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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01. 2022

브런치에서 사라진 이웃

브런치에서 글을 나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이제는 브런이 보다 브런치 작가라고 불려 어색하지 않을 만큼 시간을 쌓았. 발행 글은 이백 개 정도인데, 서랍에서 잠들었거나 갈피를 잡지 못한 잡글까지 긁어모으면 삼백 편 정도 썼다. 한 편에 평균 2,000자 정도를 썼으니 60만 자이다. 십 년 글쓰기를 목표로 했으니까 지금 추이면 300만 자 정도를 남길 수 있겠다. 수준이 부족하양으로라도 채우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잡생각만 가득하다.


글과 가깝게 지낸 사람에게는 대수롭지 않겠지만, 살면서 글을 한편도 쓴 적 없고 일기나 독후감조차 멀리한 사람이 일 년 반 만에 이룬 성과이기에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당장 그만두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과 성을 다했고 충분하게 즐겼다. 탁월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글 세상에서 뛰어다니며 소풍 하듯 행복을 만끽했다.


지금껏 큰 변화가 있었거나 새로운 길을 발견한 것도 아니다. 글쓰기 비법을 익혔거나 글 완성도가 높아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고유한 문체가 드러난 것도 아니다. 다만,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까지 스치거나 버려진 억을 이제는 종이로 가로막고 활자로 묶어서 떠나지 못하도록 붙들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깊은 곳에 숨은 아픔과 슬픔을 꺼내어 담대하게 수용할 수도 있다. 감성은 풍부해져서 계절 변화와 옅은 바람이 볼에 스치는 살랑거림까지 느끼며, 기쁘면 크게 웃고 슬프면 우는 방법도 익혔다.


물론 혼자서 낙서만 했다면 두어 달 즐기다가 실증내고 진즉에 지쳐서 포기했을 것이다. 괴발개발 휘갈겨 쓴 비문 덩어리를 꼼꼼하게 읽어주고 공감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눈 고마운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꾸준하게 동력을 얻었고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다. 나 역시 글을 읽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고마운 존재와 관계를 유지했는데, 우리 관계를 생각해보니 문우나 글벗 아니면 구독자나 관심작가란 감투보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릴 것 같다. 브런치  각자의 공간머물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글에 담 응원하며 힘이 되어 주는 고마운 존재는 현실의 가까운 이웃과 다를 바 없다.


고마운 이웃은 사촌보다 가깝다. 실제 사촌과 교류가 거의 없는 요즘은 혈연보다 지연이 더 끈끈할 수 있지만, 코로나와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녹록지 않다. 우리 아파트는 한 층마다 세 가구가 사는데, 부끄럽지만 같은 층에 사는 다른 두 가구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어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면 가볍게 목례를 하지만 누가 사는지 구성원이 몇 명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안타까운 사실은 두 가구 모다 가족 구성원 중에 한 명은 반드시 군인이 포함된 군인 가족이다. 민간 아파트를 군 관사 형태로 사용하기 때문에 아파트 두 동 전체가 군인과 군인 가족만 살지만 층간 소음에 대한 우려로 위아래층 정도만 인사하며 알고 지낸다. 하지만, 사생활과 잦은 이사,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따로 노력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가슴 아픈  우리 단지 놀이터와 옆 단지 아파트 사이 쪽문에 서로 다니지 못하도록 칭칭 동여 멘 철조망이다. 두 놀이터를 오고 가려면 쪽문을 열고 열 걸음인데, 아파트 한 동을 크게 돌아서 작은 횡단보도까지 건너야 한다. 그나마 우리 동네는 아파트 형태라 괜찮지만, 하천 건너 마을은 개발제한 구역이라 임시 건물과 빌라 몇 채만 놓인 시골 풍경이다. 누군가는 시골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서 집값이 오르지 않는 원흉으로 삼으며 천대한다. 같은 층, 같은 단지, 같은 동네 의미가 없는 세상이다.


현실 이웃처럼 글 세상에서 만난 이웃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관계가 변했다. 한때는 돈독했지만 틀어지거나 자연스럽게 어지기도 한다. 그나마 브런치에서 보글보글 매거진과 관심작가라는 울타리 덕분에 멀어질 수 없는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잘 들어오지 않고 한 주에 한번 숙제처럼 글만 투척하고 도망가다 보니 점점 이웃과 소원해진다. 글 쓰기를 찬양한다면서 글과 가깝게 지내려는 노력 없이 멀어지는 이웃을 보면서 신세만 한탄한다.


사촌보다 가까운 이웃이 될 수도 있고 층간 소음으로 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동네에 살지만 마치 카스트제도처럼 구분도 한다. 글 세상에서 층간 소음도 겪어봤고 격차도 느꼈다. 누군가와는 간, 쓸개 다 내어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다. 하지만, 이제는 희미하게 연결된 고리마저 끊어지려 하는데, 더 이상 안부마저 모르는 남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점점 이웃이 사라진다.


큰 사건이나 갈등으로 인해서 멀어진 게 아니다. 오롯이 내 관심 부족이다. 내가 먼저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안부를 물어야 이웃도 마음을 열고 다가올 것이다. 아니면, 우리 집에 잔치를 자주 벌여서 함께 추억을 쌓을 기회라도 만들어관계가 유지될 텐데, 현관문 걸어 잠그고 다가오는 이웃이 문을 두드려도 반응조차 뜨뜻미지근하니 하나둘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구독자도 줄고 좋아요나 댓글도 이웃과 함께 점점 사라지는 글 세상이 곧 끝날 듯하다.



* 표지 : 일산 소재 카페 비크 & 서점 뮈르달

              (아이슬란드를 느낄 수 있는 책과 커피)


* 이전 글 : 가깝지만 지금은 멀리 계신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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