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가장 하기 싫었던 숙제 2대장이 있었다.
독후감과 일기쓰기였다.
‘책 읽었으면 됐지, 왜 느낀 점까지 써야 해?’
‘내가 오늘 뭘 했는지, 그걸 왜 쓰고 검사까지 받아야 해?’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는 이런 거 안쓰던데?’
그 땐 그토록 이해가 안 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두가지는 정말 중요한 공부다.
왜? 초등학생 문해력 발달과 글쓰기 훈련에 독후감과 일기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교육 과정이나 방식이 변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초등 교육에서 이 두 가지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두 가지 중 오늘은 일기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문해력과 글쓰기 훈련을 위해서라면 일기를 어떻게 쓰느냐, 또 어떻게 지도하냐가 중요하다
1. 뭘 쓰지?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쓴다!
일기쓰기에 앞서 아이들이 잘 하는 말이 ‘쓸게 없다’는 것.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는 이상 매일 학교 -> 학원 -> 집이 일상일 것이다. 매일 똑 같은 하루 같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이 아닌 이상, 사실 매일 같을 순 없다.
매일 푸는 수학 문제라도,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잘 풀렸을 수 있다. 매일 학교에서 보는 짝꿍에게 오늘은 더 고맙거나 서운한 감정을 느꼈을 수 있다. 매일 다니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횡단보도 신호등 ‘운빨’이 좋았을 수 있다.
이렇게 ‘순간’을 생각해보고 기록하는 것이다.
뭔가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로부터 뭔가 특별한 감정을 느꼈을 때, 흔히 농담삼아 “나 오늘 일기에 쓸거야!”라고 하지 않는가.
아이가 어려워한다면 부모가 대화를 통해 이끌어내면 된다. 한 가지만 구체적으로 써야하는 만큼, 질문으로 그렇게 유도한다.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가 아닌, “오늘 체육시간에 뭐 했어?”, “오늘 점심 시간에 밥 먹고 뭐했어?”, “오늘은 친구 OO이랑 무슨 얘기했어?” 라는 식으로 질문하며 대화를 하다보면 아이 머릿속에 일기 한 편이 나올 것이다.
또 이렇게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다보면 아이와의 관계에도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정말 ‘쓸 말’이 없다면?
그 날 아이가 겪은 일이 아니어도,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써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오늘 뉴스에서 이런 소식이 있었는데, 무슨 감정이 들었는지 나였으면 어땠을 지 써보는 것이다.
2. 표현 다양하게 쓰기
초등학교 일기의 전통적인 끝맺음은 ‘참 재밌었다”일 것이다.
정말 글자 그대로 매일매일 재미있게 보낸다는 건 부럽지만, 감정 표현을 좀 더 다양하게 써보는 것이 좋다.
‘재밌었다’, ‘좋았다’던 일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생각해본다. 감사할 수도 있고, 마음이 편해졌을 수 있고, 행복했을 수 있다. 반대로 ‘기분이 안 좋았다’는 일에는 우울했거나 씁쓸했거나, 짜증이 났을 수 있다.
오감 표현을 써본다. 냄새는 어떻고 맛은 어땠는지 실감나고 구체적일수록 좋다. 의성어나 의태어도 활용한다.
‘맛있었다’면 달콤하고 부드러워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을 수 있고, ‘냄새가 좋았다’면 엄마 품에 안겼을 때 나는 포근하고 은은한 꽃 향기를 느꼈을 수 있다.
반복될 수 있는 동사가 있다면 다른 단어로 변형해본다.
‘OO에 대해 엄마가 ~~라고 말했고, 아빠가 ~~라고 말했고, 누나가 ~~라고 말했다’는 것을 ‘엄마가 ~~라고 말했고, 아빠는 ~~라고 설명했고, 누나는 ~~라고 주장했다’라고 쓸 수 있다.
3. 생동감을 주는 따옴표
대화를 인용하거나 내 속마음을 적을 때 큰 따옴표, 작은 따옴표를 활용하면 글에 재미와 생동감이 생긴다.
앞서 계속 언급하고 있는 ‘구체적’인 글쓰기도 실현할 수 있다.
TV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빨리 숙제하라며 화를 냈다. 방금 켰는데 서운해 방에 들어가 울었다.
“너 계속 TV만 볼거니? 숙제 빨리 안해?”
‘방금 켰는데…’
조금 억울하고 서운했지만, 일단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글만 읽었을 뿐인데 목소리가 들리고, 장면이 보이고, 아이 편 들어주고 싶지 않는가?
4. 맞춤법은 놔두세요
일기쓰기는 글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표현하는 ‘글쓰기’다. 맞춤법을 제대로 쓰기 위한 공부가 아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맞춤법은 그냥 넘어간다. 어떻게 표현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맞춤법을 지적하게 되면 아이가 일기 쓰면서 내용과 표현보다 맞춤법에 더 신경써 흐름이 끊기거나 사고가 멈출 수 있다.
맞춤법은 아이가 공부하고 독서를 하면서 저절로 고쳐질 수 있다. 그래도 반복되는 실수가 있다면 아이가 직접 고칠 수 있도록 코칭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