으면 되잖아. 뭘 그걸 찾고 그러나..”

“누군지 모르면 괜히 궁금하자나. 궁금하면 누군지 계속 생각나고 못 찾으면 잠이 안온다고오~! 애들 낳으면서 기억력도 같이 출산해서 생각이 안나.. 어디 단역이나 조연으로 나온 사람인지도 알겠는데 정확히 드라마 제목이랑 이름이 생각이 안나...아오..”


결혼해 남편과 8년을 매일 붙어 살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생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때가 있다. 

'부부가 닮는다'는 말에는 표정만 봐도 텔레파시가 읽힐 정도로 신기가 발휘 된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요즘 나와 가장 친한 사람도, 내가 모든 것을 얘기할 수 있는 상대도 이제는 친정식구가 아닌 남편이다. 우리는 시시콜콜한 것조차 나누는 사이가 됐고, 소통은 자연스럽게 배려로 이어진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지치는 때는 기본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을 때다. 그 중에서도 ‘밥 때’와 ‘잘 때’를 놓치면 한여름 불쾌지수는 저리 가라 할 만큼 예민지수가 최고조에 달한다. 게다가 주말에는 두, 세 시간 새벽 쪽잠조차 온전히 자지 못한 상태에서 끼니까지 거르게 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배고픔과 설움의 시한폭탄이 곁에 있어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간 지나온 날들을 경험한 분노의 예고편이 파노라마처럼 한꺼번에 스쳐 지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남편도 나도 서로에게 둘 중 하나의 욕구는 꼭 채워질 수 있도록 서로를 살피는 일이 상대를 살피는 배려가 됐다.


한번은 쌍둥이 방에서 아이들과 잠을 자는 남편이 출근 시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볼멘 소리로 냉소를 가득 담아 불만을 쏟아 붙는다.

  “내가 밤에 어떻게 자는지 관심이나 있긴 해? 건모랑 형모가 뒤척이느라 요 사이 거의 밤새고 출근했다고. 통근버스에서 잠들어서 못 내리고.. 버스기사 아저씨가 나한테 제때 못 내렸다고 와서 뭐라고 화내고. 우리 회사에서 나만큼 육아에 많이 참여하는 아빠도 없다고!”하면서.


며칠 밤 잠을 설쳤다는 소리에 안쓰럽기도 했으나 아직도 육아에 참여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발상이 싫었다. 그리고 나는 곧 이렇게 쏘아 붙였다.

“그 통근 버스기사 아저씨 웃기네. 학생들은 공부한다고 고생한다고 깨워 줄 거면서 요즘 회사원들이 얼마나 힘든데 졸다가 못 내렸다고 짜증이야. 내리라고 말 한번 건네는 게 그리 힘든 일이야?! 버스 번호 뭐야? 몇 시에 탄 버스니?! 그리고, 내 주변에는 다 이만큼 하거든? 요즘 육아 안 하는 아빠가 어디 있니! 우리 자식인데 너랑 나 아니면 누가 키워. 집안일도 그래, 분리수거 너가 안 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내가 매번 왜 도와달라고 구걸해야 하니? 싱글 때처럼 하숙생으로 살 거면 본가에 가서 살지 왜 여기서 살아! 니가 내 아들이냐!”라고. 


그와 나만 존재하던 삶에 세 아이의 육아 비중이 높아지면서 우리의 싸움 빈도도 꼭 그만큼 늘어갔다. 그리고 남편은 종종 본인의 위치가 아이들보다 후순위로 밀려 나는 것에 대한 질투를 표출할 때가 있다. 우리는 첫째 재모를 통해 처음 부모가 됐고 쌍둥이를 통해 다둥이 부모로 거듭났다. 그 사이 남편도 나도 아빠와 엄마로 상당 부분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따금 남편이 건네는 어린 아들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얼얼하게 만든다. 그래서 남편이 아들인 척 내게 기대어 큰 아들 흉내를 내려고 하면, “너는 내 아들이 아니고 자식이 셋이나 있는 아빠야, 부모라고!!” 내뱉고, 속으로는 ‘제발 철 좀 들어라!’라고 외친다.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더니 못 알아 듣는 것 같아서 주기적으로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반복적으로 말했다. 아이들을 챙겨주는 것 말고도 빨래나 설거지를 할 때, 분리수거를 할 때도 심지어 주말 식사를 번갈아 챙기는 시간에도 강조하며 읊어줬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전했다. 


몇 달이 지난 뒤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화장실에서 재모랑 같이 샤워하는데 물이 너무 안 내려가더라. 그래서 내가 수챗구멍을 열어서 보니 다 네 머리카락이더라. 내가 머리카락 다 뺐다!”

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데, 그 말이 마치 ‘오늘 기념일이라 꽃다발을 준비했어’라는 말보다 더 감동적으로 들렸다. 집안일에 하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에게 나는 “고마워"라고 전했다. 육아에 있어서만 배려를 보이던 남편이 가사일까지 영역을 넓혀 주니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이 점점 함께 하는 일이 되었다. 


가끔 재모를 재우다가 깜박 잠이 들면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건조기에서 아이들 빨래 한 무더기를 꺼내 정리하고는 쇼파에 개어 놓고 밀린 설거지와 젖병을 씻어 놓는 신공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아내가 홀로 해야 할 집안 일이 아니라 세 아이를 돌보는 아빠와 엄마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일이 됐다. 일을 분담하면서 얻게 되는 부부간 파트너십을 시작으로 우리는 가사에서부터 아이의 생활태도, 학습, 관심사, 친구 등 다양한 것을 공유하고 나누게 됐다. 더불어 가족이란 피를 나눴다고 해서 그냥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애정과 노력을 기울여 보살피고 관찰해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 위 글은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 실리지 않은 글로 나만보시리즈(나만보기 아쉬운 글 시리즈)를 통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외 다른 글은 책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책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 브런치 독자 이벤트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링크: https://brunch.co.kr/@hzerow/32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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