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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연 Apr 18. 2024

보부상이 슬링백을 메기까지

일상이 가벼워지는 정리


  누군가의 방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이와 비슷하게 가방도 가방 주인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어쩌면 그래서 '왓츠인마이백What's in my bag'이라는 콘텐츠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왓츠인마이백' 영상이 올라오면 우리는 그 사람에 관해 더 속속들이 알고 싶은 마음에 영상을 클릭합니다.


  모든 물건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제가 평소 갖고 다니는 가방의 형태와 소지품도 자연스럽게 변화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소위 '보부상'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책가방을 메고 다니던 시절에 그랬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우는 과목은 늘어만 가고, 과목별로 교과서, 공책, 참고서, 문제집이 있으니 가진 책과 공책의 분량도 덩달아 늘었죠. 물론 평소에는 책상 밑 서랍 공간이나 사물함을 적극 활용했지만, 보부상처럼 책을 짊어지고 다녀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바로 시험 기간, 특히 주말이었죠. 그 기간에는 집에서도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시험을 앞둔 주말이면 저는 어떤 과목의 책을 가져갈까 고민에 빠졌습니다. 물론 시험 직전이거나 시험 기간 중이면 굳이 고민할 필요 없이 당장 내일 시험을 치는 과목의 책을 가져갔겠지만, 일이 주 전쯤에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저는 언제 무슨 과목을 공부할지 미리 정해두기보다는 그때그때 하고 싶은, 소위 '삘feel이 오는' 과목을 공부했거든요. 그래서 단출하게 한두 과목만 가져가지 않고,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식으로 여러 과목의 책을 챙겼습니다. 공부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과연 어느 과목이 공부가 잘 될지 모르니, 주말을 최대한 잘 활용하려면 여러 과목의 책을 가져가는 게 유리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에 갔지만 막상 주말 동안에는 책가방 지퍼에 손 한 번 대지 않고 다시 월요일을 맞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결국은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함 때문에 애꿎은 어깨만 혹사한 셈입니다.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은 물론 그 나름대로 유용하지만, 방 안 물건을 정리하거나 가방 속 짐을 줄이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의 만일까지 대비해서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을 죄다 끌어안고 살게 하기 때문이지요. 과거 저는 외출하거나 여행할 때 작은 크로스백을 챙겼습니다. 거기에 안경 닦는 수건, 머리빗, 손수건, 비타민처럼 작은 소지품을 넣어 다녔죠. 밖에 나가 있을 때 '필요할지도 모르는' 물건은 빠짐없이 다 챙겼습니다.


  크로스백은 책가방과 달리 작았고 거기에 넣은 소지품도 대단한 건 없었으므로 사실 무게가 그리 무겁지는 않았습니다. 단출한 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런데 열심히 가방을 메고 여행하던 어느 날, 저는 아무리 가벼운 가방이라도 장시간 지속적으로 메면 어깨가 아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분명 가벼운 무게였지만 시간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습니다. 게다가 곰곰이 되짚어 보니 열심히 가방을 메고 다녀봐야 정작 외부에 있을 때 가방 속 물건이 당장 필요해서 꺼내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짐만 될 뿐이었죠.



가벼운 가방, 가벼운 몸


  학생 때는 이동할 때 거의 늘 책가방을 메고 다니다 보니, 어쩌다 한 번씩 아무 가방도 메지 않은 채 가벼운 동네 외출을 하게 되는 날이면 몸이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더욱 짜릿하게 느꼈습니다. 평소에 비하면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훨훨 날아갈 것 같았죠. 작은 가방 하나만 어깨에 메거나 손에 들어도 활동에 얼마나 큰 제약이 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건만, 저는 이미 어깨가 많이 굳고 허리가 아프게 된 후에야 평소 가지고 다니는 물건을 대폭 줄일 궁리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자잘한 소지품을 거의 없애다시피 추렸습니다. 과거 들고 다니던 물건은 '있으면 쓸 수 있는' 물건이기는 했지만 '그 순간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거든요. 이를테면 안경 닦는 수건은 있으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지만, 굳이 들고 다닐 필요 없이 집에 있을 때만 안경을 닦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매일 쓰는 물건이던 머리빗도 들고 다니지 않기로 했습니다. 전보다 외모에 신경을 덜 쓰게 되기도 했고, 그렇게 수시로 빗지 않아도 어느 정도 형태를 유지하는 머리 스타일에 정착했기 때문이죠. 이제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있지 않은 이상 웬만하면 휴대전화 하나만 챙기는 편입니다.


  사용하는 가방의 형태도 신중하게 골랐습니다. 물론 아무리 작은 가방이라도 굳이 메지 않아도 된다면 안 메는 게 나으니, 외투를 입는 계절에는 외투 주머니를 활용했습니다. 휴대전화와 이어폰 정도는 외투 주머니만 있어도 거뜬히 수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외투를 입지 않는 여름에도 두 손을 자유롭게 하려면 메는 가방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고른 가방이 바로 슬링백입니다.



  슬링백은 용량이 적어서 물건을 많이 담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지품이 거창하게 필요치 않은 가벼운 외출을 할 때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 용도로는 훌륭하죠. 등뒤로 멜 수도 있지만 앞으로 메면 물건을 넣고 꺼내기 쉬워진다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특히 휴대전화는 대표적으로 자주 들었다 놨다 하는 물건이니까요. 일반적인 크로스백과 달리 몸에 밀착되는 형태라 걷거나 뛸 때 가방이 몸과 따로 놀면서 달랑거리지 않는 점도 편리했습니다.




  정리와 미니멀리즘을 접하고 짐보다 내 몸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면서 방 안에 이어 몸과 마음도 가벼워졌습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고, '언제 어떤 물건이 필요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몸에도 자유가 찾아왔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보부상' 유형이라 늘 두 어깨가 무겁다면, 그 모든 물건이 정말 꼭 필요한지 한번 자문해 보면 어떨까요?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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