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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영경 Dec 09. 2022

모녀의 라떼 사랑

보글보글 글놀이 12월1주 "라떼"

“스트레스받을 일을 만들지 마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고 무조건 쉬세요. 그게 최선이에요.”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이승우 소설집 <신중한 사람> 74-77, 문학과 지성사, 2014


엄마가 우리 집에 오시면 늘 나가서 먹자고 말한다. 딸 집에 오면 신경이 쓰여 이것저것 도와주려 움직이는 엄마이기에 딸인 나는 엄마가 오시기 전에는 되도록이면 집을 치워두고 엄마가 오면 나가서 먹자고 외식을 자주 권한다.


만 73세인 엄마는 소설속 Y처럼 오래전부터 어지럼증, 이석증이 있으셨다. 혼자 부산에서 살고 계시는 엄마가 뱅글뱅글 천정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때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나는 엄마의 고통을 마음대로 상상만 했고, 잘 알지 못했다.


11월부터 주중 매일 소설 필사하는 중,


엄마가 아플 때 나는 전혀 모를 때가 훨씬 많았다. 컨디션이 좋으실 때만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과 놀아주고 나와 라떼 투어를 다녔기에 무심한 딸은 무슨 일 있으면 119에 얼른 전화하라고만 하고는 어지럼증의 상태에 대해 잘 살펴봐 드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나에게 이석증이 발생했다. 말로만 듣던 그것이 왔을 때 나는 엄마의 고통을 공감해 주지 못했던 것을 크게 후회했다. 엄마의 때가 나에게도 온 것이었다. 그때 나의 건강은 총체적 난국 상태였다.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며 경고 알람이 켜진 듯했다. 엄마도 그런 상태였던 것이었다.



모녀는 언제 돌이 떨어질지 (귓속 반고리관에 이석이라는 물질이 돌아다녀 어지럽기에 돌이 떨어진다고 엄마는 말하셨다) 모르는 상태로 살고 있지만, 엄마는 정원의 꽃을 키우고 땅을 밟으면서 마음이 즐거워 좋아지신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다 해보고 사니 신나서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요즘은 별 소식이 없어서 이대로 편안한 상태가 이어지기만을 바라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 모녀는 서로의 집에 갈 때 무리를 하지 않는다. 일부러 무리해서 진수성찬을 차리려 하지 않는다. 비행할 때 엄마를 모시고 유럽이든 동남아든 미국이든 돌아다녔던 나는 이제 동네의 구석구석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닌다. 커피 친구 엄마와 같이 갈 동네 핫플을 미리미리 메모장에 리스트업 해둔다. 엄마와 차 마시는 시간을 집이든 밖이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내가 부산에 갔을 때는 형부가 코스를 정해둔다. 부산 사람이 안내하는 대로 언니네와 함께 우르르 가족 군단이 먹으러 다닌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면 아이들은 집 밥을 해주지만 학교를 보내고 나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엄마 오늘은 어디 갈까?" 하고 묻는다. 친정엄마가 내 살림을 정리하는 시간을 일부러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최대한 게으른 모녀 놀이를 하자며 이 집, 저 집 커피 맛을 보러 다니자고 한다.

하지만 늘 시간은 짧다. 이상하게 갈수록 일주일이 더 짧게 느껴진다. 더 계시라고 늘 부탁하지만 엄마는 일주일을 넘긴 일이 거의 없다.



이번에 엄마가 오셨을 때 나는 송년회로 마음이 괜스레 분주했고, 엄마 찬스로 아이들을 맡겨두고 나 혼자 책방 송년회도 참석할 수 있었다. 다음 날은 엄마를 위해 내가 예매 성공한 김호중 콘서트를 보고 왔더니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렸다. 엄마는 딱 일주일째 되는 날 부산에 가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쉬웠지만 밤늦게 축구 보시다가 몸에 무리가 된 건 아니었는지, 또 괜찮다고 했지만 (해주시면 너무 행복할 ) 우리 집 식물 분갈이를 해주시느라 손가락 관절염이 더 아파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되던 차에 동네 책방 너의 작업실 탱사장님의 연락이 왔다. 아직 결제 안 한 책들이 5권이 있어서 그 내역을 알려줄 줄 알았는데 다쿠아즈를 배달로 보내셨다는 연락이었다.


잠시 밥 먹으러 나갔던 엄마랑 나는 하교하는 아들을 기다렸다 빨리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우체국 택배 기사님이 대문 울타리에 걸린 빵 봉지를 집 안쪽으로 같이 옮겨주시겠다는 연락이었다. 대문에 걸린 소중한 친구의 선물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감사했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아름답고 맛있는 다쿠아즈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냥 접시에 둘 순 없는 비주얼의 간식을 얼른 2단 트레이에 세팅했다. 나가서는 라떼 투어, 집에서는 오후의 홍차를 마시는 모녀의 소소한 즐거움에 친구의 선물이 더해지니 완벽한 아름다운 티타임이 완성되었다.




홍차를 드시고 싶다는 엄마의 주문을 받아놓고 나는 그린 티 얼그레이가 마시고 싶어 맘대로 바꿨다. 맛의 조화는 왠지 대실패한 느낌이었지만 다쿠아즈의 바삭한 겉과 부드럽고 또 쫄깃한 맛이 좋아서,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엄마가 그 순간 내 앞에 있어서 차맛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맛있는 라떼도 홍차도 사랑하는 엄마와 친구, 또 아름다운 티푸드와 함께라면 시간 자체가 예술이 된다.


송년회 때 집에 있는 것들 주섬주섬 가져가서 간식거리 조금 올려둔 것뿐이었는데, 책방 탱사장에게 감사 선물을 받아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는 자랑이 하고 싶었다. 내 엄마에게 말이다. 엄마 딸은 너무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다. 잘 먹고 잘 쉬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 연습하면서 좋은 글 친구들과의 질적인 연결에 이전보다 더 많이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가 와서 보시기엔 매일 하는 필사가 좀 바빠 보였겠지만, '다꾸' 하는 거처럼 노는 거라고, 다꾸 아즈 가루가 뭍은 손가락을 톡톡 털면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저 멀리서 고고하게 창조하는 것만이 예술은 아닐 거라고, 내 일상 주변의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도 예술일 거라고 말했다. 거품 속에서 나뭇잎을 그려내고 하트를 그려내어 얼굴의 미소를 만들어내는 라떼 '아트'와 같은 것도 이름처럼 예술이지 않느냐고. 이런 라테 아트를 좋아하는 우리야말로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모녀가 아니겠느냐고 엄마에게 말없이 말했다.




방과 후 수업 후 조금 늦게 딸이 집에 왔다.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손주들에게 사주고 싶다고 하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갔다. 할머니가 내일 집에 돌아가신다는 말에 마트에서 갑자기 딸이 눈물을 글썽였다. 할머니 할머니… 여러 번 부르며 할머니 손을 잡고 무빙워크에서 어깨가 축 처진채 서있는 딸이 보였다.. 나보다 더 다정하고 그리움 많은 딸은 언제나 할머니에게 솔직한 사랑을 그대로 표현한다. 틀에 박힌 말로서가 아니라 그저 눈으로 바라본다. 숨김없는 눈빛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랑으로, 그리고 어딘가 아주 슬프게도 말이다.




그저 우리 집에서 스트레스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면 좋겠지만 나는 엄마를 엄마 집에 보내드려야 한다. 거기서 고요하게 쉬셔야 하고 자신만의 성처럼 만든 오후 햇살 가득한 거실에서 좋아하는 김호중 님의 음악을 틀어놓고 쉬셔야 한다. 털을 계속 풀풀 날리는 고양이와 손자 손녀의 자잘한 짐과 장난감들, 맥시멀 리스트 딸의 늘어난 문구류 책상을 보며 엄마는 무조건 쉴 수가 없을 게 뻔하다. 엄마는 엄마의 작업실로 가셔야 한다 그게 최선이다.


그리고 우리의 라떼 투어는 잠시 멈추었다 또 이어질 것이다. 서로의 공간에서 일상의 예술을 계속 즐기며 이어간 이야기가 쌓일수록 모녀의 라떼 잔은 할 이야기로 가득 찬다.


"라떼는 말이지 ~"로 이어지는 우유 거품 수다를 달게 핥으며 엄마와 마지막 차를 마셨다.

곧 겨울방학이 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 글, 아르웬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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