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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일간 Jul 14. 2024

우리 딸 돌잔치는 기억 안나지만,
조카의 돌잔치

짧은 생각의 기록

돌잔치라는 행사를 잊은 지 오래다. 내 딸아이의 돌잔치 기억은 별로 없다. 떠오르는 기억들도 사진 앞뒤로 몇 초씩 떠오르는 순간들이다. 오랜만에 머리와 화장을 한 어머니, 아버지는 아직 젊어 보였다. 딸아이는 계속 울어댔다. 두 할아버지들이 인사하자 더 싫다는 듯 울어댔고, 사진작가를 보자마자 더 크게 울어서 할아버지들은 그나마 가까운 편이구나 생각했다.    


한동안 어색한 네 부모님들이 이렇게 만나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후에 뭘 먹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연히 음식 사진 또한 없다. 평소 갈 기회가 없는 호텔이었고, 메뉴를 고를 때 늘 그렇듯 중간 보다 약간 아래의 메뉴를 시켰던 것 같은데,  음식 좋아하는 내가 단 하나의 메뉴도 기억이 안 난다. 와이프도 맛은 있었던 것 같다고만 한다.


민망하고 멋쩍을 때의 어머니 특유의 표정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항상 사람 좋은 모습이었다. 죄송하게도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학생이었던 처남은 반바지를 입었고 우리 딸아이는 청진기를 잡았다고 얼마 전에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식당 들어가기 전에 아이가 크게 넘어져서 걱정했던 순간만 떠올랐다.


10년이 지나, 나는 딸의 손을 잡고 룸에 들어간다. 어른 분들만 있던 공간에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들어가 생기를 만든다. 할아버지를 보고도 울던 아이는 할아버지의 형제들을 보면서도 생긋 웃으며 인사한다. 한 바퀴 어른들에게 인사를 한다. 세지는 않지만 가볍지는 않게 잡은 그 두 손들과 나를 보는 그 눈빛들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어른인 척, 다 잘하고 있는 척, 괜찮은 척하려고 했다. 그러다 제일 높은 어른 분의 ‘지난 한 해 고생 많았다.’는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글썽이는 눈으로 대답을 대신한 듯하다.


아이가 나 대신 인사들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외할머니의 마스코트이자 자랑거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부끄러운지 아이의 대답소리가 계속 작아진다. 잔소리를 하러 갈까 하다가 그냥 외할머니와의 추억에 나를 끼워 넣지 않기로 한다.


홀매니저가 들어와서 유명인사 만찬이 이곳에서 있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우리를 대접할 수 있어 기쁘다고 한다. 이 자리에 온 우리가 대단한 것은 아니고, 이 자리를 만들어준 오늘의 주인공 아이의 존재가 대단한 걸까 생각한다.


동생은 죽어도 싫다고 하던 아이는 사촌동생이 귀엽다고 자꾸 보러 간다. 딸아이가 동생 싫다고 난리 친 것도 둘째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살짝 배신감이 느껴진다. 나도 따라 가니 아기가 생긋 나를 보며 웃는다. 순간 나도 저 조그마한 아이를 느껴보고 싶다 생각했다. 살짝 들어 안았다. 10년 전 딸아이를 안았을 때 느낌이 떠오른다. 어떻게 안았지 잠깐 고민하다가 덜컥 잡았는데,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안게 되었다.


이 아이는 또 어떻게 자랄까?
내 딸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호사스러운 식사가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이제 더 이상 맛의 의미가 없어질 때, 홀 매니저가 돌잡이 사회자로 등장했다.


판사봉과 청진기는 참으로 스테디셀러다. 주인공의 아빠와 할아버지에게 사회자(서빙보다 사회를 더 잘 보는 느낌이다.)가 무엇을 들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니 둘 다 명주실이라고 한다. 다 알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투병 중에도 지금 이 자리에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그리고 그걸 이뤄낸 감사한 사람. 직접 고개 돌려 보지는 않지만 서로 눈에는 바로 옆에 있는 그 사람을 그리고 있다.


아이는 머뭇거리지 않고 판사봉을 바로 잡아 들어 몇 번 휘둘렀다. 너무 빨리 끝나 아쉬운지 사회자가 한번 더 기회를 주었다. 우리 모두 재시도가 있으면 좋겠지, 아니면 두 번의 인생을 살아도 좋겠지.


아이는 조그마한 상자를 들었다. 상자는 건물 모양이었다. 세상에 직업이 그렇게 다양해도 저 돌잡이상에는 10개도 올라가지 못하겠지. 내 직업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그 대신 일을 안 해도 되는 건물주가 있다.  


나는 돌잡이가 같은 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나는 내가 뭘 잡았는지 지금까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살면서 얼마나 많은 변덕이 있을 것이고, 뭘 잡았다고 그대로 되기를 믿을 것도 아니니깐. 심지어 나는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사람이다.


순간 주변을 둘러봤다. 칠순과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순간 아차 싶었다. 이건 저 작은 아기의 미래를 결정하는 미신과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


20년 후,
저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언뜻 훔쳐보는
미래의 아주 작은 파편이었다.

정말 저 아이가 판사가 될 거라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다만 보고 싶은 것이다. 볼 수 없을지 모르는 그 미래를. 그 희망적인 미래를. 내가 못 보더라도 나를 닮고 내 아들을 닮고 내 조카를 닮고 그래서 여기 있는 모두를 닮은 저 아이의 미래를. 미신이나마 저 작은 소품을 통해 꿈을 같이 꿔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미래를 직접 확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가 몇 년 만 더 함께 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회자가 그 제일 높은 어른에게 무엇을 잡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나를 울릴뻔한 그분이 말씀하셨다.


“아기가 잡고 싶은 걸 잡으면 되지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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