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몰입 2022 06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영 Oct 18. 2022

상처와 같은 시속으로 멈추는 일

삶은 이미 예정된 서글픔의 서막을 부단히 이어가는 숙명의 굴레일지 모른다

세 아이의 저녁 운동으로 마무리되는 일요일 밤 11시. 

샤워 후 재모가 옷을 입으러 방으로 뛰어간다. 쿵! 

뛰지 말라는 말보다 소리가 앞선다. 복도를 다급히 걷는 아이의 발소리가 불안한 기운을 몰고 모습을 드러낸다.      


 “엄마..아..  아..아..아..”


목소리는 이미 단어로 의미를 전달하지 못하고 꺽꺽 목 뒤로 소리만 깔딱거리며 넘어간다.      


사고다! 


그리고 곧바로 눈에 포착된 붉은 액체.     

 ‘... 피다..’     


흐르는 피가 잠을 청하려던 숙면 세포를 앞질러 단숨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다시 또 납량특집이다. 대충 부딪쳐서 아프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이마를 타고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포착된다. 부딪친 부분이 패인 듯 찢어져 얼굴을 타고 피가 흐른다.      


2년전, 둘째 건모가 뒤쪽 머리가 찢어진 적이 있어서 겪어본 상처다. 매듭없이 맨질하게 쌓인 피부조직이 찢겨 살이 벌어지고 양 옆으로 꽃잎이 뒤집어지듯 내피가 드러난다. 그사이 흥건히 흐르는 피가 아이의 얼굴과 볼을 타고 흐른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지만 볼 때마다 익숙해질 수 없는 순간이다. 순식간에 눈물이 왈칵 올라와 연신 꿈벅거리며 찢어진 상처 부위를 살핀다. 그러나 예전에 찢어졌던 길이와 좀 달랐다. 더 길고 심지어 시작점은 움푹 패인 것처럼 보였다. 피가 고여서 깊이나 정도가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놀란 아이가 서럽게 울면서 내게 말한다. 

“엄마, 나 이제 죽어? 어? 수술해야 해?”  

   

몸을 타고 흐른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진 것을 보고 놀라 울부짖으며 묻는다. 그러고는 이제 곧 죽느냐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상처 부위를 파악하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연신 고인 눈물을 꿈벅이며 흘려보낸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다급히 “여보 수건 줘!”라고 외쳤다.      


다행히 건조기에서 바로 꺼내 따끈하게 소독된(소독됐다고 치자) 수건이 눈앞에 있었다. 상처 부위에 수건을 갖다 대는 순간, 벌어진 상처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이번에는 상처가 꽤 길다.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한도를 넘어 줄줄 흐른다.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연신 눈을 깜박이며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부여잡는다. 리듬을 놓친 눈커풀은 발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가 순식간에 뇌를 강타한다. 단숨에 머리끝까지 끓어오르는 분노의 향연이랄까. 욕이 터져나온다. 


“아C! 너는 정말!!”


절로 욕이 분출되는 급박한 순간은 우아하기를 거절한다.      


아이는 여전히 죽냐 사냐의 기로에서 통곡 중이다. 너는 생의 기로에서, 나는 찢어진 네 상처의 기로에 흥건한 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수건으로 지혈 정도를 살피려고 잠시 걷어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이 탄식처럼 터진다. 차오르는 눈물을 눈커풀로 연신 걷어내며 마음을 추스려야했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할 때였으니까. 아프고 놀랜 가슴보다도 지금은 속히 아이를 병원으로 안전하게 의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만 했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미간으로 부여잡고 잠시 숨을 멈춰 심장을 바짝 조인다. 연신 마르는 입과 온몸에 침착함을 총동원하는 일은 필사적이다.   

  

겪어볼수록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 누군가 다쳐서 피를 흘리는 일이 반복되는 순간이다. 아이는 아파야 큰다고들 하지만 육체가 찢기고 피 흘리는 아픔은 누구든지 살면서 덜 겪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럴 때마다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 그냥 건강하게만 커라’는 말이 절로 뇌 깊은 곳을 때린다. 출산 후 갓 태어난 아이에게 아프지만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는 당부는 성장한 후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다.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을 이성으로 붙잡는 시간은 꽤 고통스럽다. 바닥난 몸에서 비상 에너지까지 끌어모아 스트레스의 최고조를 간신히 넘겨야하니까. 죽을 듯 우는 아이 앞에서 미치도록 울고 싶은 마음을 동여매는 일은 가혹하다. 마음대로 울지 못하는 고통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한 번 울음이 터지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울 때와 울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하는 시간은 감정과 이성이 합심해 통제구역에 들어서야 한다는 점에서 힘겹다.      




흥분한 아이가 사실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대한 짧고 분명하게 말한다.      

 “재모야, 지금 머리가 찢어졌어. 네 말처럼 죽지는 않을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수술이 필요할지는 병원에 가 봐야 알아. 피가 멈춰야 하니까 지혈을 해야 돼. 

EBS에서 ‘호기심 딱지’ 봤던 거 기억하지?

피가 났을 때 몸에서 어떻게 피가 응고되는지. 

그거 생각하고 있어. 

네가 얼굴이 벌개져서 울면 머리로 힘이 가해져서 피가 더 나.”     


그제야 온 힘으로 울던 아이는 서서히 몸에 힘을 빼기 시작한다. 여전히 나는 눈을 깜박이며 가장 빠르게 응급실로 가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남편이 자동차 키를 가져와서 바로 나갈 채비를 한다. 나가려는 남편에게 아이가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여보, 상처가. 좀. 많이. 찢어진. 것. 같아. 걱정.되니까. 가서. 바로. 연락해줘.”     


덜덜 떨리는 목소리는 몸에 힘을 주어 말해야 소리로 전달됐다. 눈물을 욱여넣으며 아이에게 단호하게 사실만 일러주던 나는 순간,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경극을 하듯 앞뒤로 이성과 감성의 가면을 재빠르게 벗겨 쓰는 역할극을 하는 상황이라니.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을 어렴풋이 느끼는 소회는 극심한 피로였다.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자마자 눈앞의 상황을 목격한 쌍둥이는 우는 형을 보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미 밤은 깊었고 세 아이를 위해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 놀란 마음은 그대로 정지시킨 뒤 최대한 이성을 부여잡고 이동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을 확인한다. 잠이 서글한 쌍둥이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재모에게 스스로 지혈해서 최대한 빨리 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남편이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본인 머리를 수건으로 누르며 차에 오를 수 있는 아홉 살이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수십 번 되뇐 밤이었다. 나는 머리를 손으로 누른 채 발을 조금씩 떼서 이동하라고 알려줬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제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를 주문처럼 외치고 있었다.     


현관문이 닫히자 쌍둥이와 함께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도를 청했다. 우리 손을 떠난 일에 대해 누구에게라도 두 손 모아 빌어야만 했다. 건모와 형모의 기운을 빌어 재모에게 큰 탈이 없기를, 아빠가 침착하게 운전해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기를, 형이 크게 아프지 않기를. 다친 재모가 집 밖으로 이동해서야 마음 편히 울 수 있었던 우리 셋은 그제야 서로를 감싸 안고 소리를 낸다. 모아진 여섯 개의 손 위로 울음이 터진 형모의 눈물이 떨어진다. 그런 아이 모습에 나도 눈물이 복받친다.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건모의 작은 손이 닦아줬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담담히 형모의 등을 쓸어주는 건모의 위로.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인지한 상황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40여 분 후, 응급실에 도착한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재모의 상태와 치료에 대한 설명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한다. 아이는 예상대로 응급실에서 머리에 의료용 스테이플러를 네 번 박아 벌어진 상처를 간단히 봉합했다. 건모가 했던 방식대로. 차이는 건모의 두 배 수를 스테이플러로 박았다는 점. 찢어진 부위가 이마까지 연장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어느 명배우 못지않게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다. 그만큼 감정을 풀지 못하고 혹사하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순위에 밀린 눈물은 상처가 아무는 속도와 같은 시속으로 흐르고 멈췄다. 아이 머리에 박힌 스테플러를 빼고 서서히 아무는 상처를 목도하고 나서야 울지않고 상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요즘 내가 무기력하고 지친 이유를. 뭔가 닿지 않는 희끗한 연기가 머리끝까지 차서 짓누르는 느낌.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연기를 빼내 정신을 맑게 하고 싶었다. 다친 아이와 흐르는 피를 눈으로 목도한 후에야 자욱한 연기가 일부 걷혔다고 해야할까. 체한 손가락을 엄지에 피를 끌어와 바늘로 찔러 검은 피를 눈으로 확인한 후의 개운함이랄까. 그제야 맑은 피가 뇌로 공급되는 것처럼 한결 머리가 시원했다. 무엇 하나 갈피를 잡기 어렵고 울분과 분노로 가득 찬 고리를 끊어낸 후련함이다.     


결혼 10년차. 육아 9년차.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을 졸이는 일은 즐거웠던 기억이 없다. 아이가 없던 싱글과 신혼에는 마음을 두근거리며 졸였던 시간 뒤에 후련한 성취가 있었다. 힘들지만 개운했고 해볼만한 고생이었다고 느꼈다. 반복되는 면접과 이력서를 통과한 취직, 힘들게 성공한 프로젝트가 흰 머리 세 가닥을 뿜어내며 마무리되었을 때, 이직으로 연봉이 올랐던 짜릿한 결실은 비교적 달콤했고 늘 예상 가능한 맛을 냈다. 연봉이 오를 땐 딱 그만큼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고 이직은 오른 연봉만큼 추가적인 업무를 안겨줬으니까. 그러나 육아를 하면서 졸여지는 마음은 모두가 달다고 말하는데 생각보다 단맛이 희석되어 있었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 원아모집 추첨에서 뽑힌 일이 그랬고 이따금 학원 입학 테스트나 대기가 잘 풀려 기회가 곧잘 오는 일들이 그랬다. 기쁘지만 늘 그전까지 삶을 송두리째 잡고 흔드는 고통이 먼저였다.      


유치원 추첨이 있던 1월, 새해가 되기 한 달 전에 세 아이가 돌아가면서 독감에 걸려 한 달이 넘도록 간호를 했다. 세 아이가 완쾌된 후 독감에 걸린 나는 그해 마지막 12월 31일을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사투하다 정신을 잃어 이명증이라는 병명과 함께 응급실에서 보내야 했다. 세 아이를 돌볼 당시에는 제대로 보지도 이뻐할 겨를도 없던 아이들 사진을 쌍둥이가 7살이 되어서야 들여다본다. 그래서 남들이 ‘금손이니, 뽑기의 신이야’라고 했던 일화들이 마치 그런 기쁨이라도 누리라고 내려주는 신의 보상처럼 느껴졌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는 은혜라기보다 ‘이거라도 먹고 삶을 연명하거라’ 던지는 희망고문이랄까. 지금은 ‘그게 어디냐’며 감사해 마지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신의 약 올림을 당한 듯 억울함이 섞인다.

      

이런 상황이 반복된 후에야 단시간에 마음을 끌어 내리고 쓸어 담는 행위가 몸에 극도한 피로를 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충전된 에너지가 쉽사리 방전되는 몇 년은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가동할 리듬을 찾아 헤맸다. 순간 콜센터에서 감정노동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의 고충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화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감정을 긴박하게 조정하는 직업은 법적 보호를 받지만 부모에게 주어지는 감정노동은 스스로 감내하는 역할로만 존재해 서글프다. 


예상 밖의 일은 늘 찰나에 다가오고 육아는 기준선이라고 그은 라인을 끝없이 펼쳐 긋는다. 바운더리는 이미 존재 의미가 소멸됐으니까. 그래서 부모는 늘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눈가에 눈물이 마를세가 없다고들 하나 보다. 부모님을 떠올리면 눈물이 차오르는 것도 같은 이치이리라. 

    

 “우리가 태어날 때 그토록 울부짖는 것은 바보들의 거대한 무대에 서게 된 것이 너무 서글프기 때문이다.” 

   - 셰익스피어     


삶은 이미 예정된 서글픔의 서막을 부단히 이어가는 숙명의 굴레일지 모른다.      

이전 05화 출산 소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