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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몰입 2022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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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화영 Oct 30. 2022

남겨야 하는 최소한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알아채는 온전한 의미에 집중한다.

머리가 복잡한 날은 몸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주변을 둘러보며 산더미같이 쌓인 집안일이 ‘이제 정리할 시간이야’라는 신호를 보낸다. 몸을 움직여 풀리지 않는 실마리를 분산시킨다. 청소기를 미는 팔의 잔근육과 함께 반쪽 뇌는 지금 당장 빨아들일 먼지에 집중한다. 내게 쓸고 닦으면서 몸을 움직이는 행위는 뇌에 쉬는 시간을 주는 것과 같다. 생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구불한 신경 사이를 쭉 펴서 맑은 피에 여러 번 담근다. 그리고는 군더더기가 덜어진 생각을 곱게 다려서 온기를 머금은 따스한 햇볕의 보송한 향으로 리부트한다.     

 

 맨질한 75리터의 누가봐도 주황색인 종량제 봉투를 꺼낸다. 그러고는 담기 좋게 주름을 잡아 부엌 한 켠에 놓는다. 아일랜드 위 쌓인 우편물을 시작으로 영수증처럼 아래로 죽 늘어뜨린 메모를 훑어보고는 구겨 넣는다. 냉장고에 붙여진 갖가지 일정표와 큰 찬장 문에 붙여둔 손 그림, 글씨, 스티커 등 기한이 소멸한 것을 뗀다. 부엌을 시작으로 거실 사이 아이들이 접어 날린 종이 비행기와 팽이를 주워 넣는다.      


 주기적으로 쓰지 않는 물건의 유효기간을 고려한 ‘버리기’에 들어간다. 정리의 기준은 단순하다. ‘지금 꼭’ 사용해야 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기준은 2년. 이 기간 안에 사용하지 않은 것은 과감히 봉투에 던진다. 두 번 남짓의 이사에 대한 경험치다. 사용하지 않더라도 1년간 묵히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사용할 날이 곧 도래한다는 의미다. 아니면 그 이상의 가치를 가졌거나. 집 전세도 2년 계약인데 그 안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3년이 지나도, 그 이상의 기간이 흘러도 쓸 일이 없다는 뜻이다. 이는 바로 버려야 할 품목이라는 암시이며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뭘 버려야 하지?’라는 생각에 주저한다. 그러나 정리를 마주한 상황에서는 ‘무엇을 남길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하는 상황에 놓인다. 버릴 게 없던 상황에서 ‘남겨야 하는 최소한’으로 의식이 전환하면 상황은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어쩌면 10년에 이르는 결혼생활 내내 우리가 그토록 마음에 담고 싶었던 것은 최소한으로 남긴 문장이었을 것이다. 수고했어. 고마워. 사랑한다. 노력할게.


서로에게 말조차 건네기 힘들었던 때 바로 옆에 있는 아내와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부모님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최소한. ‘부모니까’라는 만능 스티커로 대충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공들여 노력 중인 현재를 인정받고 싶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남편이 회사 교육 프로그램으로 코칭 수업을 다녀온 날이었다. 몇 번의 수업을 지나 앞으로의 삶이나 목표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고. 앞선 수업은 늘 진지했고 사람들은 기대 이상으로 진솔했다고. 집에 돌아온 그가 수업시간에 있었던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러고는 같은 그룹에 앉아 사람들과 주고받은 말을 곱씹는다. “내 발표가 끝나고 나니까 살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내 앞 사람이 해주더라고..” 모르는 타인으로 묶일 때 사람들은 가장 솔직해진다. 얘기치 못한 장소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참 열심히 사세요.”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는 그. 남편은 우리가 함께 그린 밑그림에 꾸준한 계획으로 굵은 선을 긋는 사람이다. 나침반을 놓고 어느 방향으로 먼저 가야 할지 여기저기 살핀다. 새해에 주고받은 카드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1년을 확인한다. 우리는 그 해에 서로의 지지자가 되어 그 일이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바란다. 아이들이 태권도 스티커를 모아 뱃지를 하나씩 모으듯 매년, 5년, 10년 단위로 세운 계획을 하나씩 이뤘다. 행복했고 다음으로 나아갈 노잣돈을 모으듯 뿌듯함을 각자 주머니에 넣었다. 계획과 무계획의(질서와 무질서) 중간에 서 있는 내게 그는 처진 근육을 잡아당기듯 느슨한 생각을 붙잡아 준다.     

 


 “(기운 하나 없는 목소리로)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까?”

 “(타자를 치다가 힐끗 쳐다보며) 왜.. 논문이 잘 안 풀려?”

 “(허공을 쳐다보며) 아.. 정말 사는 게 힘들다..”

 “언제 쉬운 적은 있었고?! .. (씁쓸하게 피식 웃는다)”

 “우리 진짜 열심히 사는데... 진짜...우리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 흔치 않을걸?”

 “다들 이보다 더 열심히 살아..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이 어딨겠어.”     



농담처럼 진담 섞인 한을 주고받는다. 결혼하고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살기 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를 낳는 기쁨과 가족이 완전체를 이뤄가는 모습을 아름답게만 느끼기에는 여전히 육아는 끝이 없고 늘 연장된 고민의 한 뼘을 간신히 살아낸다. 허니문 베이비가 간절했던 우리는 1년 동안 신혼을 임신과 분투하며 조급함과 함께 보냈다. 그렇게 첫 아이와 함께 본격적인 육아의 삶이 시작됐고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치열함은 배가됐다. 그 치열한 여정에 하나 더 보태어 글쓰기를 시작했고 스스로 더 바쁜 일정을 만들었다. 지칠 때마다 뇌에 공급했던 쓰기와 읽기는 육신만 살아있는 종이 인형에 바람을 불어 넣는다.    

  

아이가 모두 잠들고 우리가 식탁에 모이는 시간은 대략 밤 9시 반에서 10시경. 그는 주근야독, 나는 주육야근. 말 그대로 남편은 회사와 학업을 병행하고 나는 육아와 밤 재택근무로 하루를 마감한다. 식탁을 책상 삼아 본격적으로 마주하고 노트북을 켜는 것도 어느새 3년 차. 기운이 바닥을 드러내는 날에는 그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천천히 살핀다.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어 사는지. 아이들 때문일까. 아니면 이렇게 키워준 부모님 때문일까. 타고난 성격 탓일까. 어느 것 하나 명료하게 구색에 맞는 답을 찾을 수 없다. 지금 당장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휴지(休止)버튼을 누르고 거실 창밖 풍경을 한없이 바라본다.     

 

 “재앙을 거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누군가 이미 그 길을 걸어 다시 그 경험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몸과 마음을 모두 쏟아부으며 과학을 하는지 말할 수 있는 저널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  책「랩걸(Lab Girl)(호프 자런 지음)」  


세상은 유사 경험의 무한한 복사판이다. ‘아마도 그랬을 거야’라는 비슷한 판단으로 ‘보나 마나 같을 거야’라는 짐작을 동일시한다. 온전히 내가 걸은 길이 아니므로 동경과 질투의 시선으로 관망한다. 실행이 없는 관망은 그저 바라봄의 여유와 부러움이 미묘하게 교차하는 각자의 시의 적절한 영역에 안착한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몸과 마음을 쏟아부으며 삶을 차츰 이동해 가는지에 대해 완벽하고 충분한 문자 밖의 표현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세상에 열심을 내지 않는 삶이 있을까. 다만 열심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오늘 내는 열심이 내일, 모레, 한 달 뒤에도 같지 않을 것이기에 느슨한 줄을 잡아당길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사는 이유를 하나로 특정하지 않듯 하나의 답을 바라보며 살고 싶지 않다. 삶이 만들어내는 역할이 여러 가지 모습을 띠는 것처럼 열심을 다하고 싶은 이유도 다 제각각이므로. 확실한 것은 내가 세운 가치관을 따르다 보니 그나마 ‘열심’이라는 모양을 갖추게 됐다는 것. 오늘 내는 열심 또한 언젠가 잊혀지기 마련이기에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알아채는 온전한 의미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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