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영민 Dec 29. 2022

그 남자가 죽음과 싸우는 법

미워해서는 안 되는 사람

 오늘도 그는 진상이다. 담당 호실만 아니면 들어가고 싶지 않은 그 방에서. 마침 얼마 전 부서 이동을 한 최미란 간호조무사가 환자 방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욕설에, 물건 집어 던지기도 일쑤. 내가 들어갔을 때 부디 주무시고 있기를.


 그에게는 천사 같은 미인 아내와 잘생긴 아들이 있다. 못 돼도 왕년에 미스코리아 선(善)쯤은 했을 법한 아주머니는 매일 같이 찾아와서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저이가 원래 저런 사람은 아닌데, 많이 힘든가 봐요. 정말 죄송해요."


 애써 괜찮다며 억지 미소라도 지어 드리는 수밖에. 나는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아니, 미워해서는 안 된다. 생각해 보면, 새털 같은 날을 누리고 있는 내가 어떻게 그를 미워할 수 있겠나. 그가 이 세상 모두를 질투한다고 해도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그가 질투하는 방식이 그 같은 신사에게 어울리지 않게 매우 원초적이어서 당혹스러울 뿐이다.


 그날도 혈관이 막혔다. 말초 정맥으로 그 찐득한 영양제를 밀어 넣으니 어디 건장한 청년의 혈관이라도 버텨낼 리가 있겠나. 빌어먹을, 주치의는 중심정맥관을 왜 안 달아 주는 거야. 자기가 못하면 외과 협진이라도 내던지! 내가 이번에 초음파 기계를 한 대 사서 이 아저씨 혈관을 찾던지 무슨 수를 내야 한다, 다음에는 혈관을 못 잡겠다고 주치의 앞에서 드러누울 거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마음속에 내뱉으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병실에 들어섰다.


 "김종훈 님, 안녕하세요? 주사 바꿔 드리러 왔습니다."

 최대한 친절하게, 그의 심기를 살피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제발 살살합시다.' 그런 간절함도 가득 담아서. 그는 대답 대신 퀭한 눈을 내 쪽으로 굴렀다. '너 하는 거 봐서.' 하는 살기가 느껴진 건 내 기분 탓이겠지.

 언제나 그렇듯 아주머니가 나를 반겨주셨다.


 "저녁 근무하시네요? 피곤하시겠어요. 주사 잘 놓는 분이 오셨으니 걱정 덜었네요."

 "아이고, 최선을 다해 봐야죠. 일단 막힌 거 제거하고 충분히 지혈하고요, 안 썼던 팔에 주사 놔야 하니 따뜻하게 해 둘게요."

 식사를 전혀 못 하시고 거동도 못 하시니 온찜질을 해도 혈관이 나올 리가 있나요, 으아악, 절망하는 모습을 들키면 프로페셔널이 아니지.


 그날은 '운수 좋은 날'이었다. 한 번에 성공하다니. 후배들아, 보았니? 언니의 오늘 근무는 아주 완벽하게 끝날 예정이란다.

 "정말 다행입니다. 환자분이 잘 도와주셔서, 수액도 아주 잘 들어가네요."

 룰루랄라, 내적 흥을 한껏 느끼며. 오늘은 호통치는 모습을 안 봐도 되겠네, 안도했다.


 놀 거 안 놀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오시고, 대기업 중견 자리까지 승승장구하시고, 이제 막 오십 대가 된 분이 갑자기 대장암 진단받고 큰 병원에서 온갖 치료를 다 받으며 고생하셨단다. 그 보람도 없이 죽음의 문턱에서 이 작은 병원까지 밀려오셨으니, 때로는 억지 동정으로, 때로는 측은지심으로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도 매사가 의심과 불만인 분이라, 보호자가 잠깐 자리를 비우셔서 눕는 걸 도와드리니 자길 밀었다고 하질 않나, 혈관이 막히면 쓰던 바늘을 재활용해서 그렇다고 하질 않나, 이만저만 섭섭하고 속상한 게 아니었다.

 "너, 수액줄 안 바꾸고 쓰던 걸 그냥 가져와서 연결했지? 간호대에서 그렇게 배웠니? 간호사가 거짓말이나 하고 말이야!"

 병동이 떠나가라 호통을 치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억울했던 나는, 당장 수액 연결하는 재료들을 몽땅 병실에 가져가서 그 환자가 보는 앞에서 수액줄을 교체해 주었다.


 임종 환자를 상담했던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부정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환자들이 많다고 주장했다. 그의 분석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지만, 이 가설만큼은 김종훈 씨의 상황에 제법 들어맞는다. 그는 지금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기력함과 싸우며, 그 분노를 주변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연배에, 가장으로 평생을 살아온 분들에게서 흔히 보았던 모습은 아니다. 아프다, 죽는 게 원통하다, 왜 하필 나냐, 화를 내고 무너져 내리기보다는 입을 굳게 닫고 조용히 죽음을 맞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가족들에게는 큰소리치며 분노를 쏟아내진 않는 것 같다. 꽃다운 나이에 지금보다 더 예뻤을 아가씨가 시집와서 애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하다가, 이제 좀 허리 펴고 남편과 여생을 즐길만하니, 병간호로 고생하다가 남편을 먼저 보낼 운명이라니. 같은 여자가 생각해도 기가 차다.


 매일 같이 김종훈 님은 서슬 퍼렇게 병동 직원들을 노려보고 있다. 어디 두고 보자, 내가 이렇게 죽을 날이 가깝고 절박한데, 그 정도밖에 못 해 주느냐! 책에서는 뒷짐을 진 정신과 의사가 설교한다. 분노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분노 자체에 대응하지 말고 분노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라고. 분노하는 환자에게는 아무도 다가서지 않으니 결국 가장 외로운 존재가 된다고.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환자 곁에 얼마나 있어 봤냐고. 환자 한 명이 분노로 날뛰는 동안에도 수십 명의 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다른 환자는 누가 돌보냐고. 현실과 이상의 간극이 그만큼 크다. 미워하지 말자, 그는 나보다 극한의 상황에 처해 있어, 나보다 약자이고, 죽을 날을 알고 있으니, 마치 사형대에 곧 올라갈 사람처럼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라고. 


 누가 뭐라든 그가 너무 밉다. 환자에게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고 밤낮으로 곁을 지키는 나의 정직성을, 당신이 뭘 안다고 의심만으로 심판하는가 말이다. 응, 네가 그간 그런 맘보로 살았구나, 그러니까 네가 아픈 거지, 악담하는 걸 신은 들으셨다.


*사진: Unsplash (Maryna Kazmirova)

이전 05화 직장 여성다운 게 뭔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