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연 Mar 14. 2024

정리의 목적


  어떤 일이든 그 일의 목적과 의미를 분명히 알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리도 마찬가지죠. 본격적인 정리 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저는 곤도 마리에의 저서 《정리의 힘》의 조언에 따라 정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즉 내가 정리를 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활은 어떤 모습인지 그려 보았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현재의 삶에 충실한 공간


고고학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의 물건으로 채워진
생기 있는 방이면 좋겠어.


  마리에는 우리가 집안을 정리한 뒤 사고방식, 삶의 방식, 인생이 달라지는 이유가 정리를 통해 '과거를 처리'하기 때문이라고 니다.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대대적인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집에는 과거의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 마련입니다. 제 경우에는 대표적으로 옛날 책, 교과서와 노트, 각종 수업 교재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 외에 과거의 순간순간을 기념하고 추억하려고 남겨둔 작은 메모, 티켓 등 자질구레한 소품도 한가득이었죠. 열심히 공부한 과거의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뿌듯함을 잊지 않으려고 혹은 나중에라도 공부하겠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남겨둔 자료는 구닥다리가 된 지 오래였고, 추억은 물론 소중했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다 기억하자니 물리적 공간의 용량은 물론이고 뇌의 용량도 버텨내지 못할 게 뻔했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물건과 더불어 '과거의 나' 또한 보내줄 때가 된 것입니다.




편안하고 여유로운 공간, 영감을 얻고 집중하는 공간


공간(空間)의 매력


  물건이 많이 놓여 있어 시각적 자극이 많고 비좁은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자기 방의 어질러진 모습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깔끔하게 정돈된 호텔 방에 가면 마음이 한결 차분하게 가라앉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온갖 휘황찬란한 빛깔에 커다란 글씨가 쓰인 간판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을 상상해 보세요. 눈이 피로하고 마음이 쉽게 불안정해지지 않나요? 물건이 지나치게 많고 정리되지 않은 공간 역시 우리에게 그와 비슷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과거 저는 물건을 마구 늘어놓지 않고 나름대로 차곡차곡 잘 정리해 두는데도 왜 이렇게 방이 어딘지 꽉 막힌 느낌이 들고 답답할까 의문스러웠습니다. 사실 그 답답함조차 어느 정도 정리에 눈을 뜨고 나서야 알아차렸죠. 답은 간단했습니다. 불필요한 물건을 잔뜩 쟁여두고 있었으니, 그것을 아무리 차곡차곡 꽂아두고 오와 열을 맞춰 배치한들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고 방 안 분위기도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불필요하거나 지나친 자극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야금야금 갉아먹습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편안하고 여유롭게 휴식하기도, 영감을 떠올리며 집중해서 일하기도 쉽지 않지요. 그래서 저는 이상적인 휴식과 작업을 위해 더는 물건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지 않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청소하기 쉬운 공간


청결함도 빼놓을 수 없지.


  위에 언급한 두 가지가 심리적 목적이라면 이번에는 좀 더 실질적인 목적입니다. 방은 청소한 지 하루이틀만 지나도 눈에 띌 만큼 먼지가 쌓입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이 사실을 정리를 한바탕 마친 후에야 깨달았습니다. 예전에는 물건이 많으니 수납공간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닥이나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이 많았습니다. 바닥을 차지한 물건이 많으면 물건을 하나하나 옮겨가며 청소하기가 번거롭다 보니, 자연히 저는 적당히 보이는 먼지만 그때그때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방 전체를 쓸고 닦는 청소는 어쩌다 한 번씩만 했습니다. 청소를 게을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나 할까요. 어쩌면 그때 마시고 산 먼지 덕택에 면역력은 조금 좋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빈 공간이 주는 편리함과 청결함의 맛을 봐버린 저는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소하기 쉬운 공간'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두고 정리 방식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일단 물건을 적정량으로 줄이면 책상 서랍이나 옷장, 신발장처럼 이미 있는 수납공간만으로도 충분히 물건을 수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물건이 밖에 나와 있지 않으니 물건에 먼지도 쌓이지 않을뿐더러 바닥이나 책상 위도 훨씬 더 수월하게 쓸고 닦을 수 있게 되지요. 정리는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깔끔쟁이로 거듭나는 방법인 셈입니다.



빈자리에는 무엇을 채울까: 설레는 물건에 둘러싸인 삶


  마리에는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만으로 채운 공간에서 설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작정 버리고 치우는 '비우기' 작업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죠. 죄다 비우고 나면 어떠한 특색도 설렘도 없는 무미건조한 공간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설레지 않고 불필요한 물건이 떠나간 자리에는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들어와야 비로소 '이상적인 생활'이 완성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애써 만든 여유 공간을 포기하고라도 새로이 들여놓고 싶을 만큼 설레는 물건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물건보다는 빈자리, 즉 공간 자체에 설레다 보니 사실 아직도 비우고 싶은 물건이 많고, 그나마 남겨둔 물건들도 특색이 두드러지지 않는 밋밋하고 담백한 디자인이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예전보다 특색 없고 재미없는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이 모습도 나름대로 퍽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정리를 통해 각자의 취향에 꼭 맞게 공간을 꾸며서 더욱 설레는 하루하루를 만끽해 보시면 어떨까요?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전 01화 머리가 무거워서 물건을 비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