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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민 Jun 20. 2023

환자를 돌보는 찌질이

그게 나일까

 남들은 나를 오해한다. 무표정한 얼굴에, 의사들이 시비를 걸어도 눈도 깜빡하지 않고 내 할 일만 하는 강성. 임종을 앞둔 사람이 있어도 자기 할 일에만 철저한 냉혈한. 멋 부릴 줄도 모르고 연애도 안 하는 숙맥. 나도 생각이 있어, 참는 거야, 너희들이 내 뒤에서 어떻게 떠드는지 나도 다 전해 듣는다고, 언젠가 병동이 떠나가게 소리치고 싶다.


 ‘강민우 선생님, 간곡히 부탁드려요. 제 전화 좀 받아주세요. 전화가 어려우시면 문자라도 보시던가요. 부탁입니다. 며칠 전 311호실 신환 호르몬 검사 처방 내신 거, 잘못된 것 같다고, 확인 부탁드린다고 제가 문자 드린 거 보셨죠? 전화 안 받으셔서 문자 보냈거든요. 환자 앞에서 간호사가 검사 잘못한 거라고, 어서 사과드리라고, 그렇게 면박 주셨을 때 제 기분이 어땠을지, 설마 아시겠죠. 병동 회식할 때는 저보고 동생 같다고 하셨잖아요. 동생까지는 안 바랄게요. 밤에 아프다고 하는 환자, 열 나는 환자 있어서 연락드릴 때 답 좀 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메시지가 그리 큰 문제가 될 줄 몰랐다. 그동안 내 메시지에 한 번도 답을 안 하기에 내 번호가 수신 차단되어 있겠거니 했다. 수간호사에게 사과문을 대자보로 써서 붙이라고, 강민우가 병동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를 때, 이렇게 되는 거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의사이고 나는 그의 수족에 불과했다. 그는 잘난 집안에서 왕자로 자란 기득권자이고, 나는 지방 똥통대 간호학과를 겨우 나온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수간호사가 병동 분위기를 위해서 의사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 주기를 부탁했을 때, 직장이라는 게 냉혹하구나, 놀랍고 치가 떨렸다. 어디 하소연하거나 조언을 구할 곳이 없어서 내가 무릎을 꿇는 게 맞는 건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예의 없는 거라면, 그의 잘못은 환자에게 성실하지 못하거나 간호사의 보고를 무시한 것인데도, 결국 나는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나는 그와 다른 클래스임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날 이후 출근하는 게 지옥 같다. 먹고 살기 위해서, 비싼 학비 융자금도 갚고 할머니께 생활비를 부쳐 드리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출근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아버지, 나를 낳고 산욕열로 세상을 뜬 어머니, 우리 집 가장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던 할아버지. 공장 프레스기에 머리가 박살 나서 내가 보는 앞에서 피를 흘리다가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내가 겪었던 불행에 비하면 당신들의 죽음에는 부족한 게 없다. 죽음이 예견되어 소중한 시간이 주어졌고, 같이 울어줄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당신들에게 무얼 더 해 주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애도 마찬가지다. 내가 못 가진 학벌, 헌신적인 엄마, 비싼 병원비를 내 줄 수 있는 아빠, 그와 마찬가지로 잘난 친구들, 다 가졌다. 잘난 인생을 살았으니 조금 일찍 죽는다고 그렇게 애석할 일은 아니다. 그의 또래이지만 매 순간 죽지 못해 사는 나보다 불쌍할 리가 없다. 타락한 영혼을 기숙사 방에 가둬 놓고 출근해야 그나마 일을 할 수가 있다. 환자들을 동정하지 않는다고, 사랑이 없다고 해서 그들을 해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우리 엄마는 출산 후에 태반 찌꺼기가 남아있다는 말을 듣고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단다. 병원이나 조산원에 갈 형편이 안 되어서 나를 집에서 낳았기 때문에 탈이 났던 게 틀림없다. 엄마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궁금해서, 엄마처럼 가난한 환자도 치료해 주고 싶어서, 그래서 비싼 학비를 내면서도 간호대를 졸업했다.


 연애도 안 하는 찌질이라고? 부모 잘 만나서 입시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받은 덕분에 간호학과에 왔으면서, 아르바이트 한 번을 안 해도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고 어학연수까지 다녀왔으면서, 지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병원에 다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손가락질하는 미친년들. 내 안의 악마와 싸우기 위해서 환자들에게 끊임없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진다. 뭐라도 얘기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간호사 스테이션에도, 의사들과의 회식 자리에도,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서 붕 뜬 내 존재를 잡아주는 건 병실밖에 없다.


* 사진 : Unsplash (Annie Spr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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