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에 소질없는 부모의 노력
"너도, 너랑 똑 닮은 애 나아서 꼭 키워봐~!"
"악!! 엄마 지금 나처럼 신경질내고 짜증 내는 애 나아서 똑같이 당해봐라 그런 뜻이지?!맞지, 맞지!!!"
"어우, 아니야~ 우리 재모처럼 예쁘고 말도 잘하는 아이 낳아 키우라는 거지."
말의 불길이 번질까봐 급하게 회유의 소화기를 던진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남편이 키득키득 웃는다. 이해 못 할줄 알고 해준말을 귀신같이 알아듣고 찰떡같이 캐치하는 아홉 살. '너를 어찌할꼬' 싶어 달래고 어르다가 내지른 말이었다. 사실 저 말은 중학교 때 친정엄마가 내게 하신 말이었다.
"너도 너닮은 자식 나아서 키워봐라!"
무슨 상황에 엄마가 그런 말을 하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저 문장은 똑똑히 기억한다. 맥락은 재모에게 했던 유사 상황이었을거라고 예상된다.
십대에 접어들기를 앞둔 아홉 살은 생각보다 성숙하다. 더불어 여덟살과 달리 핑계도, 대안도 꽤 근사해진다.
“엄마, 나 열이 나는 것 같아. 다리도 후둘거려.
(체온계를 꺼내 이마에 갖다대더니) 지금은 열이 내린 것 같은데, 또 오를지 몰라.
학교에서 급식 잘 못먹은 것도 사실은 친구랑 얘기하다 그런 게 아니라 속이 안좋아서 그랬어.
오늘 하루만 영어학원 안가면 안돼? 응? 지난번에 지안이도 아파서 왔다가 바로 갔어. 나 못걸을 것 같아..”
아이는 가장 애처로운 몸짓으로 다리를 축 늘어뜨리며 걸을 수 없다고 호소한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전학을 보내 달라, 이사를 다시 가자, 반을 바꿔달라, 월반을 시켜달라, 아니면 홈스쿨링을 하겠으니 엄마가 나를 도와라 등 선택지가 늘어난다. 자고로 학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 교실에서 쓰러져야 하는 법이니라’는 학생의 도(道)를 마스터한 80년생 엄마 입장에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요즘 그의 세계관이다. 몇 년간 아이의 반복되는 패턴으로 두려움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포착했지만 여전히 꼭 맞는 해결점은 없다. 결국 이 흐름은 학교로, 학원으로 다시 복귀시키기 위한 여러 시도로 매듭지을테니까.
순간,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며 어르고 달래는 행위에서 그녀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누가 화영에 대해 싫은 말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 네가 누구한테 부탁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고.”
지인이 말했다. 20대 후반에 같은 직장에 다녔던 그녀. 우리는 서로 다른 팀에서 만나 같은 부서에서 일했다. 시간이 차곡히 흘러 직장 동료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알아가는 사이가 됐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싫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전체 의견을 다 들어보지 못한 반쪽자리 결론일테지만 반대로 언급될 비중이 크지 않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회사는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유기체다. 그러나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느니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다'는 일 떠안기 신공은 협업을 빗겨나가는 때가 많았다. 비교적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기 위해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업무에 대한 부담은 묵직한 책임감으로 납작 눌려 짓누르기 일쑤였다.
어린시절 배운 책임은 유독 무게가 많이 나갔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집이 변화하는 풍경을 관찰하는 것은 책임을 문자가 아닌 몸에 스미게 했으니까.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던 동화같은 순간이 실제로 벌어지는 10살의 현실은 혹독했다. 기대하지 않는 삶이 익숙했기 때문에 어쩌다 마주친 소소한 행운에 안도했다. 삶은 건조했고 현실은 시시 때때로 슬픔을 몰고 왔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덕분에 외형은 지하 다락일지라도 비교적 바른 성품으로 마음에 부정보다 긍정을 품었다.
외가의 보살핌으로 우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유년기를 보냈다. 그렇기때문에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치가 느리며 불안한 현실에서 긍정에 7할을 할애하며 산다. 꿈꾸지 않았기에 주어진 삶에서 그날의 최선을 찾았다.
"네가 한 행동은 네가 책임져야지."
책임은 꿈이 없던 하루에 묵묵히 내일을 밀고 나가는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나이답지 않은 어른스러움으로 보낸 유년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한 후에도 나이에 비해 성숙한 외모를 장착한 어른아이마냥 한결같았다. 직장생활에 윤활유같은 멘트를 던질 줄 몰라서, 아닌 걸 아니라고 휘어지지 못해서 이따금 오해를 받거나 시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 내가 아이의 어지러운 마음을 여행하는 일은 늘 애타고 피로하다. 마음을 읽어내는 행위를 언제쯤 마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여정이 살면서 종료되지 못하는 행위임을 이미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사는 재미의 시작이자 신뢰를 쌓는 중요한 여정 중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와의 대화가 대화다운 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경청과 신뢰, 담담한 말로 풀어내는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아이를 이끌어 가야 하는 부담과 책임은 덜어 낼래야 덜어지지가 않는다.
마음을 읽어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은 어렵다. 연습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색하고 받아보지 않아서 서툴다. 10살 이후로 응석을 부려본 적도, 물건을 사 달라고 졸라본 적도 없으니까. 자라면서 늘 감당할 책임에 둘러쌓인 내가 듣고 자란 다정함은 문자로만 존재하는 언어였으니까. 그렇다고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힘든 가운데 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대부분의 사랑은 말보다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마음일 경우가 많았다. 현실어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친정엄마의 마르지 않는 눈물처럼 알아차려 느끼는 사랑이 대부분이었다. 늘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의 엄마는 더 줬어도 미안하다고 하실 분이니까. 여전히 엄마는 한순간에 우여곡절을 겪게 했던 미안함으로 엄마의 사십대와 딸의 유년을 떠올릴 것이다.
아이의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침착한 대화를 유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해볼만한 변화'라는 시도가 일렁인다. 내가 먼저 소리를 지르지 않는 각고의 노력을 며칠 내지 몇 주를 반복하다보면 아이도 차츰 탈바꿈할 의지를 보이니까. 더불어 소리 지르는 빈도가 줄어들고 작은 변화에도 스트레스를 받던 아이의 탄성에 근육이 붙기 시작한다. 때로는 본인의 마음을 분석하고 읽어주는 언어를 통해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보다 정확하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엄마가 재모가 힘들어할 때마다 같은 패턴을 보이더라고.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그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야.
오늘 수업시간에 할 파트를 보니깐 지난주 어려웠었지?
새롭고 뭔가 전보다 어려운 걸 배울 때 두렵고 하기 싫고 도망가고 싶지?
그런 날은 왠지 몸도 아픈 것 같고 말이야.
그럴땐 엄마가 도와줄테니까 걱정말고 한번 해보자.
익숙하지 않아서 새롭고 어렵게 느껴지는 거야. 할 수 있어!”
아이의 반복적인 행동을 ‘두려움’이라는 말로 이름 붙이는데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마음을 정제된 말로 차분히 표현하는 것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서서히 안착되고 있다. 요동치며 널뛰는 마음을 함께 읽어주고 변화를 관찰하는 것. 두려움은 우리가 함께 다독여 잘 감싸 안고 가야 하는 내면의 거친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두려움이 언젠가는 도전이라는 모습으로, 때로는 위험으로 다가올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혜안을 발휘하기 위한 부단한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구상에서 나와 꼭 닮은 너를 만나는 반복된 과정을 겪으며 여전히 다정함에 소질없는 나와 마주하는 용기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