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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un 20. 2023

우리는 누군가를 짓밟아야 행복하다

 강지원이랑 인계인수를 하면 항상 불안하다.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이 병원에 입사했는지 모르겠다. 'Liver Biopsy'가 간 조직을 떼어내는 시술이라는 걸 안다면, 시술받은 지 두 시간도 안 된 환자에게 무슨 생각으로 일어나 보라고 할 수 있나 말이다. 입사한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인퓨전 펌프를 쓸 줄 몰라서 슬금슬금 도망 다니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차라리 모르면 솔직히 고백하고 얼른 배우면 되는 거 아닌가.


 환자에게 처치하면서 쓸데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고, 그렇게 정신이 딴 데 있으니 수혈하다가 적혈구 팩을 찢어 먹는 거 아닌가. 흰 가운에 선혈이 낭자했다는 후문을 환자들 입에서 듣는 것만으로 아찔하다. 의사에게는 어찌나 별의별 문자를 보내는지, 얼마 전 막장을 찍었단다. 저런 애들이 3교대 근무 버티고 수간호사에게 아첨 떨다가 눈에 들어 승진하면 내가 근무했던 이 병원 수준은 똥이 되는 거다.


 환자 중에서도 폐를 끼치는 진상이 있었다. 그 환자는 갓난아기를 둔 젊은 아빠다. 오죽하면 승훈 환자 엄마가 불평했겠냐고.

 “저는 도저히 말을 못 하겠는데... 제발 뭐라고 좀... 해 주세요. 요즘 훈이나 지석이, 애들 식욕이 없어서 엄마들이 한 걱정인데, 어찌나... 먹고 토하고를 반복하는지, 항암치료하고 며칠은 뭘 먹어도 토하게 마련이잖아요. 처음이라 뭘 몰라서 그런 건지... 좀 그만 먹고 쉬어야 한다고, 그만 좀 먹으라고 얘기 좀 해 주세요. 아니면 1인실로 가던지요. 우리가 슬쩍 언질을 줘 봐도, 고집이 얼마나 센지, 말을 안 들어요.”


 “우웨엑, 꾸웨엑”

 아예 침대에 대야를 준비해 뒀었나 보다. 커튼이라도 좀 치고 있든지, 완전히 공개된 상태에서 모두에게 토하는 모습을 생중계하고 있었다. 미영은 황급히 커튼을 치고 구토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뭘 그리 많이 잘 씹어 드셨는지 형형색색의 음식물이 잘 부서진 상태로 삼켜졌다가 소화액과 잘 버무려져 이 세상 빛을 다시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미움과 원망의 눈빛을 애써 지우고 준비했던 말을 건넸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이번이 첫 항암치료인가요? 보호자는 당분간 못 오시나 보죠? 이렇게 힘들 때는 한 분이라도 옆에서 지내시는 게 좋을 텐데요. 그 항암제 맞고 며칠 간은 구토 증세가 심해요. 자꾸 토하면 식도 쪽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는데, 저... 영양제 맞으면서 좀... 쉬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게 토하면서도 또 먹기를 시도하는 그가 미련해 보였다. 그런데 차마, 그럴 바에는 그만 좀 먹으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린 아기와 젊은 신부를 두고 죽을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내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승훈 어머니의 실망한 눈빛을 애써 못 본 척하며 황급히 병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 사진 : Unsplash (Mattia Ascen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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