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라떼에 빠져 살았다. 일본을여행하면서아라비카 교토와 블루보틀에서 라떼를 처음만난 뒤 아메리카노나 베리에이션 커피는 뒤로한 채 오직 라떼만 찾아다녔다. 고소한 우유와 짙은 에스프레소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면서 식후땡(흡연자가 식사 후 연초를 태우는 행위, 금연 12년 차)만큼이나 자연스러웠다. 사실, 식사 여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마셔도 괜찮았다. 차갑게 마셔도좋았고 심지어는 따뜻하게 나온 라떼가 조금 식은 다음에도 맛이 변하지 않았다.라떼는 나에게완벽한 존재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라떼를 멀리 했다. 아마도 체중 관리를 하면서 아메리카노보다 높은 열량이 부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유가 열량이 얼마나 높다고 불량식품도 아닌데, 불필요한 우려와 지레짐작으로 멀리하면서 지금은 연중행사 수준으로 라떼를 만난다.그러고 보니 최근 라떼를 만난 게 아라비카 교토 국내 1호점에 방문했을 때니까 무려 두 달 정도 지났다. 어느새나에게서 멀어진 라떼가 서먹하다.
라떼의 사전적 의미는 뜨거운 우유를 탄 에스프레소이다. 하지만, 에스프레소가 아닌녹차, 초코, 딸기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든 음료에도 라떼를 가져다 붙인다. 그래서, 라떼안에 에스프레소가 들어갔는지 헷갈려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이탈리아어로 라떼가 우유이기 때문에 녹차 우유나 딸기우유라고 쓰는 게 이상하지 않지만, 주로 카페에서 파는 음료라서 카페라떼로 부터 파생된 것으로 보이며, 조금 더 있어 보이려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서 혼선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우유가 들어 간 음료는 라떼로 통칭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여기저기 쓰이는 라떼는 꼰대의 상징이다. 라떼이즈 호올스(Latte is horse)로 시작하는 사람은 현재 상황과 다름을 이해하지 않는 안하무인이며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마치 주변을 살피지 않는 이기주의자나 나르시시스트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라떼를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졌다. 가끔은 기분 좋은 추억을 회상하고 보다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언하며 서로를 위할수도 있지만 요즘 세상은 그냥 입을 다물게만든다. 누구나 꼰대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에게 라떼를 요구한다. 2021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소설 밝은 밤에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따듯한 라떼는 감동을 주며, 유명인사의 강연이나 세바시또는 알쓸신잡 출연자의 라떼는 시청자나 독자에게환호성을 받고 삶의 원동력이 되어줄 힘을 주기도 한다. 결국,라떼는 누가어떻게 만들어주는지가 관건이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블루마운틴을 명품 커피머신인 라마르조꼬로 에스프레소를추출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홋카이도산 우유를 넣는다고 해서 기가 막힌 라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물론, 원두와 머신과 우유가 좋을수록 맛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리스타의 숙련된 기술과 커피에 대한 안목이다. 로스팅한 원두 상태, 적당한 입자로 잘게 부순 정도, 바스켓에 고이 담은 뒤 탬퍼로 누르는 힘, 머신으로 추출할 때 압력과 온도, 우유의 신선함과 거품까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고라떼와어울리는 커피잔에 담아져 나왔을 때, 무엇보다도 라떼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전해질 때,완벽한 라떼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