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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몰입 2022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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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Oct 30. 2022

삶은 살 수록 배신

‘울음이 터질 것 같아’라는 문자가 울음을 욱여 삼키는 밥알처럼 느껴졌다

이따금 지인과 삶의 고달픔에 대한 통화를 나눌 때가 있다. 말문을 시작하기 전에는 다들 ‘나보다 힘들텐데 내가 고민을 말해도 될까’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미 그들이 보기에 (아이들) 수적으로 열세한 내게 힘듦을 토로한다는 것이 부담을 줄까 걱정이 되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얘기해.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거 나누는 거야.”라고. 그래야 나도 툴툴거리며 털 수 있으니까. 실은 나도 글이 아니라 입으로 탈탈탈 털고 싶을 때가 있다고. 정제된 글로 다소곳이 정리하기 보다는 갓 잡은 날것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정교한 사진기술로 장면은 담을 수 있을지언정 프레임 밖 소리를 사진에 담을 수 없는 한계라고나 할까.      


오늘의 주제는 ‘산 넘어 삶’에 대한 이야기다. 대화 안에는 이사, 또래 아이들, 학부모, 학원 갈등, 부모님 등 주제가 방대하다.      


 "어떻게 산 넘어 산이야. 뭐가 늘 이래?

 " .. 요즘 많이 힘들어?”

 "너무 힘들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은 ‘들어 주는 일’이다. 말주변이 없는터라 대답하는 말은 건조하게 말린 사실뿐이다.      

 " 산 넘어 사는 게 삶이야. 

   이번 산 넘으면 다음 산이 없을 것 같지? 

   이 산 넘고 나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     


  

서로의 힘든 날에 대한 배틀이 시작될 때면 편하게 얘기하라고 한다. ‘나’는 요즘 이래서 힘들었고 ‘너’는 이래서 힘들었구나. 배틀은 승자가 없다. 불편한 상황들에 대한 설명과 공감만으로도 우리는 동병상련이라는 한 배에 마음 편히 올라탄다. 얘기의 거센 불길이 몇 번씩 올라 차 내리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출렁이던 파도가 잠잠하게 가라앉는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머리칼을 스쳐 지나듯 한층 덜어진 개운한 기분이 분노의 아슬한 한켠을 쓸어간다. 그러고는 억울한 짐을 바닷속 깊은 곳으로 내린다. 누구에게도 발설 금지라는 무언의 함구 수칙을 서로의 신뢰를 담보로 바닷속으로 무게추를 달아 내린다.      


 "삶은 원래 배신의 연속이야."




우리가 처음 배신당한 날은 남편이 갑상선 암을 선고받던 날이었다. 매년 있는 회사 건강검진에서 ‘이번에는 이 검사를 받아볼까’라고 선택한 웃지못할 우연의 시작이었다. 항상 받던 검진이었다. 회식 술자리나 잦은 야근으로 겪는 지방간과 기타 자잘한 질병은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받아드는 선물옵션 같은 영수증이었으니까.      

"갑상선 쪽에 굵직한 세포 덩어리가 포착됐어요. 크기가 좀 돼서 조직검사를 했고 갑상선 암으로 보여져 수술일자를 잡아야 할 것 같아요."    


건강검진 문진을 갔던 남편이 전해온 소식은 뜻밖이었다. 이럴 때 이런 말을 쓰는구나. ‘뜻밖이야’. 믿기지 않았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휴대폰을 들고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병원을 가면 진단 후 병명을 받는다. 이번에는 감기에요. 중이염이왔네요. 독감이네요. 편도선염이에요 비염이에요. 후두염이에요. 갑상선암이에요.


와닿지가 않아 감각이 정지된 기분이었다. 일시에 느려진 행동을 전문가들이 이끌어줬다. 병원 수술 상담사와 의사의 소견을 반영해 수수일자를 잡고 중간 검사나 다른 일정을 확인했다. 머뭇거릴 새 없이 메뉴얼에 따라 병원 일정을 따라가는 것이 나았다. 대학시절 약대에서 공부하던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결국 인간은 모두 암으로 죽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언데 그녀의 말이 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만 37세. 아들 셋 아빠이자 남편은 대학교 졸업 후 취직한 첫 직장에서 13년을 근무했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소소한 특진과 승진이 있었고 최근에는 암에 걸렸다. 누구도 그것이 그간 일해온 시간에 대한 결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한 동안 먹먹한 억울함과 비현실적인 침착함으로 일상을 누비고 다녔다. 수술 일자가 잡혀 팀장님에게 말하기 전까지 비밀처럼 간직해야 하는 매일은 마치 흰 쌀밥을 울며 씹어 삼키는 것처럼 목이 메어왔다. 일하는 간간이 그가 ‘울음이 터질 것 같아’라고 보내온 문자들이 울음을 욱여 삼키는 밥알처럼 느껴졌다.      


친정으로 향하던 어느 날, 청명한 하늘과 유독 맑은 공기질을 선사하던 10월. 한적한 버스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터졌다. 아이들을 라이드하면서 울며 운전하는 것보다 마음 편히 울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있어서 다행이야.' 창가 1인 좌석이 비어서 다행이었고 버스 안에 승객이 몇 없어 한산한 오전이라 다행이었다. 막히지 않는 도로의 소음으로 눈물과 흐르는 콧물을 수시로 들여 마셔도 눈치 챌 사람이 없어서 더욱 다행이었다. 한적한 탁 트인 공간에서 우는 것은 홀로 집에서 문을 닫고 우는 것보다 한결 시원하다. 환기된 공간에서 집과 다른 풍경이 소소한 잡념을 없애준다.     


남편이 수술하고 회복하기까지 암병동을 드나들었다. 울적했던 날들보다는 비교적 담담히 사실을 인정하고 미리 잡은 일정이 주가 되어 우리를 이끌었다. 한 달 사이 세포가 크게 자라고 있고 크기가 손으로 잡혀 수술을 서둘렀다. 예상시간보다 수술시간은 길었다. 수술 중간 상담에서 전이가 없이 큰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듣기까지 오전을 모두 할애하고 오후로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이후 남편 회사의 옆팀 근무자도 와이프가 갑상선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술 후 그녀는 전이된 암으로 인해 6개월 된 아이를 떼어두고 방사선 치료에 들어갔다고 했다. 소위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은 그 무엇에도 우리만 아닐 이유가 없었다. 삶은 본디 반전과 배신의 속성을 지녔고 살면 살수록 배신당하는 당연한 이치를 일말의 희망으로 얄궂게 받아들이며 산다고. 인생길 위에서 우리는 늘 언제든 무너져내리는 을의 삶으로 살기에 주문처럼 되뇐다.      


 “삶은 네버 세이 네버(Never say Never)’!”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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