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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Oct 15. 2024

나도 노벨상 탈 거야


한강작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전해 들은 첫째가 자신도 노벨상을 겠다고 천명했다. 꿈은 크게 품을수록 좋기 때문에 굳이 말릴 필요성은 못 느꼈다. 무엇을 도와줄까 고민했는데, 기회를 놓치지 않은 현명한 아내는 다른 이유를 보태면서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자고 했다. 우둔한 노벨 문학상 수상 희망자는 미끼를 덥석 물었다. 평소 독서 습관을 들이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이번 기회에 독서 습관을 만들면 노벨상 문학상 수상 작품정도는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동네는  개 행정구역 접경다 보니 집 앞에 도서관이 두 곳이나 있다. 년에 새로운 도서관까지    들어설 예정이다. 깔끔하고 독특한 구조가 마음에 드는 하남위례도서관 평범한 학교 도서관 같은 송파위례도서관이 있고 곧 위례예술도서관도 생긴다. 평소에는 독특한 구조에다 깔끔한 하남 위례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도서관 앞에 놀이터와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고 놀이터를 조망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쪽 벽을 개방하여 계단형으로 만들었다. 다만, 보유도서가 적어서 반가운 책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큰딸 노벨 문학상 수상을 상상하며 두 딸을 끌고 하남위례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조건 강제로 이끌면 반감이 생기기 때문에 도서관 입구에서 딸들에게 놀이터에서 놀다 오라고 방목했다. 놀이터에서 에너지를 쏟아야 도서관에서는 조금 차분해지기 때문이다. 사실 아내와 둘이서 조용하게 읽고 싶은 책을 찾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술책이기도 다. 아쉽지만 아직까지 술책 없이 아이들과 함께 책을 고르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겁다.


도서관이나 책방을 좋아해서 자주 다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첫째는 독서 습관을 들이지 못했고, 둘째는 통제불능 상태를 수시로 만들고 큰 목소리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혼자서 시간 날 때 도서관에 들러 천천히 을 보고(다양한 책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읽고 분위기를 즐긴다. 래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부모 코스프레를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집 앞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다. 


아이들 없이 도서관에 들어서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빈자리는 없었고 책장마다 책을 고르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평소보다 직원들까지 많이 보였다. 토요일이고 가을이며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여파인 듯했다. 우리도 평소 책을 빌릴 때와 많이 달랐다. 나는 보통 한두 권 빌렸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에 책 네 권이 들려있었다. 아내는 평소처럼 다섯 권 빌렸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뒤늦게 합류한 두 딸도 각자 네댓 권씩 골랐다. 스무 권 가까이 되는 책을 각자 아이디로 빌려서 리어에 싣고 집으로 돌아다.



올해 3월 지금 집으로 이사 왔을 때 거실에 티브이와 소파를 치우고 책상만 놓았다. 도서관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안 쓰니까 비어있는 책상장인어른이 차지했다. 아이들이 티브이를 보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했고 장인장모님께서 자진해 쫓겨난 결과이기도 다. 아내와 내가 늦게 퇴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느슨한 어르신들 통제에 따라서 독특한 생활공간이 되었다.


독특한 생활공간에서 다시 도서관 분위기를 조성하려니까 어색했다. 결국 빌려온 책은 우리 방 내 책상 위에 쌓였고 각자 자신이 즐겨하는 모드로 전환했다. 나는 네 권 중 꼭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삿포로에 갔다가 오타루 살았다, 김민희'라는 여행에세이인데, 다음 주 홋카이도 여행을 생각하며 선택했다. 흔하지 않은 여정을 잘 그려내서 즐겁게 다가왔다. 아내는 천선란작가 소설 노랜드를 들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책을 읽는데, 막내가 방에 들어왔다. 머리가 다 마르지 않아서 의자에 앉히고 드라이하는데, 자신이 빌려 온 그림책 하나를 집어 들더니 앉은자리에서  읽었다. 막내는 개차반 같지만 은근히 책을 좋아해서 한번 손에 쥐면 완독 한다. 시끄럽고 요란하지만 책을 들면 집중한다. 노벨상은 전혀 관심 없지만 재미있는 책은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읽는다. 습관을 들이지 않았어도 혼자서 독서하는 막내를 기특하게 보면서 신기해하는데, 막내가 한마디 했다.


"언니는 드라마 본다."

(원래 말투가 건방지다)



평소 노벨상보다는 언니와 비교하며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는 게 즐거운 막내는 의도적으로 연출하여 독서 코스프레를 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그토록 도도한 자세로 독서하며 차분한 톤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희망자 행보를 고자질했다. 덕분에 노벨문학상 수상 희망자는 도서관에서 책 다섯 권을 빌려와서 전부 팽개치고 판사가 악마라는 독특한 설드라마로 향한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어서 개차반 막내는 완독 한 책 줄거리까지 설명했다. 코스프레가 아니라는 알리바이를 위한 행동이다. 같은 시간에 노벨문학상 수상 희망자는 느슨한 통제를 주창하시는 어르신 뒤에 숨어서 15세 이상 관람가를 시청했다. 추궁하면 글감을 수집한다는 핑계로 노벨문학상에 다가간다고 할 테지만, 일찍 문학상보다는 방향을 틀어서 백상예술상을 택했으면 좋겠다.


독서를 잘하는 막내에게 언니를 제보해서 잘했다고 칭찬하며 사진으로도 남기라고 획책했다. 신이 잔뜩 난 막내는 아빠 폰을 빼앗아 들고 묘한 미소를 띤 상태로 안방에 잠입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희망자 뒤쪽으로 은밀 침투하더니 드라마 시청 중인 노벨문학상 수상 희망자 뒷모습 촬영에 성공했다.



다만 몰래 다가 카메라 소리에 놀라서 들켰고 둘이서 작은 실랑이를 벌인 끝에 관련 사진을 사수했다. 더 큰 분쟁이 발생할 수 있었지만, 수시 자매분쟁을 중단시킨 유공으로 노벨평화상이 유력한 아내 개입을 통해 모든 게 잘 해결되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 집에서 글 쓰는 사람은 한 명뿐이니 노벨문학상 수상은 글 쓰는 사람 정도만 가능할 듯하다.


한편, 다음날 큰딸은 노벨문학상은 포기하고 노벨이 되겠다며 다이너마이트부르고 춤을 췄다.


* 한 줄 요약 :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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