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을 서울 수색, 복도를 지나가는 나에게 강의실을 물어보면서 앞질러 간 노란 잠바를 입은 당신의 첫인상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그런데 당신이 왜 노란색 잠바를 입었지? 내 기억이 조작된 건가?
2주간 열심히 교육받고 부평으로 장소를 옮겼고, 강의실에서 함께 심화 학습을 하다가 내가 전해준 작은 물건을 받고 감사의 뜻으로 일요일 저녁 약속을 했고, 부평역 앞 닭갈비 집에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면서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들을 쏟아 냈었지. 커피를 마시면서도 서로에 대한 호감과 긴장감을 표현하기에는 아마도 그 당시에는 없었던 단어인 "썸"이 적당할 것 같아. 당시 1초, 1분, 1시간이 오히려 느리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꼈어. 행복하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고통스러우면 반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서로에 대한 사랑의 크기가 초 단위로 폭발하다 보니 그 순간순간 생생하게 느껴진 감정 때문일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의 감정이 사랑이라고 확신했고,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드렸지. 나는 비혼 주의를 쉽게 버리고,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강한 믿음으로 하나둘 잘 준비했던 것 같아.
이역만리 타지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함께 운동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웠던 그때의 추억은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생각난다. 모든 순간이 마치 보정 어플을 이용하는 것처럼 예쁘고 아름다웠지. 파랗다 못해 시퍼런 하늘과 지중해, 강한 햇살이 내리쬐지만 따뜻한 초여름 날씨, 상큼하게 익어가는 라임과 올리브 나무의 향이 내 만성 비염을 뚫고 폐 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 정화를 시켜줬고, 그 힘든 나라의 사람들조차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해 준 것은 그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것 보다도 내 눈, 코, 입, 귀 모든 신체 감각 기관에 사랑의 정화 필터를 장착했기 때문일 거야.
가끔 내가 얘기하는 로망이 그때 형성된 것 같아. 어디든 당신과 함께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삶을 즐기는 것, 특히 아름다운 낯선 도시에서 당신과 함께 달리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할 것 같아 계속 상상하고, 그러다 보면웃음과눈물이함께하게 되더라.
모든 결혼 준비와 프러포즈까지 그곳에서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10월 23일4시에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예식을 했고, 그로부터 10년간 너무 행복했기에 그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려면 남은 생 안에 끝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의 10년은 당신과 아이들 눈에 비친 세상과 그속의 나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해. 그 다음 10년은 무엇을 할지 하나씩 만들어 보자.
결론은 어제저녁 #30, #32와 잘 놀아주는 당신에게 잠시 뾰로통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야. 퇴근하고 달리기만 하고 간다는 내 말에 석연찮게 대답하는 당신의 말투가 못내 아쉬웠어. 서로의 발전을 응원해 주기로 했는데, 사실 일찍 돌아와서 같이 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래서 빨리 가겠다는 신념으로달리니까 기존 기록을 경신했지 뭐야.
하여튼, 어제 일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이렇게 반성문과 함께 최신형 오븐을 진상하니 이제 좀 일어나서 놀러 나가자~~ 오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