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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Dec 17. 2022

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외치다

보글보글 주제 '자축'


퇴근하고 침대누웠는데, 큰딸이 공책과 볼펜을 들고 다가왔다. "아빠, 내가 퀴즈를 낼 테니까 한 번 맞춰봐.", 종이에 볼펜으로 네모 몇 개를 그렸다.


"네모가 몇 개일까요?", 의미심장한 말투로 딸이 물었다. "7개", 내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자 내 눈을 주시하던 큰딸 눈동자가 약간 흔들렸다.



"왜?",  "작은 네모 5개에 2개가 합쳐진 네모 2개까지 더해서 7개지.", 귀찮은 듯 대답했다. 큰딸눈동자가 오른쪽 1시 방향으로 향했다. 분명 거짓말을 할 때 징후였다.


"틀렸어!", 갑자기 사격형 하나를 더 그렸다. "사실 8개야, 하나는 숨어 있었어!", 다시 막무가내식 퀴즈가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2개가 더 많아져서 9개 아니야?", 자주 경험라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 맞다!" 네모를  하나씩 집어 가면서 숫자를 세더니 "총 9개야. 어렵지? 역시 난 대단해."


처음 접했으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모든 게 자연스러운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대했다. "그래. 알았어. 아빠 잘 테니까 저리로 가주세요"  말을 듣고 옆으로 간 큰딸은 최근 익힌 고려 품세를 의식하며 뽐냈다.


동일한 결론을 가져오는  신기했다. 다만, 자신감과 자존감 높긴 한데 잘난 척으로 비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사람들은 왜 자랑하는지, 그리고 자랑하는 사람은 왜 얄밉고 싫은지, 그러면서도 가까운 사람이 자랑하면 왜 밉지 않은 곰곰이 생각했다.


사실 누구나 자랑을 한다. 어떻게 해서든 잘났다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면서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행동한다. 나 역시 자유롭지 다. 겸손은 미덕이라고 익혔고, 성인 말씀과 고전에서겸손을 많이 배웠지 자랑하지 않는 사람을 주변에서 적이 없다. 조금만 자랑하는 겸손한 사람만 존재할 뿐이며, 심지어는 겸손함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랑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 주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잘난 척은 받아들이는 사람 몫이 된다.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 중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공개 수업 장면이 생각났다. 수는 서양 학생과 한국 학생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똑똑한지, 운동은 잘하는지, 그렇다면 학점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서양 학생은 우리 집 큰딸처럼 주저 없이 대답했다. 공부도 잘하고 테니스도 잘 친다고 했다. 학점이 얼마냐는 교수 질문에는 주저하며 얼버무리듯 3.0을 넘겼다고 대답했다. 한국 학생은 우리가 잘 아는 모습으로 그냥 학생이라서 공부하고 수영을 하는데 단지 운동으로만 즐긴다고 다. 교수가 집요하게 학점을 물어보자 부끄러워하며 교수에게 귓속말로 3.6을 말했다. 그러면서 2년 만에 졸업하는 사실도 밝혔다.



겸손한 한국 학생에게 모두가 손뼉 치며 환호했다. 같은 한국인이라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서양 학생은 잘못한 걸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더군다나 서양 학생에게서 우리 큰딸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오히려 서양 학생은 한국 학생으로 인해서(질문을 이끌어 내는 교수로 인해서) 불편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 학생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굳이 2년 조기 졸업한다고 알릴 필요도 없었겠지만, 여하튼 자랑 삼을 만한 사실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둘 다 잘못한 건 전혀 없다. 교수가 문화 차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유도했고 극명한 차이 덕분에 교훈을 얻었을 뿐이다. 동아시아 문화라서 우리는 자랑보다 겸손이 우선해야 하는 게 옳은지 의문은 생겼다. 만약 서양 학생이 사실 자신은 스포츠 전공이고 아까 언급한 테니스는 작년 전미 대항전에서 우승했다는 사실까지 밝혔다면 문화 차이에 대한 교육은 다른 교훈을 이끌어 냈을지도 모른다. 자랑이 잘못은 아니다. 자랑할 일이 아니거나 사실이 아닌데, 자랑하는 게 문제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랑할 일을 정해 놓은 것도 없다. 통상 다수가 불편하면 잘난 척이라고 하 말도 정답은 아니다.


EBS 교육방송 번개맨에 등장하는 악인 캐릭터 나잘난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은 자랑하면 악인이 되는 세상에 사나 보다. 그러면서도 자랑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속 시원하게 대놓고 자랑하는 게 어떨지로 의식이 전환되었다. 동아시아 문화이며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를 중시해야 하는데, 우리 큰 딸처럼 막무가내로 잘난 척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 가서 속 시원하게 잘난 척한 적도 없으며, 매번 비비 꼬면서 보일 듯 말 듯 돌려차기를 할 바에는 한 번쯤은 대놓고 쏟아붓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랑 7가지를 생각해봤다.


난 똑똑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에서 IQ가 가장 높았다. 150 이상 나온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공간지각 능력이 남달라서 네모를 잘 찾는다. 그것뿐이고 아내만 좋아한다.


난 건강하다. 적당한 수준으로 체지방을 유지하고, 매일 5km를 달리며, 근력 운동도 새롭게 추가했다. 운동도 곧 잘한다. 특히, 농구, 야구, 축구, 수영을 잘한다.


난 성공했다. 20년 넘게 일을 하면서 안정을 찾았고, 아내도 같은 일을 하며 정착했다. 위법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10년은 일자리가 보장되고, 노후도 큰 걱정 없다.


난 행복하다. 아내와 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진심으로 즐겁고 행복하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며, 다툼과 미움보다는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난 살아있다. 한 때 '번 아웃', '불안장애'를 느꼈지만, 지금은 증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넘쳐나고, 다른 사람 앞에서도 불안하지 않다.



난 재미있다. 두 딸이 말한다.


난 잘생겼다. 아내가 말한다.


단지 7가지만 자랑했는데, 속은 시원하지만, 계속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손이 떨렸다. 그래도 꾹 참고 세상의 중심에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외치려 한다.

"난 자랑스러운 동아시아인이다."


* 자축을 자랑 또는 잘난 체로 인식하고 글을 썼습니다. 언젠가는 주제에 적합한 글을 쓰겠다는 목표로 브런치에서 습작 중입니다. 작년 유월에 쓴 글을 다듬었으며,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인해서 평소보다 늦게 글을 발행합니다. 다 나았습니다.





* 이전 글 : 차영경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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