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신발이 몇 켤레나 필요할까요? 신발은 액세서리가 아닌 실용품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또 신발을신고 가는 장소와 하는 활동에 따라 필요한 신발의 종류가 달라지므로 누구나 기본적으로 신발을 여러 켤레 구비하고 있기 마련이지요. 한편 요즘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구두나 운동화 등을 수집하는 사람도 적잖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신발은 실용품의 영역을 넘어서서 수집품이나 사치품의 지위를 지니기도 합니다.
제게 신발이란 실용품의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물건이었습니다. 한창 옷차림에 신경을 쓰던 시기에 '이 옷에는 어떤 신발이 어울릴까' 고민하기는 했지만, 옷에 대한 흥미에 비하면 신발에 대한 흥미는 미미한 편이었죠. 그러나 어릴 때는 부모님이 사주시는 신발을 별 고민 없이 받아들이고, 조금 더 커서는 다양한 용도와 상황을 고려해 소위 '기본템'이라는 신발을 하나 둘 사들이다 보니, 나중에는 신발 수가 상당히 많아져 있었습니다. 신발 수가 많아지자 저는 자주 신지 않는 신발은 신발 상자에 담아 방 한구석이나 침대 밑에 따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신기도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쓰는 현관 신발장은 이미 꽉 차 있었고, 오래되고 잘 신지 않는 신발도 많아 다소 지저분하게 느껴졌거든요. 어머니는 신발을 굳이 신발장이 아닌 방에 보관하는 저를 의아하게 보기도 했지만 이미 여유 공간이 부족한 신발장에 제 신발을 겹치고 구겨서 넣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의도한 정리와 의도치 않은 정리
지금까지 제가 정리한 물건은 대부분 '의도한 정리' 절차에 따라 제 손을 떠나갔습니다. 특별한 하자가 없어 아직 신으려면 신을 수 있지만, 불편해서 잘 신지 않는 신발이 이렇게 정리되었죠. 그러나 신발이라는 품목에는 유독 '의도치 않은 자연스러운 정리'도 많이 작용했습니다. 즉 신다 보니 여기저기 떨어지거나 닳아서 버린 신발도 적지 않았습니다. 실용품으로서 기능과 수명을 다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한 셈이죠. 그리하여 제가 가진 신발 수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최소의 신발로 최대의 효율을
본격적인 정리 라이프에 들어선 이 시기의 저는 이제 최소한의 신발로도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고 싶었습니다. 본래 운동화를 신고도 걸핏하면 넘어질 위기에 빠지는 현란한 스텝의 보유자로서 높은 구두 신기는 진즉에 포기했었습니다. 그간 시도했던 비교적 낮은 굽의 신발이나 단화, 딱딱한 옥스포드화 등도 발이 아파서 불편했죠. 이제 겉으로 보이는 멋보다는 제 몸이 편한 게 더 중요했고, 다양한 상황에 알맞은 신발을 용도별로 각각 구비하기보다는 한 켤레로 최대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발이 편하면서도 어떤 패션에도 무난하게 어울리고, 또 지나치게 캐주얼하지 않아 중요한 자리에도 웬만하면 큰 무리 없이 신고 갈 만한 신발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제가 찾은 답은 '검은 운동화'였습니다.
궁상이 아니라 고도로 계획된 미니멀리즘입니다만
검은 운동화를 구매한 뒤 저는 이 신발을 산 본래 의도대로 어딜 가나 이 신발을 주구장창 신고 다녔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당시 제게는 이 신발 말고도 신발이 더 있었습니다. 아직 말짱한 샌들 한 켤레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죠. 다만 슬슬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시기였으므로 이제 샌들을 신기에는 날이 조금 선선했습니다. 이때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운동화 세탁을 맡기려 하니 운동화가 세탁되는 이삼 일간 신을 신발이 마땅찮아진 것입니다. 처음에 저는 약간 당황했지만 바깥 기온은 아직 선선한 정도였고, 그때는 외출이 잦은 시기도 아니었으며, 어차피 이삼일 정도만 있으면 신발은 금세 다시 올 테니 그동안은 샌들을 신으면 되겠거니 했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화 세탁 사건 때문에 저는 부모님에게 '신발 한 켤레밖에 없는 애'로 낙인찍히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볼 때마다 신발 좀 사라며 성화셨고 어머니는 이 기막힌 사연(?)이 퍽 인상적이었는지 친척에게 이야기하셔서 저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 분께 "너 신발 하나밖에 없다며? 왜 그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한창 멋 부릴 나이에 고작 운동화 한 켤레로 살아가는 제가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 눈에는 퍽 궁상맞고 안쓰럽기까지 했던 모양입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자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때 저는 '내 신발 개수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구설에 오를까' 싶어 당황스럽기도 했고 제 선택을 존중받지 못해 조금 서글펐습니다.
신발 한 켤레로도 살아집니다
신발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정말 당연한 사실이 있습니다. 인간의 발은 둘뿐이고, 우리는 한 번에 한 켤레의 신발만 신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옷은 스타일이나 바깥 기온에 따라 여러 겹을 겹쳐 입을 수 있지만 신발은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동시에 여러 켤레를 겹쳐서 신을 수 없습니다. 이토록 지극히 당연한 깨달음에 이르고 나니 애초에 예전처럼 그렇게 신발이 많을 필요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이 깨달음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주었습니다.
지금 저는 신발 두 켤레로 살고 있습니다. 편하게 자주 신는 신발 한 켤레와 약간 아껴 신는, 좀 더 날렵한 신발 한 켤레입니다. 소제목과 달리 한 켤레가 아닌 두 켤레로 살고 있습니다만, 두 번째 신발은 거의 '예비용'에 가깝게 적은 빈도로 신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한 켤레로도 거뜬히 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다만 만약을 위해, 또 소소하게나마 멋도 부리려고 한 켤레를 더 구비해 두었을 뿐이죠.
이로써 의류 중 마지막 순서인 신발 정리도 무사히 마쳤네요.혹시 여러분의 신발장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신지 않은 지 오래된 신발, 내 발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아프게 하는 신발이 있다면 정리해 보시면 어떨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