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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몰입 2022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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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Oct 30. 2022

괜찮다, 괜찮지 않다

'등교를 거부'하는 아홉 살 부모의 관찰기

월요일 오전 7시 25분.

세 아이를 깨우는데 첫째가 식탁에 먼저 앉는다. 아침식사를 내려놓고 숟가락을 챙기러 돌아서는 찰나, 아이는 머리에 까치집 하나를 이고는 곧 거칠게 외친다.     


 “학교! 학교! 학교!!!!!!!”     


탕탕탕! 식탁을 내리치며 외치고는 아이는 그대로 엎드려 사납게 울기 시작한다. 꺼이꺼이 우는 소리는 나머지 두 아이의 기상벨이 됐다. 아침부터 울려 퍼지는 통곡 소리는 한순간에 고요하던 마음을 무너뜨린다.     

지난주 수요일 여름방학이 끝나 개학을 맞았다. 다소 심심했던 방학과 개학날 일찍 등교하는 모습에 2학기는 순조로울 줄 알았다. 1학기 때 시작된 등교 거부 문제는 여름방학이라는 ‘퍼즈(pause, 잠시 휴식)’ 버튼에 기대어 잠시 숨어 있다가 다시 본래의 길로 들어선다. 아침 통곡과 함께.     


무엇이 그토록 억울하고 분노에 차도록 서글픈지 모르겠다. 방에서 울고 나오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학교란 학생이라면 반자동 기계처럼 등교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8살, 14살, 17살의 김화영은 그랬다. 그러나 5살, 6살, 7살, 8살, 9살의 구재모는 아니었다.      


한 유치원에서 3년을 보낸 아이는 매년 유치원에 가기 싫은 이유가 연초에 드러난다. 새해가 되고 한 살씩 전보다 더 어려워진 학습 환경을 ‘등원 거부’라는 모습으로 호소했다. 5살보다 6살에, 6살보다 7살에 배울 숫자의 자릿수와 읽어야 할 책의 글귀가 많아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알파벳을 전보다 많이 알고 읽어야 했고 쓰기 싫어하는 아이가 써야 하는 일은 점점 많아졌다. 나이가 들 수록 세상은 하기싫은 일 투성이처럼 보여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담이 싫지만 이겨내면 무엇인가 습득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아이를 보면서 앎의 즐거움이 이렇게 변태적일수 있을까 싶었다. 지식으로 획득한 정보와 환희의 기억 속에서 앎에 대한 경험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사람들은 보통 변태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유의어로 포착되는 도착증, 변형, 비정상의 자극어를 흔히 언급한다. 그러나 내게 변태는 곤충이 번데기에서 나와 성충이 되는 탈피와 유사한 형태가 1차적으로 인식된다. 원래 갖고 있던 본래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 모두가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을 벗어나거나 깨는 행위를 은어적으로 ‘변태야’라고 했었다. 발전시키면 ‘ㄸㄹㅇ(또라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 칭호는 평범하지 않은 생각을 가진, 주저하지 않고 서슴없는 사람을 일컬었다.      


내게 아이의 성장은 늘 변태기로 기억된다. 다만 자극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부분은 조증과 울증을 넘나드는 아이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버겁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 중 서로 가장 먼 거리의 대치 상태가 극도로 짧은 시간을 오가는 것을 반복하는 일은 큰 부담이다. 어떤 날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 ‘오늘이 아주 행복한 날이야’라고 단순하게 정의해 버린다. 지난주까지는 ‘내게 공부하기 딱 좋은 곳이야, 지금 내 수준과 아주 잘 맞아!’라고 외치더니 그다음 주는 학원 갈 시간이라고 외치니 분노의 발길질을 시작한다. 지난주의 감정을 복기해 줬더니 모두 다 맞는 말이지만 반복되는 일정은 힘들고 지루하다는 것이다. 아이는 지루하다는 말을 이겨내기 힘들 때 ‘어려워’의 유사 개념으로 사용하는 습관이 있다.           




“가기 싫으면, 오늘부터 학교에 가지 마!”     


득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 조치가 내게 필요한 것인지, 네게 필요한 것인지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한 것은 이전과 달라야 했다. 최근 남편이 권해준 방법이라서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권해준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권한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던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본인의 의견을 아내에게 부추기는 듯한 고도의 술수가 파악돼서 싫었다고 할까. 과감한 듯 과감하지 않은 것이 내 모습이었으니까. 극단의 카드를 손에 쥐고 수없이 구겨질 때까지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내라는 것을 들킨 걸까. 서로의 과감하지 않은 모습이 포착될 때마다 부추기는 재미가 한 수 앞을 보게 한 걸까. 결국은 극단의 카드를 내지르고 말았다.    

  

“엄마 말 기억해!

 네가 학교 가기 싫어해서 가지 말라고 한 말이 아니야. 

 오늘부터 학교를 그만둔거야.”     


남편의 극단적인 방법이 선뜻 내키지 않았던 이유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집에서 성난 모드의 엄마로 있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 학교에 안 가서 마음에 안 들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집안에 같이 머무는 내내 ‘잊지 마 양념’처럼 MSG를 뿌리며 걸어 다녀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학교도 안 가는데 학원은 가도 되나, 사교육이니 그래도 가야 할까? 아니면, 그냥 보내지 말아야 하나?  운동은 가야 할까?


집에서 아이와 둘이 있을 시간이 두려워서 고민하는 것일까, 아니면 학교가지 말라고 호기롭게 내지른 말을 주워 담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들킬까 염려되는 것일까. 우습다, 내 모습, 이 상황. 그리고 지독히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서 싫다. 등교하지 않는 한 시간, 두 시간, 이 시간에 스미듯 적응해가는 아이의 모습은 더 싫다.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집에서 이토록 아무렇지 않게 머무는 분위기는 어쩌란말인가. 마치 주말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정지된 느낌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지금은 아이에게 채워 넣을 시간이 아니라 그릇을 크게 만드는 시기라던데, 이 그릇은 네 그릇이 아니라 역시 내 그릇이었던가. 아이를 뱃속으로 반품할 수도 없고 참으로 미칠 노릇이다. 한동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사람처럼 억울했다. “다 울고 진정되면 얘기하러 와.” 아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인내심이었다.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1주일 등교하지 않겠다는 양해를 구했다. 오늘은 둘째 건모의 안과 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3차 병원으로 이동해야 해서 오늘 오전 등원은 셋째 형모뿐이다. 불끈불끈 올라오는 눈물을 흘리고 닦느라 눈이 계속 붉고 코끝이 빨갰다. 코로나로 마스크가 고마운 건 처음이었다. 그나마 우는 모습을 덜 들킬 수 있으니까. 병원에는 코로나 사전 질의를 끝낸 환자와 보호자 한 명만 방문이 가능했다. 집에 홀로 남겨진 재모와는 휴대폰을 연락하면서 둘째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둘째와 안과 검진실에서 “전보다 차도가 있어 시력이 나아지는 것 같아요”라는 의사의 소견에 잠시 괜찮다가 재모가 “엄마, 언제쯤 집에 와?”라는 휴대폰 메시지를 받을 때면 기운이 빠지고. 괜찮다와 괜찮지 않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오전과 오후는 각기 다른 방을 빠른 속도로 오가는 것처럼 정신없고 혼란스러웠다. 무엇에라도 취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 되어서야 남편이랑 하룻동안 벌어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밤새 울다 뒤척이기를 반복하며 잠들었다.      


등교 거부 이틀 차. 

첫날은 차마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등교거부를 선언한 아이 앞에서 유연한척 보이고 싶었다. 입장정리가 온전히 되지 않은 복잡한 심경을 설명할 방도를 찾지 못했달까. 그러나 결국 울다 들키고 말고를 시전했다고 해야하나. 등을 대고 돌아서면 왈칵하고 눈물이 차오르는데 멈추고 싶어도 고장이다. 무엇인가 서럽고 내 탓인 것만 같은 느낌. 학교가기 싫다는 그 집 애가 바로 여기, 우리 집 애가 될 줄이야. 안에서 세는 우리집 바가지는 밖에서는 철저한 모범생이었고 그간 탑을 이룬 칭찬은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다고 이게 다 '뭐든지 엄마 탓이야' 카드는 꺼내들지는 말자. 수학문제처럼 'A의 답은 C에요'라고 답하는 평면적인 문제가 아니란걸 아니까. '내 마음 좀 깊이 읽어주세요'라는 입체적인 접근으로 고민할 일이니까.


반대로 유년기때 학교가기 싫다는 말 한번 안 하고 열심히 성실하게 등교한 내가 새삼 대견스러웠다. 등교가 이런 것이었구나. 유일한 효도 중 하나가 어릴 때 착실하게 학교에 잘 다녀준 것이라는 생각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아이는 어릴 때 효도를 다 한다'는 말처럼 학교 출석에 대한 고민은 안겨드리지 않았으니 유년시절은 효녀였다고 인정하자. 

   

아이가 등교하지 않는 동안 하루 일정을 말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각자의 일정이 있으니 본인의 일은 알아서 챙겨 지내라고 했다. 무심함과 심심함, 무언의 냉랭함이 집안 공기 중에 적당히 섞여 머물러야할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어도 따라오고 노트북을 켜면 강아지처럼 들러붙어 질문을 해대는 아이를 내치는 일도 고역이었다. 결국은 아이에게 등교거부에 대한 인터뷰를 제안했고 질문을 좋아하는 재모는 흥쾌히 응했다. 


학원은 보내기로 했다.오늘 내 라이드의 음악 선곡은 가수 바이브의 ‘술이야’. 

맨정신에 운전이라도 하려면 공기에 취할 무엇인가 필요했다. 당분간은 이 선곡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등교를 거부한 재모의 인터뷰는 <파트 3. 아홉 살의 몰입: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인터뷰>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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