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가 될 무렵, 오랜만에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들과 먹으라며 과일을 보냈다며, 좋은 일들과 나름 속상한 일들을 풀어내 보인다. 당장 몇 달 후 이사를 해야 하는 나는 전셋값 걱정이 가득인 요즘이다. 그런 내게 동기의 이야기들은 철없는 투정으로만 들려올 뿐이었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그로 인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각기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편이다. 아주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어도 무언가를 하고자 했을 때, 내 엄마는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여 우리에게 내어주시곤 하였다.
미국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가장 먼저 느꼈던 건 미국 친구들의 인종 차별이 아닌, 같은 한국인끼리의 다름이었다. 경제적 풍요로움을 지닌 그들의 태어난 순간부터 당연시되었던 삶의 방식들을, 혹은 그들을, 미워하거나 부러워하지도 않았었다.
내 상황에서 미국 땅에 서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난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자유로움에 가슴이 매일 솜 밤 망 이질을 마구 쳐대며 미칠 듯이 좋았었다. 그런 삶의 가장 흥분된 순간들이 이제 십 년 전 추억으로 자리 잡아, 현재도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해주곤 한다.
너도 나도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누군가는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억 소리 나는 집 이야기를 가볍게 내게 해온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보내는 이 시간들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생각하는 매일이다. 겉모습이야 늙으면 다 주름질 테니, 내 마음을 토닥여주는 이 행위들이야 말로 최고의 친구이자 행복한 재산이겠다 싶은 생각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두 아이가 나에게 있다. 잃어버린 꿈으로 슬퍼하기엔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 아직은 이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인 아이들과 마주하면서 보내는 이 시간들에 감사하자. 그렇게 내 스스로를 위로하고 도닥여주며 오늘 하루가 또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