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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남세아 Jun 20. 2021

평생 연애편지를 쓰는 남편

10234_ep.1 아내 사람에게

2009년 가을 서울 수색, 복도를 지나가는 나에게 강의실을 물어보면서 앞질러 간 노란 잠바를 입은 당신의 첫인상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그런데 당신이 왜 노란색 잠바를 입었지? 기억이 조작된 건가?


2주간 열심히 교육받고 부평으로 장소를 겼고, 강의실에서 함께 심화 학습을 하다가 내가 전해준 작은 물건을 받고 감사의 뜻으로 일요일 저녁 약속을 했고, 부평역 앞 닭갈비 집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들을 쏟아 냈었지. 커피를 마시면서도 서로에 대한 호감과 긴장감을 표현하기에는 아마도 그 당시에는 없었던 단어인 "썸"이 적당할 것 같아. 당시 1초, 1분, 1시간이 오히려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어. 행복하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고통스러우면 반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서로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초 단위로 폭발하다 보니 그 순간순간 생생하게 느껴진 감정 때문일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했고,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드렸지. 나는 비혼 주의를 쉽게 버리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강한 믿음으로 하나둘 잘 준비했던 것 같아.




이역만리 타지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함께 운동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웠던 그때의 추억은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생각난다. 모든 순간이 마치 보정 어플을 이용하는 것처럼 예쁘고 아름다웠지. 파랗다 못해 시퍼런 하늘과 지중해, 강한 햇살이 내리쬐지만 따뜻한 초여름 날씨, 상큼하게 익어가는 라임과 올리브 나무의 향이 내 만성 비염을 뚫고 폐 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 정화를 시켜줬고, 그 힘든 나라의 사람들조차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것 보다도 내 눈, 코, 입, 귀 모든 신체 감각 기관에 사랑의 정화 필터를 장착했기 때문일 거야.


가끔 내가 얘기하는 로망이 그때 형성된 같아. 어디든 당신과 함께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삶을 즐기는 것, 특히 아름다운 낯선 도시에서 당신과 함께 달리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계속 상상하고, 그러다 보면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게 되더라.


모든 결혼 준비와 프러포즈까지 그곳에서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10월 23일 4시에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예식을 했고, 그로부터 10년간 너무 행복했기에 그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려면 남은 생 안에 끝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10년은 당신과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과 그속의 나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해. 그 다음 10년은 무엇을 할지 하나씩 만들어 보자.




결론은 어제저녁 #30, #32와 잘 놀아주는 당신에게 잠시 뾰로통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야. 퇴근하고 달리기만 하고 간다는 내 말에 석연찮게 대답하는 당신의 말투가 못내 아쉬웠어. 서로의 발전을 응원해 주기로 했는데, 사실 일찍 돌아와서 같이 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빨리 가겠다는 신념으로 달리니까 기존 기록을 경신했지 뭐야.


하여튼, 어제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이렇게 반성문과 함께 최신형 오븐을 진상하니 이제 좀 일어나서 놀러 나가자~~ 오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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