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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24. 2022

스타벅스 탈출기, 그들의 검은 속내


커피 세계 초강대국 사이렌은 동맹을 끊고 등을 돌린 우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지난 주말 오감 빌런에게 모든 감각을 마비당한 채 전투력을 복원 중인 우리에게 전령을 보냈다.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으니 당장 도입하여 전력을 보강하라는 메시지였다. 초강대국 다웠다. 자신을 등지고 돌아선 적군에게 무기를 제공한다는 게 가당한 일인가? 분명 함정일 게 뻔했지만 적군을 염탐하기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혈혈단신으로 적진을 향했다.



올해 여름, 사이렌 왕국은 산뜻한 가방에 포름알데히드를 살짝 도포하여 화학탄 도발을 감행했다. 덕분에 세계 커피 연합에 질타를 받았고 많은 동맹국이 등을 돌렸다. 당시 우리도 단교하려 했으나 신속하게 조아리고 석고대죄하며 3만 원 원조와 신상 무기 개발 및 지원약속하여 동맹을 이어갔다.

새로 개발하는 대체 무기는 데스크 모듈이었다. 다꾸에 심취하여 문구녀를 꿈꾸는 첫째 딸과 스벅 MD를 찬양하여 역대 스벅 10대 MD 소유자인 아내 - 핑크 레디백, 서머 캐리백 3종, 2004년부터 시작한 스벅 다이어리, 벚꽃 장우산 등등 - 그리고 엄마와 언니가 소유하자기도 무조건 가져야 한다는 다소유 둘째 딸이 좋아할 만한 무기체계였. 다만 화학탄이 묻어도 곱게 접히는 서머 캐리백을 반납하는 조건이 붙어 잠시 고민했는데, 결국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사이렌 왕국과 협약을 맺었다.



어느덧 약속 시간이 되었다면서 무기를 가져가라는 그들의 검은 속내를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 우리도 꼼수를 부렸다. 평화로울 때 데스크 모듈을 세 개 신청했지만 두 개는 그냥 사용하고 하나만 바꾸겠다는 쫌생이 전술이었다. 아침에 고이 접은 크림색 서머 캐리백 한 개를 들고 적진으로 돌격했다.



성큼성큼 카운터 앞으로 갔는데, 바로 앞에 사이렌 왕국 노예 한 명이 데스크 모듈 그린색하사 받으며, 조공으로 음료 하나와 식품 두 개를 다시 구입했다. 처절한 노예를 보고 불쌍해하며 잠시 기다리다가 주변을 살피는데 시선이 머무는 적당한 곳에 2023 스벅 다이어리로 가장한 IED(급조 폭발물)를 발견했다. 하마터면 손을 내밀어 열어 볼 뻔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이어리를 열었다면 순간 뇌는 멈추고 심장은 폭발하면서 에스프레소 14잔은 별도 컵에 담고 스페셜 음료 3잔은 캐리어에 끼워서 집으로 털레털레 가져가는 패잔병이 되었을 것이다.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한 다음 다시 적군과 마주했다. 평소보다 오백 배 친절한 닉네임 제인이 웃으며 조금 기다린 나에게 오래 기다리셨다며, 살인 미소로 주문을 요청했다. 난 어눌한 척 크림색 서머 캐리백을 꺼내고 데스크 모듈 초록색으로 바꾸러 왔다며, 사이렌 오더에 새긴 협정서를 내밀었다. 무기만 받아 갈 테니 다른 꼼수는 부리지 말라는 강건한 표정을 담았다. 적군 제인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채더니 잠시만요를 외치며 매니저급 인원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기습 또는 납치가 예상되어 아내에게 전화로 이르려는 순간 적군은 반납까지 도와준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 영수증을 세장 뽑고 집에서 가져오지도 않아서 쓸모없는 다른 데스크 모듈 약서까지 스캔했다. 이윽고 땡큐 쿠폰이라고 쓰인 영수증 3개와 족히 50리터는 될 법한 종이 백에 모듈 세 개를 담아서 건넸다. 마치 우리는 한 식구라는 듯한 환한 미소도 함께 보냈다. 땡큐 쿠폰에는 전사이즈라는 엄청난 문구가 새겨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방금 전 목도한 노예가 음료와 식품을 사는 행위를 재연할 게 뻔했다. 적의 심리전에 당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허겁지겁 적진을 벗어났다.


데스크 모듈 3개와 땡큐 쿠폰 3장


아내에게 전장 상황을 보고하니 너무 기뻐했다. 적군의 간접접근 전략에 흔들린 아내는 모든 MD를 자기가 가지겠다고 했다. 수화기 건너로 다소 흥분한 듯 미세하게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군의 내분을 조장하는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위기를 직감하고 가족애를 앞세운 집중 정신교육을 시작하자 아내는 조금 차분해졌다. 명색이 군에서 십오 년을 냈는데, 적군의 심리전 따위에 넘어갈 메이저 림이 아니었다. 전투력을 회복한 아내는 시그니처초록색만 갖고 나머지는 두 딸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아내와 통화하며 합심하여 적의 강력한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 집에 도착했다. 손에 들린 큰 쇼핑백을 발견한 둘째 똥파리는 대번에 물었다.


"아빠, 그거 뭐야. 내 선물이야? 사이렌이네. 스타벅스 예쁘다.". 


이미 큰 딸은 데스크 모듈 한 개를 집어서 자기 책상으로 가져간 다음이었다.

오늘도 사이렌 왕군은 기묘하고 영활 전략전술로 우리의 유형무형 전력을 괴롭힌다. 열세인 우리가 처절하게 대처하지만 쉽지 않다. 과연 그들에게서 온전하게 벗어날 수 있을까?


* 어쩌다 보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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