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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n 19. 2021

24_첫번째 이야기

I0234_ep.24 정착보다 유랑

24살 이후 24번 이사했다. 우연히 겹친다. 다행히 지금 집은 작년 10월 10일부터 9개월 정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약 2년 5개월 정도 더 살 수도 있다. 최장기간 거주 기록이 될 것 같다. 정해진 것은 아니다. 큰딸은 8살인데, 8곳에서 살아 봤다. 양주 3번. 고양 3번, 성남과 광주광역시에 각각 1번 씩이다. 대한민국 평균 이사 횟수가 4.4회라고 하니 참 어린 나이에 평균치를 넘어섰다. 이제는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나의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 게 경인, 수도권 북서지역에서 오래 거주를 했다. 어려서부터 20년 동안 인천에 살았고, 파주, 양주, 고양, 서울 위주로 여러 번 이사는 했지만 10년 넘게 살았다.

    

대수롭지 않다고 했으나 여섯 식구다 보니 막상 이사를 하게 되면 소요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사화물이 점점 많아지고 이사 시간도 길어졌다. 청소와 정리 소요도 늘었고, 당연히 이사 비용도 많아졌다. 이런 상황을 고려 이사 비용을 지원받는다. 이사한 전체 비용을 받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바뀐다는 것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그래서 매번 이사를 하고 난 한두 달 안에 가족 중 누군가는 크게 아픈 기억이 있다. 주로 이사 후 장모님이 몸살에 많이 걸렸었고, 한 번은 큰 딸이 심적으로 크게 흔들렸던 적도 있다. 나머지 가족들은 큰 문제없이 지냈다. 지금은 내성이 생겼지만, 딸들은 예민한 나이가 되어가고 어른들은 한 해가 같지 않기 때문에 다음 이사가 조금은 걱정된다. 앞으로 은퇴까지 10년 정도 남았는데, 3 ~ 10번 정도 이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착을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


나와 아내는 이사를 좋아한다. 아니다. 나는 좋아하고 아내도 좋아하는 것 같다. 긴장이야 조금 하지만, 정말 대수롭지 않다. 이사를 하게 되면 어느 동네로 이사할지 스세권과 초품아를 중점으로 거주 지역 정찰을 나선다. 집을 결정하게 되면, 새롭게 꾸밀 것을 찾는다. 절대 소비 지향이다. 이번 기회에 바꿔야 할 것을 찾고 목표가 생기면 관련 자료를 모은다. 판매처를 찾아보고 온-오프라인 매장을 샅샅이 찾아다닌다. 그런 행위 자체를 즐긴다. 그게 일상이 된다. 소비 중심의 삶으로 아내에게 배웠다. 어느 정도 소비를 하면, 다시 이사한다. 반복이다. 누군가는 슬프게 볼 수도 있다.


며칠이 지나면 새로운 터전에 놀 것을 찾으러 다닌다. 하도 많이 싸돌아 다녀서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생활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느린 정찰을 통해서 주변 맛집과 멋진 장소를 찾는다. 그러다 우연히 새로운 곳을 발견하게 되면 그 집에 투자를 한다. 투자에 따른 이익은 행복으로 받는다. 매년 월급은 늘어나는데, 통장의 잔고는 유지된다. 재산이 아니라 잔고다. 가끔 주변에서 둘이 벌면 돈 좀 모았겠다는 말과 재테크를 어떻게 하냐고 물어오면 난처하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행복에 투자한다. 욜로나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아닌다. 살다 보니 그렇게 된다. 근데, 집안 어르신들은 가끔 혀를 찬다.

 

작년에 실행에 옮기려 했던 한 달 살기를 코로나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육아휴직을 하고 가족과 함께 추억이 있는 장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려 했는데, 최적의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돼버렸다. 어쩔 수 없이 2~3년 정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지금도 그 상상만 하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제주도, 홋카이도, 교토, 하사미, 방콕, 이탈리아(아말피, 피렌체), 아이슬란드, 크로아티아,  엘로우나이프, LA, 레바논 어느 곳이라도 그곳으로 이사하여 새로운 생활을 만끽하면서  살고 싶다.


언제부턴가 이런 꿈을 가지게 되었고, 아마도 많은 이사를 통해서 스트레스보다는 즐거움을 얻는 내 가슴에서 솟아나고 머릿속에서 그려진 로망들이 모여진 것 같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아내와 강가를 달리고, 수프와 샐러드로 아이들과 아침 식사를 한 뒤, 나는 그 지역의 문화와 생활을 글로 쓰고 아내는 그 지역의 음식과 빵을 만들며 영상으로 제작하고, 아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배운다. 저녁에는 주변 사람들과 만나 서로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또 다른 지역의 친구들과 교류를 통해 다시 떠날 곳을 찾는 정착보다는 유랑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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