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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Sep 16. 2021

오만방자하여 미쳐 날뛰다



'오만방자한 것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서 미쳐 날뛰고 있구나'

 언젠가 한번 들어 본 말이다. 사극이나 드라마에서 중전마마가 착한 주인공에게 따끔하게 다그친다고 말을 건네는 장면이 스친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뒷산 정상에 다다를 때 즈음에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 간 말이다. 정확하게 요즘 내 모습을 말하는 것 같다. 글 쓰기를 시작한 지 백일 정도 지났고, 매일 글을 발행하는 것도 세 달이 되어가는 즈음  구독자 수도 늘고 매일 게재하는 글에 반응도 조금 있다 보니 중전마마께서 말씀하신 로 '오만방자' 또는 '기고만장'에 적합한 기분으로 지냈다. 곧 진짜 작가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고 더하여 스스로 작성한 글을 기획하고 출간하는 망상까지도 했다. 다행히 반나절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책방으로 가는 산책길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사실 어제는 처음으로 공모전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군에서 1년에 한 번 병영문학상을 개최하는데, 2개월 전 공지를 확인했고, 평소에 작성했던 글 중에 소재가 적합한 게 있어서 퇴고하여 도전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때마침 내 최애 독자인 아내가 한번 도전하라고 권했다. 군 복무 중인 작가 지망생이 수두룩하고 기존에 입선한 글을 봐도 내 수준과 현저한 차이가 난다고 말하면서 천천히 좋아하는 글이나 쓰겠다고 했지만, 최근 브런치에서 반응을 좀 얻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아내도 모르게 틈틈이 며칠간 준비했다. 글 중간에 있는 문장을 하나 펼친 다음 유사단어를 찾아 넣고 빼면서 다듬고, 문장 전체를 앞뒤로 바꿔가면서 문맥도 따져봤다. 시제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문맥과 비교하여 하나씩 확인도 했고, 중복되는 단어가 사용되는지도 따져봤다. 글 모임 작가의 조언과 김정선 작가의 책에서 본 '적의것들'도 전부 제거해보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각종 어플을 이용해서 수차례 돌려보며, 귀동냥하여 습득한 방법으로 하루에 이삼십 분씩 퇴고했다. 공모전 분량을 준수하기 위해서 매일 쓰는 2,000자를 조금씩 늘리는 연습과 두 편을 묶어서 발행할 수 있도록 글 쓰는 방향도 조절했다.


 병영문학상 1, 2위는 문인 협회에 등록하는 '진짜 등단'을 하고 출품작의 4% 정도가 선정되기 때문에, 입선만 하더라도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오만방자하게 내심 기대하면서 짧은 기간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공모전 지원 마감일이 지난주 금요일이었고, 그 사실을 한주 지난 이번 주 월요일에 확인했다. 나 답다. 게다가, 공지사항을 자세히 읽어보니 산문은 작품 두 편을 보내야 한다. 갑자기 중전마마가 웃고 있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년 공모전을 하기 때문에 천천히 글을 익히고, 실력을 쌓아서 당당하게 입선에 도전해야겠다. 로또처럼 대충 던져 놓고 발표일에 기도하는 모습보다는 스스로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싶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당해 심사기준이 나와 맞지 않다는 다부진 생각을 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겠다. 내년이 아니라 십 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수십 년간 글을 써온 선배들도 계신데, 난 중전마마의 말처럼 오만방자한 게 맞았다. 부족한 수준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다행이다. 우선 글쓰기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글 모임 작가분들은 출간도 했고, 소스라칠 정도의 표현력을 보여주는데도 다른 작가에게 별도로 시간을 내어 배우고 있다는 말에 내가 기고만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공모전을 놓친 것과 글 모임 작가분을 통해서 내 글쓰기에 대한 방향을 다시 한번 다진다. 우선 지금처럼 꾸준하게 작성하면서 필력을 향상하고 휴일이나 쉬는 시간에는 글쓰기와 관련된 전문 서적과 강의를 들으면서 전문성도 키워야겠다. 조금씩 호감을 가지는 소설과 시에 대해서도 많이 접해 보고, 직접 써봐야겠다. 인스타 피드에 라임만 맞춰서 올리는 시 같지 않은 시도 조금 더 시간과 노력을 투사해야겠다. 최근 읽은 박연준 작가의 '쓰는 기분'에서 '시인은 한 줄에 모든 걸 걸고, 그다음 한 줄로 넘어갑니다. 다시, 모든 걸 걸기 위해서.'라는 말이 생각난다. 작가는 시는 모든 것이고, 쉽고, 누구나 가볍게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시인이 시를 대하는 것을 표현할 때는 한껏 무게감을 주었다. 어떤 작가의 글을 보면 묵직한 돌덩이 같은 것이 내게 전해질 때가 있다. 단단한 글을 쓰기 위해 더 다져야겠다. 그렇다고 산에 들어가서 심신을 단련하고 무공을 익혀서 나올 때까지 속세와 인연을 끊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공모전에 현 수준으로 도전을 하고 실패하면 실패의 원인을 찾으면서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많은 것을 반성하고 다짐하며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다. 책상에 앉으니 좋아하는 작가가 써준 글이 눈에 들어온다.

'길을 걷는다 꽃길이다 가시밭길이다 흙길이다 길을 걷는다 아침해를 만난다 소나기를 만난다 지평선을 만난다 어떤 길을 만나든 무엇으로 만나든 어떻게 가든 매 순간 옳다'


좋은 글을 보면서 처음 중전마마께서 하사하신 문장도 내 마음대로 바꿔보고 싶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충만한 상태로 두려움 없이 다양한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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