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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un 20. 2023

락스 살인

아들에게

 아들아, 언젠가 네가 이 편지를 본다면 나를 많이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를 죽인 건 바로 나야. 정말 미안하다. 사실 나는 다른 남자를 사랑했어. 네가 아버지 핏줄인 건 확실하다만, 네 미소는 내가 사랑하던 그분을 참 많이 닮았어.


 요즘 말로 하면, 네 아빠는 스토커였어. 가진 것 없이 4년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성공을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살았지. 우연히 도서관에서 신입생인 나를 봤고, 당시 군 제대 후 복학생이었던 네 아빠는 매일 같이 내 곁을 맴돌았어. 


 네 아빠 그림자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랐던 날들이었어. 혐오라는 게 뭔지 경험했지. 여자애들이 많던 우리 과에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뜨려서 내 앞길을 막았어. 결국 고등학교 동창이던 친구 부모님을 통해 우리 가족들에게 소문이 전해졌고, 머리채를 붙잡혀 내 아빠랑 결혼하게 된 거야. 그때는 그랬어. 지금 같았으면 네 아빠는 유치장을 들락거리다가 내 인생에서 삭제당해야 마땅했겠지.


 그래, 지옥이었어. 원수와 매일 살을 맞대고 사는 게. 죽을까, 아파트 난간에 서서 저 아래 떨어져 피를 흘리는 내 모습을 그려보는 시간이 많았어. 그러다가 네가 나에게 찾아왔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너는 그때부터 내 희망이자 기쁨이지. 아버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자책하지 마. 부모님의 기대, 가족의 바람, 세상이 만든 박스 안에서 산다고 인생이 행복한 건 아니잖아. 아버지의 아들로서 네가 누릴 수 있는 걸 충분히 누리고, 내가 고통받는 대신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엄마는 아무래도 좋아.


 요즘 아버지가 아픈 건 내 탓이기도 해. 아버지에게 주는 그릇은 잘 헹구지 않았어. 아버지에게 주는 음식에는 더럽고 흉측한 저주를 퍼부었고. 내 복수가 23년 만에야 성공하다니, 내 방법이 너무 소심했던 거겠지.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은 후로는 음식에 락스를 한 스푼씩 넣었어.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 그릇을 덜 헹궈서 세제를 조금씩 먹일 때는 이 정도로 불안하지는 않았어.


 네 아빠는 빨리 죽는 게 모두를 도와주는 거야. 아픈 이후로 너에게 모진 말을 일삼고, 병원 사람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악담을 해 대고 소리를 지르고, 병실에 아무도 없을 때는 나를 깨물거나 꼬집곤 해. 그것도 옷을 입으면 보이지 않는 부분만 골라서. 네 아빠 근처에 다가가기도 싫어. 요즘은 같은 공간에 숨 쉬는 것도 끔찍하고 내 폐부까지 더럽혀 지는 기분이야.


 너를 낳고 나서부터 각방을 썼어. 너를 돌봐야 한다고 했지. 아버지가 승진하기 위해 일에 매달리는 동안 너무 행복했어. 네 학업을 핑계로 아버지 직장에서부터 먼 곳으로 이사를 했지. 출퇴근만으로도 피곤한 네 아빠가 내 곁에 얼씬도 못 하게 말이야. 집안의 대소사도 내가 모두 처리했어. 아버지가 직장에만 집중하고 나와 말을 섞을 일도 없게 말이야. 아버지에게 애인이라도 생겼으면 간절히 바랐단다. 네 아빠와 멀어지면서도 네가 다치지 않도록 감쪽같이 이중생활을 해야 했어.


 그런데 요즘은 악몽을 꾼단다. 살인자로 잡혀가는 꿈을 꿔. 의사가 아버지를 부검하고, 락스와 세제에 중독된 상태로 판명되었다고, CCTV에 몰래 락스를 넣는 내 모습이 찍혔다고 하는 거야. 세제 때문에 대장에 암세포가 생겼고 락스 때문에 폐로도 전이가 되었다고, 나를 추궁하는 꿈도 여러 번 꾸었어. 결국 나는 벌을 받겠지. 이 세상에서 운 좋게 피하더라도 말이야. 


 아들아, 미안하다. 네게 좋은 세상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내가 이걸 실토한다면 네게 지옥이 되겠구나. 이 편지는 네게 보내선 안 돼. 23년간 그랬듯이, 함구하마. 어차피 받게 될 벌이라면, 죽는 그 순간까지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행세할게. 절대 속죄하지 않을 거야. 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희생당하고 아주 소심한 복수를 한 것뿐이니까.


* 사진: Unsplash (Adrie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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