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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15. 2023

마지막 글



일을 꾸준하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를 해야 꾸준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꾸준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다 보니 꾸준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으로 산다. 그러고 보니 지금 하는 일도 스무 해 넘게 버티며 지냈다. 글도 삼 년 정도 썼고 달리기도 비슷한 기간 동안 열심히 달렸으니 꾸준함이 연관 알고리즘에 들어와도 누군가 댓글로 반박하거나 시비 걸 일은 없을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겠다는 다짐과 열정으로 살아 오진 않았다. 적당하게 즐기다 보면 어느샌가 스며들었고 취향이나 성향이 되기도 했으며 가끔은 가치관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글은 꾸준함을 증명할 수 있는 글이다. 세 달 동안 한 주에 두 편씩 쓰기로 약속하고 나서 스물네 번째 쓰는 마지막 글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브런치에서 글쓰기를 중단하고 여섯 달이 지나도록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때 우연하게 만난 라라크루 덕분에 멈추지 않고 적지 않은 글을 썼다. 한 달 정도 쓰다 보니 때마침 브런치에서 이벤트를 열어 초록색 배지까지 받았. 당시 말이 많았지만, 딱 한 달 지나니까 잠잠해졌다. 어찌 되었건 세상은 늘 내편이다.



오랫동안 쉬고 와서 글벗이 다 떠났을까 봐 걱정했는데, 크루 친구들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며 생각과 감정을 나눠줬다. 결국 글쓰기 동력이 되었고 오늘까지 글을 쓸 수 있었다. 더구나 다음 달 초에는 생애 첫 합평회도 하는데, 벌써부터 긴장된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삼 년이 지나도록 마무리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마무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크다. 생각해 보니 글쓰기뿐 아니라 살면서 늘 마무리를 잘하지 못했다. 요란하게 시작해서 끝은 흐지부지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J 성향이 높지도 않은데, 새롭게 시작할 때면 항상 포부나 다짐만 가득했고 알맹이가 없었다. 끝에 다다르면 매번 무뎌지면서 흐지부지한 채 끝을 맺지 못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세 달만 글을 쓰면 되는데, 추석 연휴와 한글날 연휴가 중간에 들어가면서 글쓰기 루틴이 끊어졌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끝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 방식으로 조금만 더 해보자는 말을 건넸고 그들의 응원은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마중물이 되어주었. 사실 오늘 글도 서랍 속 잠든 글을 한편 꺼내서 다듬을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새로 쓰고 싶었다. 이번 주에 나머지 숙제를 하며 올린 네 편 글이 읽히든 읽히지 않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지난주에 못 쓴 글을 마구 올리고 함부로 발행하다 보면 마무리를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스물네 번째 글로 마무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함께 글을 나눈 친구들 덕분이다.



그렇다고 고작 세 달 동안 글을 썼다며 엄청난 일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그동안 지치고 힘들고 어려울 때 버텼던 것처럼 글쓰기도 버티고 쓰면 계속 쓰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던 길던 지금껏 해온 것처럼 그리고 오늘 마무리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버티고 쓰면서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도약할 날도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나저나 이러다 작심삼월 되는 게 아닐지 모르겠네.



* 한 줄 요약

라라크루 감사합니다. 덕분에 다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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