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남세아 May 28. 2022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1 아내



햇살에 인상을 찡그리지만 부실 정도는 아니다.
서늘한 기운이 빠진 잔잔한 바람이 콧등을 만진다.

좋다. 봄과 여름 사이.

한낮에 더위가 찾아오면서 이른 아침부터 점심 사이에
한적한 공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온하다.


둘째가 킥보드를 타고 달린다.
아내가 뒤를 쫓는다.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점점 다가오는 아내가 나를 사랑스럽게 부른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타고 살랑살랑 귀를 적신다.

"여보~~ ♡♡♡"

아내가 가까워지니까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잘 들린다.



"뭐해? 당신이 쫓아다녀!!!!"




#2 둘째 딸



거지놀이에 흠뻑 빠진 둘째진흙을 온몸에 변질변질 해놓고 슬금슬금 다가와서 다소곳이 물어본다.


"아빠! 나 예쁘지?"


난 대답한다.


"아니! 거지 같아!"


울먹이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쏘아붙인다.


"아빠 미워! 삐질 거야!"


헛웃음이 나오지만 참고 달랜다.


"알았어! 예뻐 예뻐!"



"알았어. 그럼 가서 물통에 물 좀 떠 와"




#3 큰 딸



큰딸의 뒤꿈치가 뒤로 한참 나올 정도로 작은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모습목격하고 너무 속상해서 신발을 사러 나섰다. 우선 고무신 전문 브랜드에서 초특가 할인해서 19,900원짜리 분홍 고무신을 하나 선물했다. 이어서 운동화까지 사주려고 피구왕 통키의 불꽃 문양이 그려진 스포츠 브랜드 매장을 찾았다.

매장을 둘러보다가 무려 80% 할인율에 딸 취향을 저격하는 보라빛깔 신발을 발견했다. 가장 큰 사이즈 하나만 남았는데, 머뭇거리는 순간 옆에서 팥쥐 엄마 같은 사람이 손을 뻗는다. 한때 인천 고교 농구계를 평정했던 포인트가드의 인터셉트 능력이 본능적으로 발휘되면서 미묘한 차이로 신발을 선점했다.

 딸을 앉히고 앞에 쭈그려 앉았다. 신던 신발을 벗기고 신데렐라 유리구두를 신기왕자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 아쉽게 기회를 놓친 팥쥐 엄마가 다른 제품을 찾는척하면서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분명히 관심우리 신데렐라 족위식인데, 다른 곳을 보며 엄청난 살기를 뿜어댄다. 고수가 틀림없다. 미리 약을 치지 않으면 우리가 잡은 고기를 놓칠 것 같았다. 큰 딸 발이 더 자란 것을 알았고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 심정도 느꼈기 때문에 신발을 최대한 벌리면서 위식을 거행하며 적절한 멘트를 더했.


"신발 볼이 넓어서 편하겠는데, 조금 크게 나온 것 같네"


마음속으로는 다른 주문을 외쳤다.

'맞아라.  꼭 맞아서 하이에나를 물리치자! 훠이 훠이'

다행히 발은 신발에 다 들어갔고 크로 덮개까지 부착하였다. 이제는 유리구두 주인공이 되어 왕비로 즉위했다고 공표만 하면 된다. 신데렐라도 흡족해하며 한마디 한다.


"정말 딱 맞네. 아빠, 이것 봐봐. 발가락 모양까지도 보여. 힛힛"


나는 머쓱해서 허허, 옆에 있던 팥쥐 엄마는 뭐가 좋은지 호호, 팥쥐는 덩달아 헤헤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기에 다른 한쪽을 신어보려는 찰나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친절한 직원이 나타나 한마디 더 거든다.


"꽉 끼네요. 한 치수 큰 것으로 찾아드릴게요."


난 속으로 말을 담는다.


'어린이 사이즈는 이게 끝이거든, 작아서 못 신는 거 확인 안 해줘도 되거든'


불평이 클 때 속엣말은 욕설과 반말뿐이다. 직원은 정확하게 삼분 전에 내가 했던 행위를 반복하면서 절감을 키운다. 반면 팥쥐 집안은 축제 분위기이다. 이윽고 친절한 직원이 듣고 싫지 않은 말을 내뱉는다.


"이게 제일 큰 사이즈네요. 이것밖에 없습니다."


아쉽지만 고맙다는 표정으로 포장하며 하고 싶은 말은 가슴에 새긴다.


'나도 안다고, 잘 안다고요. 저리 가시라고요'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 직원께서 신데렐라가 될 뻔한 큰 딸의 유리구두를 회수하여 예쁘게 상자에 담더니 진열대 아래 선반에 놓는다. 너무 딱 맞는 신발을 원망하면서 팥쥐인 줄 알았던 진짜 신데렐라의 족위식도 꼴 보기 싫어서 성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결국, 우리는 신데렐라가 아닌 구박하는 계모와 언니쯤이었나 보다.





최근 며칠간 겪은 에피소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안 맞고 손도 어긋나며 심지어는 발까지도 맞지 않는 상황이 수두룩 합니다. 게다가 큰 딸 신발은 너무 딱 맞아서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어긋나고 틀려도 웃음은 끊이질 않습니다. 오히려 안 맞는 상황이 웃기고 즐거울 수도 있습니다. 덕분에 소소한 추억이 되어 이렇게 글로 남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맞아도 너무 잘 맞는 상황보다 안 맞는 게 더 큰 행복을 가져올지 모릅니다. 




오월 넷째 주 :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아

오월 마지막 주 : 노래로 떠나는 여행


이전 글 :  잘 맞는 차영경 작가님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받고 싶은 재난문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