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베이루트 항구

7화 여건조성작전(시돈과 베이루트)

by 혜남세아
여건조성작전[shaping operations]
(출처: 네이버 군사용어사전)

결정적 작전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이뤄지는 제반 작전




레바논을 방문한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지만, 늘 여행같이 느껴졌다. 생애 처음으로 해외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모든 순간이 새롭고 신비로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낯선 곳에서 평생을 함께할 운명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일상이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이른 아침 올리브 숲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과 달콤한 듯 짠내를 머금은 지중해 향기는 코를 자극하며 정신을 맑게 해 줬다. 저녁이 되면 강렬한 태양은 하루를 더 살고 싶다며 지중해와 마을 끝자락에서 끊질기게 버티면서 세상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언덕 부르즈라할 뒤로 보이는 거대한 보름달에게 우리를 양보하며 하루를 지나쳤는데, 그전까지 살던 곳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단지 그곳에서 숨 쉬고 느끼며 존재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가 소중한 감정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보다 일찍 시작했다면 당시 소중한 감정을 글로 고스란히 남겼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몇 자 적어보지만 온전하게 담지 못하는 내 글 수준이 안타까울 뿐이다.


레바논에서는 공식적인 여행은 다녀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휴일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당연히 월차도 없었지만 귀국 후에는 긴 휴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목적으로 레바논에 주둔한 다른 나라 공식행사는 참여할 수 있었다. 6개월 동안 지내면서 농구대회를 포함하여 3번의 공식행사 같은 소중한 여행을 다녀왔다. 공식행사가 소중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행사 때마다 의료진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행사는 농구대회였고, 두 번째는 베이루트 방문이었다. 이동 간에는 자체 경호도 가능하지만 인기 프로그램 '강철부대'에서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경호가 더해진다. 여행 중에는 다른 곳을 방문할 수 없다. 계획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고, 불안전한 요소가 발생하면 과감하게 일정을 취소할 수도 있다. 안전을 위해서는 항상 준수해야 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으며, 서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잘 따른다.


두 번째 공식행사로 베이루트 항구를 방문하는 날이었다. 2020년 대형 폭발로 사라진 베이루트 항구이다. 우리는 소형버스에 올라타고 티르를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수개월 전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을 뚫고 왔을 때와는 마음가짐과 현지에 대한 지식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눈에 들어오는 것도 많았다. 게다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좌석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의료진 덕분에 안심이 됐다. 하지만, 이상하게 맥박은 빨라지고 혈압은 높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중한 여행 중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사이다라고도 불리는 시돈시 바다 앞에 있는 해성(castle of sea)이었다. 직접 다가가지는 못하고 차창 밖으로 사진만 찍었다. 차가운 지중해 위에 오래된 낮고 묵직한 고성이 스산해 보였다. 천 년 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시돈항에 잠시 머물렀던 2천 년 전에는 없었겠지만, 오래된 역사 속에서 같은 세례명 동양인이 이천 년 후 함께 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지나쳤다.


차량 뒤로 보이는 시돈해성

잠시 스쳐 지나간 시돈을 뒤로하고 버스는 베이루트를 향했다. 아이러니하게 베이루트에서 기억은 거의 없다. 베이루트가 가까워질수록 반 벙커형 도로가 나왔고, 차창 밖으로는 하늘과 나무가 듬성듬성 있는 구릉만 스쳐 지나갔으며, 환락의 도시 베이루트에 들어서자 창문이 없는 건물만 보였다. 가끔 교차로에서 차가 막히면 혹시 모를 IED 공격에 대비하여 주변을 살피기에 여념 없다 보니 풍경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서둘러 베이루트 항구로 버스는 이동했고, 항구에서 공식적인 업무만 진행했다. 하지만 베이루트 항은 다시 가도 주변 풍경을 볼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내 눈에 많은 것들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을 감사한다. 지난해 발생한 대형 폭발사고로 우리가 들렸던 곳은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엄청난 폭발로 인해서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낸 장소이다. 소중한 것들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면 더 큰 아픔이 되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잠시 들렸던 곳이다 보니 폭발사고를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온다.


처참하게 변한 베이루트 항구


그렇게 두 번째 여행은 끝났다. 우리가 다녀온 베이루트 항구는 아직까지 복구되지 않았다. 몇 년이 더 지나면 복구되겠지만, 아픔은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다행히 베이루트를 가는 길에 잠시 들른 시돈에서 찰나의 여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중한 추억 한 조각은 남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붉게 물든 하늘로 지중해가 품고 있는 시돈 해성이 벌겋게 변할 때 즈음 당시 내 옆에 앉아있던 의료진과 함께 시돈 바닷가를 달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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