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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Nov 04. 2024

끝나지 않을 전쟁


애초부터 둘은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가끔은 필요에 의해서 가까워지기도 했고, 따듯한 말 한마디로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작은 욕구 충족을 위한 다툼이었지만 잦은 갈등과 마찰로 인해서 분쟁으로 번졌으며 결국에는 이익이나 손해는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상대방이 무너지기만을 바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도발하며 불만을 표출했고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듯했다. 순간 찾아드는 불편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서 너 나 할 것 없이 재도발을 감행했고, 결국 분쟁을 넘어서 전쟁까지 치달았다.


"더 이상 가족이 아니야!"


얼마 전 평양산 돼지가 한민족을 거부하며 연을 끊겠다더니 서울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막말이 터져 나왔다. 민족이나 가족을 끊겠다는 말은 천륜을 저버리겠다는 뜻이며 상대방을 울타리 밖으로 몰아내는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과거에도 선전포고는 있었고 혈연단절도 즐겨했던 표현이라서 당황하지도 않았다. 물론 가정교육을 운운하면 부모가 중범죄자이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혈연단절자는 평양산 돼지보다 정치적 성향이 강하다 보니 대외 활동 중에 비슷한 불상사를 일으킨 적은 없다. 오롯이 집에서만 새는 바가지이다.


혈연단절자는 자기 세상 울타리를 동맹 여부로 결정하는데, 상대방을 가족 범위 밖으로 밀어냈다는 것은 공격을 감행하기 위한 여건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수사적 위협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자극적인 도발을 통해서 효과를 달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상대방을 제압하기에는 자기 힘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동맹을 끌어들이려 했다.



"둘 다 잘한 게 없는 것 같은데"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존재하시며 솔로몬 지혜를 갖추신 절대자께서 천명하셨다. 혈연단절자는 항상 자기 편인줄 알았던 절대자가 중립 입장표명하자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이 몰아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절대자 말씀이 나왔으니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다. 모두가 수그리면 되는 상황이고 더 이상 논쟁도 필요 없어졌다. 전부 자기반성 시간을 갖고 서로를 위하는 척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 절대로 절대자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되는 상황이다. 당연히 방관자는 절대자 눈치를 보며 손뼉을 치고 머리를 조아렸다.


"당신이 옳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자도 절대자 권위에 도전할 수 없으므로 입만 삐죽거렸다. 절대자를 낳고 키운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자'와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도 순응했다. 다 끝났다. 조용히 순응하면 되는데, 혈연단절자는 그러하지 못했다. 모든 동맹을 저버리고 절대자 권위에 도전할 만큼 감정 골이 깊었고 무모한 용기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전쟁이 감행했다.


전쟁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은 작은 하늘색 막대기였다. 하늘색 막대기는 손잡이와 총열이 구경 12mm 정도이지만, 총열 끝은 40mm를 훌쩍 넘기는 화려한 유탄이 장착되어 있었다. 마치 RPG-7 같았다. RPG-7은 중동에서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전차를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악명 높은 휴대용 대전차 로켓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목도한 RPG-7은 하늘색 총열과 맑고 투명한 유탄이 돋보였으며, 투명한 유탄 케이스 안에 가득한 작은 탄두 알갱이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색깔을 뽐냈다.



혈연단절자 손에서 벗어난 하늘색 막대기는 상대방 정수리를 향했다. 허공을 가르며 최단거리로 향하던 하늘색 막대기는 상대방 정수리에 닿기 전에 멈췄다. 지난 5월 태권도 3품을 따고 시범단을 준비하다가 주짓수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상대방 그러니까 혈연 단절 당한 언니에게 재래식 무기를 이용한 도발 따위는 우스웠기 때문이다. 언니는 재빠르게 한 팔로 머리 막기를 선사한 다음 다른 한 팔로 40mm 유탄을 잡아당겼다. 도발은 무마되었고 혈연 단절 당한 언니의 정당방위로 정의가 승리하는 듯했다.


하지만, 세상에 등장한 지 만 11년 만에 갈비탕 한 그릇에 공깃밥 세 개를 순간 삭제하는 언니 악력은 조절이 불가능했다. 살짝 잡아당긴 유탄이 하늘색 막대기와 분리되면서 막대기 안에 가득했던 알록달록 작은 알갱이가 쏟아졌다. 순간 시간은 멈췄다. 형용할 수 없는 오색빛깔 알갱이가 세상에 터지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베트남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전 세계 여론을 뒤바꾼 사진들 겹쳤다. 분명 혈연단절자가 먼저 도발했지만, 넘치는 힘을 주체 못 한 언니는 혈연절단자가 아끼는 보물을 파손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순간 물적피해를 입힌 언니는 보물 파손 범죄자로 몰락하며 궁지에 몰렸다.


기회를 포착한 혈연단절자는 각종 이유를 가져다 대면서 분위기를 전환했다. 덕분에 할아버지가 일본 다이소에서 100엔에 구입한 하늘색 막대기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1시간이며 갈 수 있는 일본은 이역만리 타국이 되었고, 칠순을 넘겼어도 3대 500이 가능할듯한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자'는 병약한 할아버지로 변했으며, 주민센터보다 많은 다이소에서 100엔에 구입한 하늘색 막대기는 티파니나 불가리에서 주문 제작한 순금 방망이가 되었다.


그렇게 자매 전쟁은 끝나지 않을 명분이 다시 생겼다.


 

* 한 줄 요약 : 행복하자

 



개인사정으로 인해서 두 차례 연재를 놓쳤습니다. 차분하게 다시 연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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