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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an 15. 2022

(소설) 우주전쟁에서 함께 승리할 수만 있다면 2

우리들만의 야구


2022 보글보글과 함께하는 글 놀이 1월 2주
[네 장의 그림으로 이야기를 완성해라]



-1편 줄거리-
정만희는 지물포고(버터플라이) 주전 투수로 약체 고교 팀에서 고교 삼 학년 마지막 가을에 봉황대기에 진출한다. 중학교 전국대회를 우승했던 당시 핵심인원 중 류견진은 동전고(쓰리버드)로 혼자 진학했고 강정후는 야구를 떠났다. 다른 친구들은 김인식 감독님을 따라서 만희와 함께 열심히 야구했고 곧 동전고와 준준결승을 치른다.




1. 준준결승(인천 동전 VS 인천 지물포)


"잠시 후 봉황대기 준준결승 첫 번째 경기, 버플포고와 쓰버동전 시합이 잠시 후 시작합니다.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입장하는 선수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울려 퍼진다. 그라운드로 나가면 녀석들과 마주 할 텐데, 한걸음 내딛기가 어렵다. 복도 끝자락에서 비치는 밝은 빛을 따라서 그라운드로 끌려간다. 어두운 복도는 끝나고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한꺼번에 내 눈으로 쏟아진다.


반대편 더그아웃 앞에는 내 소중한 친구 만희와 경환, 상열까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내 하나뿐인 단짝, 현동이까지 서있다. 여전히 날 증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받아 줄리도 없고 나 역시 더 이상 감성 따위에 빠질 여유도 없다. 이번 대회를 우승하지 못하면 SK와이어스와 이면 계약이 백지로 변한다.

"라인업"

심판이 크게 소리쳤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쓰버동전팀 선수들과 삼 년 동안 기계적으로 야구를 했다. 오히려 지금 내 앞에 있는 녀석은 여동생 짝꿍 이름도 안다. 그 옆에 있는 녀석 아빠는 계란 프라이를 반숙으로 만들었다고 구시렁거리다 우리 집으로 쫓겨난 사람이다. 그런 친구들이 나를 증오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들어서 끄트머리에 서있는 감독님을 바라본다. 여전히 인자한 표정으로 다 이해한다는 듯이 눈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애국가가 끝나고 각자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려는데, 마운드에 서있던 정만희가 소리친다.

"한번 해보자! 견진아!"

나는 몸을 더그아웃으로 향한 체 고개만 돌려 손으로 가볍게 모자챙을 잡아서 답례했다. 정만희는 자기 이름처럼 정이 많은 녀석이다. 그렇게 싫었을 텐데, 라인업 한 상태에서 내 어두운 표정이 걱정되어 힘을 주는 메시지를 보낸 거다. 착한 녀석. 우리 팀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는 짧은 길이 갑자기 어두워진다. 주변 시끄러운 응원소리도 점점 줄어들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한쪽이 지끈거린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야! 류견진! 뭐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더니 정후가 보인다. 강정후. 분명, 준준결승 경기장에서 더그아웃으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정후와 라커룸에 앉아있다. 삼 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정후가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있다. 꿈인지 현실이지 헷갈리는 순간 정후가 다시 말을 한다.

"내 말대로 해야 해. 안 그러면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야구를 할 수없어!"

기시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상황은 분명 있었던 일이고 확실하게 기억난다. 전국대회가 끝나고 며칠 뒤 덕수중학교와 연습게임에서 발생한 벤치 클리어링 이후 정후와 라커룸에서 나눈 대화였다.

정후 아버지는 SK와이어스 대표 이사이다. 초등학교 학년 때 이후로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서 매번 욕을 했지만, 이번 폭력사건에 연루된 우리 징계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아버지에게 손을 벌렸다.

SK와이어스는 프로팀이지만 인항대와 인천 동전고, 서울 위문고를 동시에 후원하며 다른 여러 학교도 후원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당연히 야구협회도 장악했다. 재벌가 귀한 자식이 허접한 야구를 하는 것 자체가 불만이었던 정후 아버지는 정후가 야구를 그만두는 조건으로 우리 징계를 무마시켜준다고 했다. 더하여 나는 인천 동전고로 진학하고 조용히 그들의 야구만 하는 계약까지 제시했다. 얼마 전 시끄러웠던 이면계약이다.

정후가 김인식 감독님과 정통 야구를 하자며 지물포고로 진학하자고 할 때 현동이는 인천고 진학이 유력했었다. 하지만, 내가 지물포고로 간다는 말에 현동이까지 마음을 돌렸고, 우리 모두는 지물포고 진학을 결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동전고로 진학한다는 말은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사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야구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정후 뜻대로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계약서를 작성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수많은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제대로 읽어 본 것도 없었다. 단지, 고교 삼 년간 다치지 않고 주전 자리를 유지하면서 사대 리그 결승 경험만 있다면 SK와이어스로 지명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폭력으로 징계를 앞둔 다른 친구들까지 모든 것을 없던 일로 한다는 것도 아버지를 통해서 들었다. 그러면서 이면 계약이 밝혀질 경우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며 만료시기는 고교 삼 학년 마지막 사대 리그가 끝나는 날이라고 했다.

이런 복잡한 일들은 정후와 라커룸에서 나눈 대화로부터 시작했다. 당시 복잡했던 일들이 떠오르니까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번 더 했다. 이번에는 점점 환해지더니 공항에 와있다.

"잘 가! 다시는 보지 말자! 녀석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그냥 지방으로 내려갔다가 건달 됐다고 해"

정후는 한국과 우리 야구를 떠났다. 야구를 그만두게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버렸다. 정후를 보내면서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배신자란 말뿐이었다.


친구들에게 내 사정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단지, 정후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진실을 전할 수 없었고, 삼 년이 지났다. 이제는 정후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친구들과 반대편에 서서 서로의 가야 할 길을 막고 있다.

환해지고 어두워지는 것이 반복되면서 삼 년 전 상황이 계속 떠올랐고, 잊기 위해 정신없이 던지다 보니 어느덧 칠 회 말이다. 썩어빠진 우리 쓰리버드 동전고가 한 점 앞서고 있다. 다시 공을 던졌는데, 상대 팀 경환이가 기습 번트를 했고, 일루로 진루했다.


만희가 타석에 들어왔고, 내가 던진 초구를 다시 번트를 댄다. 다행히 내 앞으로 공은 굴러왔고 빠르게 잡아 이루를 쳐다봤다. 경환이는 벌써 이루 베이스 근처까지 다다랐다. 다시 천천히 일루로 공을 던져서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았다.

일사 이루, 삼 번 타자 현동이와 다시 마주한다. 앞선 두 번 타석 모두 삼진을 당해서 평소보다 턱이 많이 나왔다. 녀석은 감정 기복이 심한 게 단점이다. 갑자기 평소와 다른 루틴으로 타격 자세를 준비한다. 루틴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오히려 내가 당황스럽다.


이번 타석이 현동이를 대하는 마지막 야구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조건 정면 승부다. 난 한가운데로 세 번 던질 생각이다. 그게 우리 야구이다.

나를 잘 모르는 감독이 또 개입한다. 현동이는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하라는 사인이다. 실랑이할 필요 없기에 알았다는 사인을 보내고 공을 더 꽉 쥐었다. 난 피할 생각이 없다. 이번에도 피한다면 다시는 녀석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주자가 있는 상태이지만 와인드업을 했다. 눈치 빠른 경환은 바로 삼루로 달린다. 현동은 동요가 없다. 아마도 내가 거르지 않을 꺼라 확신했을 것이다. 혼을 실은 공은 포수 미트로 향한다. 그동안 쌓인 모든 울분이 공에 스며들었고 모두의 꿈과 희망을 담고 포수 미트 가운데로 빨려 들어간다.

공이 포수 미트에 닿기 직전에 현동이가 배트를 휘둘렀다. 공은 정확하게 맞았고 순간 번쩍였다. 갑자기 다시 어두워지더니 이번에는 머리까지 욱신거린다. 다시 눈을 뜨니 상대팀 타자와 투수가 내 앞에 와서 놀란 표정을 짓고 울먹인다. 다시 천천히 어두워진다.

울먹이는 현동이 목소리가 들리고 정신이 조금 들었다. 일루로 뛰어야 할 녀석이 왜 내 옆에서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신 미안하다고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얼마나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몰려와 다시 계약을 하자고 한다. 머리에는 문제가 없다며 심리적인 안정만 취하면 되다는 의사 말에 부모님은 나에게 서명만 하면 된다고 한다. 계속 머리가 울렸고, 계약서에는 영어만 가득했다. 전혀 모르는 글자들 사이에 어렵게 서명을 했다.


서명 위에는 LA Dodgers라고 쓰여있는데, 미국으로 야구 시합을 보러 가는 것 같다. 눈꺼풀이 무겁다. 다시 어두워진다.






2. 준결승(성남 야답 VS 인천 지물포)


내 눈에는 감독님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감독님이 내 가슴속에 들어온 날부터 아버지는 점점 멀어졌다. 내가 야구를 막 시작한 초등학교 학년 가을 어느 날, 아버지는 바쁜 일을 제쳐두고 나와 함께 롯데와 OB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를 관람했다. 회 말 투아웃 주자는 모두 차 있고, 점수는 한점 차이로 우리가 응원하는 OB가 지고 있다. 안타 하나면 역전이 가능한 상황에 감독은 우리의 히어로 노장 김인식 선수를 대타로 기용한다.


투수가 던진 초구를 강하게 때렸다. 타구는 총알같이 일루로 향했고, 일루수는 한번 바운드되는 공을 받으려다가 불규칙으로 튀어 오른 공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다. 공은 베이스 옆으로 떨어졌는데, 타자는 더 이상 뛰지 않고 일루수를 옆으로 눕히며 자신의 유니폼으로 지혈을 한다. 뒤늦게 달려온 이루수는 공을 주워 타자 태그하고 심판은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OB는 졌고 김인식 선수 야구는 끝났다. 아버지는 분노했고 섞어빠진 감정 따위에 스포츠 정신이 무너졌다며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김인식 선수를 통해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처음 배웠고, 당시 장면을 백번도 넘게 되새겼다. 수년이 지난 다음 우리 모두가 지물포고로 진학해야 하는 이유의 중심에는 김인식 감독님이 있었다. 모두 내 의견에 동의했고, 삼 년 동안 함께 야구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이 벌어졌다. 그 사건으로 나와 견진이만 각자 길을 간다면 친구들은 감독님과 함께 우리 야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했고, 견진이도 따라왔다. 친구들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해서 미안했지만 그게  최선이었다. 분명 우리 선택이 틀리지 않기를 바랐다.


일본으로 가는 날 공항에 나오지 않은 녀석들이 섭섭했다. 어린 마음에 그냥 친구들을 잊고 싶었다. 그렇게 끝날 줄 알았는데, 야구를 끊을 수 없었다. 유학 첫 해 다시 야구를 시작했고, 우리나라 수준이 높다 보니 고시엔-일본 고교야구 최대 리그-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었다. 아버지는 내 소식을 듣고 다시 야구를 했다고 호적을 판다며 나를 제일교포로 만들었다.


진짜 대단한 인간이다. 자기 자식을 재일교포로 만들 정도로 매정하다. 게다가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안타까운 세상이다. 아버지가 우리 야구를 돈으로만 생각하는 썩은 마음을 무너뜨리고 싶다. 나를 제일교포로 만든 것이 오히려 화가 될 줄 몰랐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계획을 세웠고, 삼 학년이 되는 해에 성남 야답고(스파이더 : 쓰파야답) 교환 선수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일본 선수들은 대한민국 고교에 야구 유학이 붐을 이뤘고 제일교포를 우선 선발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차피 내 일본 이름도 모르기 때문에 걱정 없다. 아차피 관심도 없을 것이고, 돈 안 되는 일본 유학파 선수들은 단지 일본 쪽 야구 사업 확장정도나 생각할 것이다. 어머니 도움을 받았고, 팀별 외국 유학생 한 명씩 포함시킬 수 있는 제도로 이번 봉황대기까지 참석할 수 있었다.


버플포고와 쓰버동전의 준준결승을 관중석에서 직접 봤다. 다른 선수들은 준결승에서 상대할 실력을 파악하느라 여념 없었지만, 난 내 친구들이 얼마나 더 컸는지, 우리 야구를 하고 있는지 지켜봤다. 그리고, 나의 영웅 감독님도 멀리서 바라봤다. 다시는 야구를 함께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우주전쟁에서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날 흥분시켰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야구선수가 아니다. 아버지와 같은 썩은 인간들을 야구계에서 퇴출시킬 수 있도록 야구 행정을 하기로 결심했다. 우선, 봉황대기 출전을 통해 선수 기록을 유지하면서 경력을 쌓아야 한다. 운이 좋다면 친구들과 함께 시합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간절히 바라다보니 결국 현실이 됐다. 공에 맞은 견진이 몸상태가 걱정되었으나 어머니를 통해서 병원과 MLB 계약건을 말씀드렸고, 큰 문제없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했다. 돈이 되기 때문에 아버지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드디어 쓰파야답과 버플포고의 준결승이 시작했다. 예상보다 선전한 버플포고는 우리 팀에게 한점 리드한 상태회까지 끌고 갔다. 우리 팀도 마스코트가 검은 거미인 것처럼 촘촘한 수비는 유명하다. 회 말 투아웃 주자는 이루에 한 명 있는데, 감독이 대타로 나를 지목한다.



"번 타자 대타 츠파야입니다. 재일교포 선수로 학년 때 고시엔에서 타격왕을 차지했습니다. 올해 우리나라로 유학 와서 봉황대기에 첫 출전합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등장했는데, 성남 야답고는 츠파야가 답이군요. 팀 애칭인 쓰파야답과 묘하게 비슷하네요!"


내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상열이가 기겁한다. 포수 글러브를 던지며 괴성을 지르더니 타임을 요청한다. 내 멋쩍은 웃음에 투수 만희와 유격수 경환이도 달려온다. 심판은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나는 줄 알고 말리지만 서로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한다. 그보다 더 멋진 일이 일어났다.


상대팀 감독 그러니까 내 야구 영웅 김인식 감독이 뛰어나와서 나를 안아준다.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경기중에 상대팀 선수 그것도 일본에서 유학 온 선수를 상대팀 감독이 뛰어나와 안아주고 상대팀 선수들이 둘러싸고 기뻐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야구장은 고요했다. 일루수 현동이도 뒤늦게 알아차리다가온다. 심판들은 우리를 떼어놓고 시합을 재개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뒤로 한채 경기 진행했다. 무려 삼 년 만에 만희 공을 상대해야 한다. 초구부터 강하게 휘둘렀다. 분명 삼루와 유격수 사이로 빠지는 안타였는데, 쌥쌥이 경환이가 다이빙 하더니 역동작으로  일루에 송구한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나는 경환이가 던진 공보다 반박자 늦게 베이스에 도착했다. 졌다. 결국 우리 팀은 약체 버플포고 결승전 티켓을 넘겨다.


야구선수 마지막 장면은 만희가 던지던 공을 상열이가 받는데, 내가 휘두른 배트에 맞은 공이 경환이의 다이빙 캐치에 이어 현동이에게서 아웃됐다. 내 친구들이  말 투아웃에 완벽하게 나를 야구에서 아웃시켜줬다. 이제 야구가 끝났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결승에 진출한 주역들이 자기 팀원들과 껴안고 환호하는 게 아니고 마지막 아웃당한 상대팀 선수에게 달려온다. 현동이도 경환이도 상열이도 만희까지 모두가 일루 베이스로 걸어온다. 그 뒤로는 우리 김인식 감독님도 천천히 다가온다. 그렇다. 내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 내가 그리던 야구를 했고, 정말 후회 없이 우리 야구를 즐겼다.






3. 결승(덕수 농고 VS 인천 지물포고)



덕수 농고(라코스테 덕수 : 나태덕수)와 연습 시합을 추진한 이유는 결승에서 만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하여 작년 결승에서 몹쓸 플레이를 하면서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한 것을 보고 직접 그들의 플레이를 보고 싶었다. 단지, 말썽꾸러기들 때문에 보다 정밀한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해법을 찾았다.


올해로 야구를 오십 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허투루 보낸 날이 없다. 안목과 통찰력은 조금 생겼고, 결과를 예상할 만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 우리 선수들은 충분히 좋은 야구를 한다. 아직까지 본인들 실력을 모르고 조화롭게 활용하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 팀은 만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만희가 오래 던지기 위해서 너클볼 - 느리지만 회전이 없어 춤을 추며 날아가는 공 - 을 많이 구사하면 준준결승에서 결승까지도 연속해서 던질 수 있다. 그래서 삼 년간 너클볼을 가르친 것이다.


문제는 칠 회 이후를 책임질 투수인데, 다행히도 새로 들어온 신입생 호재가 충분한 역할을 해줄 것이다. 초등학교 부터 축구를 열심히 해서 하체가 단단하다. 빠른 공이 일품이기 때문에 만희 너클볼 이후에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느껴질 것이다. 이 회 정도는 충분하다.


"나태 덕수와 버블 포고 결승전, 삼대삼 동점인 상황에 버블 포고의 구 회 말 공격이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사 번 타자 김현동입니다"


결승전도 모든 게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이제 구 회 말 선두타자 현동이가 한방을 치면 내 인생 마지막 야구는 생각한 대로 마무리할 수 있다. 그제 정후도 만났고, 첫 경기에서 다친 견진이 몸 상태도 괜찮다고 들었다.


사실, 내 인생 마지막 야구는 십 년 전 선수생활이 끝났을 때와 삼 년 전 감독 생활이 끝났을 때 두 번이나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친 상태였지만, SK와이어스 대표이사를 만나면서 달라졌다. 내 선수 마지막 야구를 보고 잠시 실망을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맞았고, 나를 존경하기 때문에 영광의 순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던 그의 말에 마지막 야구인생을 불태웠다.


강호동 SK와이어스 대표이사는 우리 고교야구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정후에게 일본 야구를 경험하게도 만들었고, 일본 고교야구 선수를 우리나라로 유학시키는 제도와 재일교포에 대한 지침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사실 지물포고도 SK와이어스 후원을 받는다. 올해 봉황대기를 우승하고 공식적으로 계약 체결 사실을 공개할 계획이다.


내가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SK와이어스 최연소 감독이 되었을 때와 기업 간 마찰로 인해 고교야구 감독으로 전환되었을 때 직접 찾아와 향후 계획을 함께 토의했다. 특히, 아들 친구들을 챙겨달라며 요청했을 때 그는 아버지로서 야구인으로서 배울게 많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정후도 조금 더 크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나에게 스페이스 리그는 중요한게 아니다. 그리고 기업 후원으로  야구가 발전하는 게 맞을 수도 있다. 다만, 평생을 야구에 몸 담았고, 영광의 순간을 만들지 못한 나에게 강호동 대표와 제자들이 영광의 순간을 새롭게 만들어 줬다. 얼마 전 만희가 나에게 찾아와 생뚱맞게 감독님 영광의 순간은 언제냐고 물었을 때 엄청 놀랐다.


아이들은 내가 힘게 기업과 싸우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까지 상대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졌다. 동전고와 준준결승이 끝나고 지난 이야기를 전하자 만희는 크게 놀라기까지 했다. 결국 각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좋은 안경을 사줘야 한다.



사실, 동전고 마스코트인 쓰리 버드도 내가 만들었다. 쓰리 버드로 지은 것은 야구에 대한 내 생각이 많이 스며들어있다. 야구의 세 가지 구성 요소에 대해서 고민했고, 세 마리 쇠기러기로 표현했다. 쇠기러기는 알래스카와 시베리아까지 먼 여정을 떠나기 위해 함께 비행한다. 비행중에 지치면 서로 선두 위치를 바꿔주면서 날아가며 동료애를 통해서 터전으로 다가간다.


야구를 구성하는 것은 통상 선수와 경기장, 규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각자 다른 세 마리 쇠기러기 중 한 마리는 우리 팀이며 뒤 따르는 한 마리는 팀을 응원하는 팬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우리와 함께 야구를 해주는 상대 팀이다. 상대 팀이 없으면 야구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현동이에게 마지막 공을 던지는 상대팀 투수가 야구를 성립하게 해주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다친 상대편 선수를 돌보지 않고 점수와 이익을 위해 달리는 건 야구라고 할 수 없다.


야구에는 선과 악이 없다. 야구를 함께하는 우리와 응원하는 팬만 존재할 뿐이다. 모든 스포츠가 동일하고 어쩌면 우리 비슷할지 모른다.




인천 동산고는 류현진과 박지만 선수를 배출한 야구 명문고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동산고 야구감독을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죠. 어머니와 야구를 좋아하는 막내 삼촌 말로만 전해 들었습니다.


제물포고도 야구를 잘 하지만, 동산고나 인천고에 비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야구보다는 유명한 연예인 김구라, 지상열, 염경환을 배출한 것과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학교로 유명합니다. 특히 제 모교를 많이 보냈더라고요.



인천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이야기 배경이 자연스럽게 생각났고, 이번 글을 작성하면서 읽은 소설 '죽이고 싶은 아이'와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스포츠 만화 터치, H2, 크로스 게임, 러프 등 아다치 미츠루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과 이야기가 넘쳤는데, 매거진에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줄이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더 쓰고 싶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글솜씨로 인해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야구 외적인 요소를 많이 결합했습니다.


야구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우리 삶을 대할 때 각자의 다름과 우리가 모르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돌아보고 조금 더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희와 친구들 정성과 열정은 누군가에게는 정의로움이나 열정으로 다른 누구에게는 동네 야구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구를 평생 하며 정성을 다한 김인식 감독님 생각과 어 빠졌다고 생각한 정후 아버지 역시 다른 생각과 각자의 정성, 노력을 다 했습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같이 사는 부부나 부모 자식 간에도 다투고 욕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그러다 죽거나 떠나서 후회하고 슬퍼하는 걸 많이 접합니다.


허전한 글이지만 특별히 바빴던 한 주 동안 재미있게 썼습니다. 화장실에서 쓰고 자다가 일어나서도 쓰고 차에서도 끄적이고 밥을 먹다가도 펜을 들고 폰을 누르고 컴퓨터를 만지작 거렸습니다. 무슨 대단한 글을 썼다고 소감이 길어지는 걸 보면 조금은 정성을 더했나 봅니다.


1편을 올리고 생각보다 좋은 평가가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제가 쓰면서 느낀 바로는 운동이야기의 생생한 묘사는 만화나 영화가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글이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고, 생애 첫 허구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마지막으로 군사 경찰단에서 축구 잘하고 있는 조카 녀석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훌륭한 엄마한테 잘해라!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전 글 : 차영경 작가(윤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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