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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몰입 2022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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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Oct 23. 2022

포켓몬 빵셔틀 ep.1

‘오늘 처음이라서 그러는데요’라고 수줍게 시작하는 한 걸음

-여기가 포켓몬빵 사는 줄일까요?

여자분이 바로 뒤에 와서 줄을 서며 묻는다. 

     

-네  

짧게 대답하고 났더니 계속 말을 잇는다.     


-처음 줄을 서보는데.. 이렇게 서서 사가는거군요

-네.. 사고서 다시 또 줄을 설 수 있어요


아마도 말로만 듣던 포켓몬빵 줄서기의 실체를 확인하면서 멋쩍었던 듯 보인다. 그날은 오픈 8분 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 십여 명 정도 늘어서 있었다. 비교적 짧은 줄이었다. 나는 재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공유했다. 줄을 서는 5분여 남짓, 아이는 몇 살이냐, 포케몬을 좋아 하냐는둥 사소한 몇 마디를 나눴다.      


맛집 줄 서기는 당당한데 아이 대신 오는 빵셔틀은 늘 수줍다. 문구점 앞 오락기에서 다섯 살 짜리 꼬마들이 늘어선 줄 사이에 동전을 들고 서 있는 고등학교 큰 형의 기분이랄까. 대형마트 안은 여러 갈래로 줄이 즐비하다. 이 줄이 소고기 할인줄이 아니라 포케몬빵 줄서기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고 대열에 들어선다. ‘오늘 처음이라서 그러는데요’라고 수줍게 시작하는 한 걸음. 이 걸음이 두 걸음, 세 걸음 반복되면 묘한 중독의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줄을 서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핫플도, 맛집도 아니고 이게 이렇게 줄 서서 살 일이야?’라는 마음 하나. ‘에휴, 애 때문에 이게 뭔 짓이야’라고 스치는 짧은 푸념 둘. ‘그래도 애가 셋인데 두 바퀴는 돌아야지 빵 하나씩 돌아갈텐데’라는 자각의 셋. 이날 빵은 한 사람당 두 개씩 구매가 가능하고 중복 서기가 가능했다. 목적의식을 마무리로 마음의 삼단콤보가 일렁이는 가운데 빵 줄은 오픈런을 시작한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빨라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쫓아 따라가는 일은 꽤 흥미롭다.      


첫 줄 서기는 지성인처럼 우아하게 걸어서 차례대로 약속한 빵 두 개를 고른다. 첫 줄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 줄을 서기 위한 사람들은 전보다 빠른 걸음을 재촉한다. 앞 사람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다음 사람 발도 빨라진다. 두 번째 줄이 끝나고 앞에 아저씨가 종종걸음으로 속력을 내면 내 걸음도 종종종 뒤따른다. 앞에 세 번째 할머니가 빵을 고르고 진입 경로를 바꾸면 시선은 할머니를 쫓으면서 내 발이 그 길로 방향을 바꾼다. 네 번째 줄 서기가 되자 대여섯 개의 빵을 획득한 사람들은 줄에서 이탈하고 동선이 짧아진다. 각자의 목표 수량을 채운 것이다. 그러나 줄 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빵 개수에 카트도 불편하다. 밀던 카트는 소지품 가방을 담아 한켠에 밀어두고 가벼워진 손과 다리로 다시 줄을 돌아선다. 다섯 번째 줄에 들어서자 줄어든 빵 트레이가 보이고 “이제 몇 상자 남았어요?”라고 남은 수량까지 파악하는 여유에 이른다. “다음이 마지막 줄일거에요!”라는 직원의 말에 모두가 안도하며 두 번, 세 번 턴을 돈다. ‘곧 끝나는구나!’ 모두의 눈빛에 평화가 인다. ‘곧 끝’이라는 말은 오늘의 줄 서기가 몇 분 안에 종료될 것이니 빵트레이가 텅 빌 때까지 ‘버티세요’라고 입력된다.     


그때,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어어어! 할머니! 왜자꾸 뛰셔요! 안 뛰셔도 지금 충분히 살 수 있잖아요. 

 뛰다 넘어져 다치시면 저만 곤란해요. 아니, 빵도 앞에서 여러 번 사셨는데 도대체 왜 뛰실까.. 누구 다칠까 봐 무서워서 빵 담당 못하겠네, 이거..

 뛰지 마셔요들, 알았죠?!


보다 못한 직원이 할머니와 아직 줄을 서고 있는 무리들에게 말한다.      


드디어 20여 분만에 빵 트레이가 말끔히 비워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누구는 서른 개니, 스물 한 개니 속닥거리며 획득한 빵의 수량을 센다. 오늘 내 수확량은 스물 네 개. 소요된 시간 대비 나쁘지 않은 갯수다. 유유히 카트를 밀며 여유로운 발걸음과 함께 계산대로 향한다. 아까 뛴 할머니가 계산 중이신 모습이 보였다. 나는 할머니 바로 다음으로 줄을 섰다. 할머니의 빵은 사십 여개. 분명 줄을 같이 서서 돌았던 것 같은데 거의 두 배수를 채우셨다. 빵 하나 가격은 천원 초반대. 빵값으로 오만원 정도 계산하셨다. 계산을 마친 할머니는 빵을 봉투에 담다가 다급히 한 개를 뜯어 계산원에게 내민다.   

   

-시간이 많으면 더 줄 텐데, 내가 바쁘네.

하고 내밀며 친절히 빵을 뜯어 주는 센스. 그 사이 빠른 손놀림으로 포켓몬 띠부실을 빼내 지갑에 넣으시면서 빵만 건네신다.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너무해요!’ 

소심하게 소리로 외치지 못하고 말하면서 확장된 동공으로 할머니를 응시했다. 포켓몬 빵의 주인공은 빵이 아니라 스티커라구요! 포켓몬 빵 줄서기에 한 번이라도 가담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절대 진리다. 할머니가 떠나셨고 다음으로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카드를 내밀며 물었다.


 -결혼하셨어요? 아이 있으세요? 몇 살이에요?


삽시간에 직원의 개인정보를 묻고는 포켓몬 빵을 내밀었다.      

 -계산은 마친거니까 이거 아이 주세요. 띠부실이 랜덤이라서 같은 빵이라도 중복 스티커가 잘 안나오더라고요.


앞서 계산을 마치고 떠난 할머니가 남기고 간 부당함의 공백이랄까. 난 그 공백으로 기꺼이 들어가 바로 잡고 싶었다. 왠지 알맹이가 빠진 빵이 너그럽게 버려진 것 같아 불쾌했으니까. 좋은 것은 내가 갖고 남은 것을 선심쓰듯 주고 간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물론 장시간 서서 일하는 고충을 바라보며 빵을 주고 가는 선의까지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포켓몬 빵과 띠부실은 일체라는 암묵적인 진리가 깨진 상황을 회복하고 싶었다.      


 -에고, 고마워서 어떻해요. 아이가 여덟 살인데 엄청 좋아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니까 포켓몬빵을 쉽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오해하는데, 한 번도 줄서서 사보지를 못했어요. 손님 덕분에 오늘 하나 가져가보네요!


돌아온 대답 안에서 워킹맘과 전업맘, 포켓몬 빵, 베품과 나눔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이따금 베품과 나눔의 의도가 왜곡되는 때를 목격한다. 띠부실을 빼낸 포켓몬 빵이 그랬고, 아이가 바자회에서 득템이라고 생각했던 중고 장난감이 아예 망가진 장난감이었다는 사실을 집으로 돌아와서 확인했을 때가 꼭 그랬다. 베품이 필요 없는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듯 나눔도 버려질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다. 베품과 나눔을 선의라는 포장지에 곱게 싸서 그 안에 뭉게진 의미가 먼지처럼 나뒹굴때면 한없이 쓸쓸해진다.  

    

타인에게 포켓몬빵을 건네면서 발동걸린 정의를 다시 세우고 돌아오는 일은 사소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베품은 ‘누구나 필요하다’는 공통 명제에서 말 그대로 나누는 행위다. 연민도, 남는 여유를 건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함께 나누고 싶은 ‘작고 사소한 마음’ 그 자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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