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를 40일 앞둔 큰아들은 열심히 남은 휴가를 소진 중입니다. 월요일에 집으로 오면 2주간 휴가를 보내고 금요일에 복귀하기를 제대할 때까지 반복한다고 합니다. 천천히, 차분히 가정과 사회로의 복귀를 준비 중인 아들, 이제는 그리워할 새도,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남자는 군대 가면 꼰대가 안 될 수가 없어. MZ 세대들 중에 꼰대 욕하는 애들은 군대 안 다녀온 애들일 거야."
아들은 군대에서 꼰대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군대가 좋아지고 편해졌다지만 상명하복이 있고 까라면 까야하는 곳이잖아. 여전히 부조리도 남아있고. 이등병, 일병 때 자기가 당한 거나 경험한 걸 생각하면 상병, 병장 됐을 때 '라때는'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지. '나 때는 이랬어'로 끝나면 다행인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면 그게 꼰대지."
군대가 꼰대 양성소도 아니고, 군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모두 꼰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꼰대가 되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가진 것만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싫어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명령이 존재하며 개성과 다양성 대신 획일화와 전체주의가 훨씬 중요한 가치가 되는 곳. 짧은 기간 동안 내무반의 가장 밑바닥과 가장 높은 계급까지를 차례차례 경험하며 권력, 권위가 주는 달콤함을 경험하는 곳.
후임들에게 일을 너무 시키지 않아 후임들이 불편해하는 선임이 되었다며 신종 부조리를 만들어 낸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아들입니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아들이 좋은 선임인지 악독한 말년 병장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휴가 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후임들의 장난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면 안심이 됩니다.
부당한 일이나 불만스러운 상황 앞에서 선임이라도 참지 않고 들이받았을 때, 평소에 뭐든지 열심히 하는 놈이라는 인식이 있어 자신이 들이받는 것은 정당하게 받아들여졌다는 후일담을 들려줍니다. 선임에게 밉보이지 않았을까 걱정되었지만 전역하는 선배 배웅을 위해 휴가 중에도 그 먼길을 돌아가 복귀한다는 모습을 보니 줏대는 있는 놈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저는 꼰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의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하고 타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않는 사람.
옳고 그름, 사실과 거짓, 득과 실에 대한 확신을 갖고 다른 경우의 수는 무시하는 사람.
훌륭한 가르침을 아낌없이 베푸는 자신의 성정을 몰라보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이들을 무식하고 무례하다고 여기는 사람.
결국...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며, 무식하고 무례하다는 평가를 받아 한없이 외로워지는 사람.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줏대와 소신을 가져야겠습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다는 사실만이 확실하다는 줏대 말입니다.
"그럴 수 있다."
"다를 수 있다."
"모를 수 있다."
이 세 문장만 잘 새기고 산다면 어디 가서 꼰대 소리는 안 듣고 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생 외롭지는 않겠지, 싶습니다.
* 2021년 2월에 썼던 글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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