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접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면 이전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정리와 미니멀리즘도 예외는 아니죠.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고, 물건을 대하는 태도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새로운 시선으로 남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리와 미니멀리즘에 눈을 뜨면 주위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속속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원래도 짐이 매우 적은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 집에 이렇게 물건이 많았던가?', '우리 집에 이런 물건이 있었다니!' 같은 반응이 나옵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보다 물건을 많이 갖고 있고, 그것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자기 물건을 새삼 마주하고 정리해나가다 보면 슬슬 다른 사람의 물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바로 조심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 물건도 다 정리하지 못했으면서 남에게 훈수를 두기 쉽기 때문이지요. 물론 내 물건을 완벽히 다 정리했다고 해서 남에게 함부로 충고하거나 조언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정리에 눈뜬 사람 입장에서 다른 사람, 특히 함께 사는 가족의 물건을 보면 답답할 수 있습니다.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어릴 때부터 온 집안을 정리하고 다녔는데, 가족이 쓰지도 않으면서 굳이 보관해 두는 물건을 보면 치우고 싶은 마음에, 물건을 한동안 깊숙이 숨겨뒀다가 몰래 버린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마리에의 계획대로 가족이 그 물건을 까맣게 잊어버려서 별문제 없이 지나가기도 했지만, 간혹 그 물건의 존재를 기억해 내고 물건이 어디 갔냐며 찾기도 했다고 하네요. 어린 마리에는 자기가 버리지 않았다며 부인했지만, 사실을 모를 리 없던 가족은 마리에에게 '정리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불필요해 보이는 물건은 남의 것이라도 치워버렸던 미성숙한 시기를 지나 진정한 정리 전문가로 거듭난 곤도 마리에는 고객에게 이런 고민을 자주 듣는다고 합니다.
'저는 정리했는데 남편이 정리를 안 해서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부모님도 물건을 정리하게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이해할 법한 고민들입니다. 혼자 아무리 열심히 정리한들 같이 사는 가족이 정리에 동참하지 않으면 '깔끔히 정리된 집'이라는 목표는 요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기가 정리하면서 느낀 쾌적함과 산뜻함을 사랑하는 가족도 함께 느꼈으면 하는 마음도 클 테니까요. 그러나 정리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마리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뾰족한 수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저 남에게 정리를 종용하거나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고, 자기 물건부터 열심히 정리하라고 조언하지요. 물건에 대한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물건이 정말 필요한지 아닌지는 그 물건을 소유한 당사자가 아니면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묵묵히 내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내 방이 눈에 띄게 멀끔해지고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면 주변 사람도 자극을 받아 스스로 정리에 나설 수도 있고요. 뭐니 뭐니 해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효과적일 겁니다. 설령 상대방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대도 그것은 그 사람의 방식이니 존중해야 하고요.
한 지붕 아래 공존하는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
이와 반대로 지난 화에서 언급했듯 내가 정리하는 것을 주변인이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이 맥시멀리스트 성향이라면 더 그렇겠죠. 이런 경우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려면 되도록 주변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집에 사는데 어떻게 눈에 안 띄느냐 싶겠지만, 정리에는 크게 두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바로 '버리기'와 '수납하기'죠. '버리기'는 남길 물건을 추려서 나머지를 버리는 작업이고, '수납하기'는 남기기로 결정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작업입니다. 이중 첫 번째 단계인 '버리기' 작업을 할 때 버리려고 모아둔 물건 더미만 상대방에게 보이지 않게 하면 됩니다. 물론 정리가 무슨 국가 기밀 작전도 아니고 잘못하는 일도 아니니 지나치게 유난을 떨 필요는 없지만, 상대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내 정리 작업에 차질이 생기거나 서로 감정이 상할 우려가 있다면 미리 살짝 조심해 주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겁니다. 내가 어느 입장이든 상대를 판단하거나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