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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Dec 03. 2024

아빠가 버스를 타는 법


합평회가 끝나고 송년회까지 마친 뒤 취기가 사그라들 때즈음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띡!


스마트폰을 버스 카드정산기에 가져다 대자 어색한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1,700


'무슨 숫자지? 분명히 전철탈 때 48,500이었는데, 월말이라서 새롭게 정산되었나? 그런데 왜 1,700이지! 늦은 시간이라 할증이 있나?'


난해한 숫자 앞에서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살던 대로 그리고 취기를 핑계로 대수롭지 않은 척  앞 드넓은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도 버스 탑승 직전 확인했던 구글을 다시 켰다. 구글이 안내한 버스와 숫자가 정확하게 일치했다.


안심하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그래도 조금 낯설었다. 버스 컨디션은 좋았다. 거의 만석이었지만 좌석이 넓었고 외국인도 많이 보였다. 강남은 여행객이 많다 보니 대중교통에서 적지 않게 외국인을 마주치는데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진듯해서 뿌듯함도 들었다.


집까지 가려면 환승하는데, 첫 버스로 일곱 개 정류장을 가야 했다. 편안한 자리에 기대서 몰려오는 잠을 참아냈다. 이틀 지하철을 두 번이나 놓치고 내릴 곳까지 지나쳤다. 다시 실수하지 않으려고 버스를 탔기 때문에 절대로 잠들지 않겠다며 첫 번째 정류장까지 버텼다.



오백미터도 가지 않아서  번째 정류장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승객보다도 빠르게 운전기사분이 허겁지겁 내렸다.


급한가? 차에 문제가 있나?


다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감기는 눈에 힘을 주고 주변을 살피며 버텼다. 창밖에서 친절한 기사님이 캐리어를 뺄 수 있도록 짐칸을 열어주고 있었다. 내가 앉은자리 옆에는 환전기(버스 내부에서 환전을 하는 기계)도 있었다. 편안하게 드러눕다시피 제친 비즈니스석에서 공항버스를 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 탑승할 때 목격한 1,700은 17,000이었던 것이. 순간 모든 게 멈췄다. 상황은 파악했고 이성적 판단을 기초로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억울한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유일했다.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주변 환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1,500원이면 갈 거리를 17,000원에 탔으니 어디다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다. 덕분에 10여 분도 안 되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 17,000원을 썼다. 더구나 다음 버스 환승 때 할인도 못 받았다. 그래서인지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손님과 함께 내리는 친절한 기사님이 거슬렸고 부아가 치밀었다. 오직 남은 것은 열정을 쏟아부은 17,000원짜리 초고뿐이었다.


하루 전 지인들과 대화 중에 가끔 버스를 잘못타도 아무렇지 않다며 대범한 척 너스레를 떨던 내 모습이 스쳤다. 건방 떨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다.  환승지점에서 돌아가는 길을 찍어봤더니 택시로 7,000원이 나왔다. 아이들 붕어빵에 아쓰 한 뭉탱이를 사갈 천문학적 금액이 날아가 버렸다.


17,000원 아픔을 퇴고하며 작품으로 승화시키는데 두 딸이 엄마 자랑을 한다. 어제 13,000원짜리 틴트를 8,900원에 샀다며 틴트와 절약을 조화롭게 건드린다. 한순간 실수로 틴트를 네 번 싸게 사더라도 600원이 모자란 죄인은 조용히 흑역사를 덮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똑같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딸들이 아빠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한 글자를 더 새긴다.



* 한 줄 요약 : 버스 탈 때 잘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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