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마운틴의 산 중턱, 링컨스 락

<일주 일기>이면서 <1주 일기>이기도 합니다.

by 지수


19.

블루마운틴의 산 중턱, 링컨스 락



시드니에 있는 5일 동안 밥 먹고 커피 먹고 걷기만 하다가 떠날 것 같다. 투어 신청 앱에 들어가 시드니에 여행 오는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하는지 살펴봐야겠다.


어두운 밤 쏟아지는 별 보기, 사막 위에서 썰매 타기, 호주의 대표 동물 코알라와 캥거루를 만나기, 비치에서의 서핑. 휴대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스크롤하며 끊임없이 내리니 이 투어들의 반복이다. 이 중에서 단 하나의 투어를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게 있어 ‘고민에 들인 시간’과 ‘두통의 정도’는 비례관계다. 사진이 제일 멋져 보이는 별빛투어를 가야지. 깜깜한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보며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무리할 거야.









투어의 시작은 오후 2시 30분. 가이드의 설명으로 시작되는 오후의 여정. 가이드는 호주가 어떤 나라이며 시드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설명한다. 시드니에 온 지 5일 차인데 시드니라는 도시가 내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여행했구나.




블루마운틴으로 향하는 길에 세차게 내리는




그나저나 세찬 비바람이 내리친다. 먹구름도 잔뜩이다. 어쩌면 이 구름들 때문에 별은 못 볼지도 모른다.

그런데 느낌이 좋다.

비바람으로 인해 상공의 모든 더러운 것들이 씻겨 내려가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Lincoln's rock


편도로만 2시간 정도가 걸리는 첫 목적지는 링컨스 락(Lincoln's rock)이다. 시드니 블루마운틴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등반가였던 'Lincoln Hall'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터전으로 향한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 해발 8,600m를 밟고 하산하는 과정에서 고산병으로 인한 환각을 본다. 그의 눈앞은 점점 깜깜해지고 결국 모든 조정 기능을 잃은 채 졸도한다. 링컨이 사망했다고 판단한 팀원들은 그를 두고 하산한다.

그러나 12시간 후, 등반하던 네 명의 미국팀은 절벽에 앉은 채 살아있는 링컨을 발견한다. 미국팀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등반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하산한다.


링컨이 에베레스트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쯤엔 모든 신체 기능이 돌아오고 약간의 동상만 있는 정도였다고-

동상에 의해 손가락 10개의 끝부분과 엄지발가락은 절단했지만 말이다. 이후, 새로운 삶을 얻은 링컨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가 사망한 후, 그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한 장소가 링컨스 락이다.




미국 등반팀 중 한 명인 Dan-Mazur




내게 있어서 링컨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미국 등반팀이다. 에베레스트 완주를 위해 수년간 엄청난 훈련과 노력을 기울인 그들은 완주 대신 구조를 선택한다. 본인이 한 발자국 떼는 것조차 힘든 에베레스트 산속, 그들에게 직면한 이 윤리적 문제 앞에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말이다. 목표를 성취하는 것보다 동료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 그들에게 크나큰 박수를 쳤다. 마음으로 치는 박수다.




링컨스 락을 눈 앞에 두고서 펼쳐진 풍경




아찔한 절벽. 떨어져도 안 죽는다는 것이 진짜일까? 한 번의 방지턱(?)이 있다지만 여긴 발 잘못 디디는 순간 사망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사진의 노예가 된 듯 가이드 앞에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는 나. 지금껏 2019년에 한 번의 인명사고만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웃기게도 어제까지는 너무나 뜨거웠기에 오늘은 '산도 그다지 춥지 않을 거야!'라는 멍청한 생각을 한 나는 쪼리에 반바지만 입고 걸칠 옷 하나만 겨우 챙겨 왔는데 비가 내린 탓일까. 발이 시리다.


“어떡하죠. 저 오늘 별빛투어에서 버스에만 있을 것 같아요. 발가락 떨어져 나갈 것 같아요”

“이름을 바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링컨스 락이 아니라…”







10월 중순, 세찬 비가 내린 후 영상 10도를 기웃거렸던 블루마운틴 산 중턱. 슬리퍼 밖으로 튀어나온 내 발가락은 동상에 걸리지 않은 채 무사히 투어 차량 안으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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