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갑작스레 원점으로 회귀. 또다시 미궁 속에 빠졌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솔5단지 리모델링이 안개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기 신도시 최초의 리모델링 아파트가 유력했지만, 성사 직전에 수포로 돌아갔다.
물론 리모델링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조합은 절차상 미뤄졌을 뿐 리모델링이 시간문제라며 자신하고 있지만, 다 된 밥에 코 빠진 격이라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애초 이주 기간이 늦어도 올해 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법적 공방에서 완전히 무너진 만큼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ㅣ99%가 1%의 벽을 넘지 못했다ㅣ
한솔5단지의 리모델링은 사실상 확정된 사항이나 다름없었다. 까다로운 리모델링 절차를 모두 마쳐 아무리 늦어도 올해 말 전에 이주까지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 일부 세입자들의 이사가 시작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매도청구소송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당초 리모델링 허가를 신청하기 위한 동의율은 최소 75%인데 이미 리모델링 조합은 99%의 찬성을 확보한 만큼 승소가 유력했다. 매도청구는 다수의 이익을 우선시해 사업의 통로를 열어주는 제도로 통상 조합이 유리하다. 하지만 동의율 99%에도 조합이 1~3심까지 모두 패소하며 리모델링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ㅣ정치 논리가 개입됐다?ㅣ
리모델링 조합이 매도청구소송에서 반대 측에 패소한 결정적인 원인은 '원고 조합 대표자 부적격'이다. 즉 조합장이 적법한 절차로 선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조합은 과거 리모델링 사업이 지지부진했을 때 조합장 선정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적대의원이 최소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매도청구소송에서 발목이 잡힌 결정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한솔5단지의 과거 조합장이 바로 야권의 유력 정치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인데 이들이 리모델링을 정치적으로만 활용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3심 패소엔 여당 소속의 시의원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의 눈초리도 나온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실체는 없다. 정치적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로 충격이 크다는 의미로 보인다.
ㅣ연달아 나오는 ‘전세 급매’ㅣ
조합은 매도청구소송 1~3심 모두 패소에도 지적된 절차적 문제만 보완해 매도청구소송에 나설 예정이다. 잠시 미뤄졌을 뿐 내년에 이주까지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임대인들은 이주가 미뤄졌기 때문에 ‘급매’로 전세를 내놓는 실정이다. 가뜩이나 리모델링으로 인한 이주 이슈 때문에 전세 시세가 주변 평균보다 1억원~1억5천만원 저렴했는데, 그 폭이 더 커지고 있다. 3심 패소가 확정되자 공급 면적 약 22평의 매물이 2억5천만원과 2억6천만원에서 거래되며 하락의 신호탄을 알렸다. 최근엔 수리가 준수하다며 나온 매물 가격은 2억2천만원이다. 주변에 비슷한 평수의 평균 시세가 약 4억원이다. 약 두 배 차이다.
ㅣ“이주가 되긴 되겠지만…”ㅣ
인근 부동산에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단기로 거주할 아파트를 구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한 부동산 중개인은 “잠깐 살 사람들에게 많은 문의가 오고 있다”며 “하지만 언제 이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시세보다 매우 저렴해도 빠르게 거래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으로서도 리모델링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란다”며 “불확실성이 유지되고 있어 주변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중개인은 “조합은 금방 이주가 될 것처럼 말하지만, 3심까지 졌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기본 전세 계약 기간인 2년을 모두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