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짓무르게 아름다운 장소
3화 작전지역(남부레바논)
작전지역 [作戰地域, Area of Operatios]
(출처: 네이버 군사용어사전)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지휘관에게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 지역이며, 지상과 해상에서 지역 구분시 사용됨.
관광을 목적으로 레바논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지역은 레바논부터 이스라엘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이나 사해가 있는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하거나 다른 관광거리가 넘치는 터키나 이집트로 여행한다. 그러다 보니 레바논과 관련된 여행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 레바논에 평화가 찾아오고 보다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여 좋은 여행글이 넘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있었던 남부 레바논 지역은 몇 개의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시(city)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 읍내 정도 수준이다. 그중에 티르는 다른 시보다 발전되어 중형마트도 있고, 삼성몰이라는 상호를 가진 상점도 하나 있었다. 삼성몰이라고 해봤자 간판만 달고 있고, 정식으로 수입해서 파는지 의심할 정도로 전자제품과 생활용품 등 이것저것을 모아놓고 판매했다. 티르시를 제외한 다른 마을인 압바시아, 샤브리아, 부르즈라할 등 작은 시는 수십여채 집들이 모여있고, 학교나 관공서, 모스크와 작은 상점 한 두 개가 모여서 군락을 형성했다. 주변을 자주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주민들과 접촉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마을마다 두세 번 정도 다녀왔다. 마을을 가는 도로는 중앙선이 없었다. 넓어야 2~3차로 도로 폭으로 마주오는 차가 교차할 때는 적당히 피해서 다녀야 했기 때문에 매번 운전할 때마다 긴장하며 안전에 유의했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오래되고 낡은 벤츠나 BMW를 타고 다녔는데, 운전 습관이 좋지 못해 사고 위험성이 높았다. 게다가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위험요소가 많았는데, 특히, IED(급조폭발물)을 우려하면서 긴장한 상태로 이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도로 이동시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주변 마을 중에는 팔레스타인인이 모여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도 몇 곳 있었다. 치안이 좋지 않아서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지나가면서 보면 과거 우리나라가 6.25 전쟁 이후 판자 촌이 즐비하는 사진과 흡사했다. 다 사람이 사는 곳일 텐데, 다가갈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한 번은 마을의 공동묘지를 들른 적이 있었다. 김영하 작가가 여행을 할 때 지역 묘지를 보고 온다는 말을 방송에서 접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의도해서 간 것은 아니고 우연히 마을을 지나다 통과했다. 빽빽한 비석들이 즐비했고, 비슷한 시기에 생을 마감한 누군지 모르는 영혼들이 묻혀있었다. 강한 음의 기운이 느껴지면서 스산하다는 생각이 들 때 갑자기 주변에서 마을 꼬마들이 몰려왔다. 급하게 달래주고 신속하게 차량으로 이동했던 기억이 난다. 함부로 어린이들과 접촉하는 것도 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난 결혼 전까지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그곳에서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어른들도 아이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외부활동이 적다 보니 기거하는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과 사무실 그리고 운동장과 식당이 주생활권이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멋진 장소가 많았고 눈으로만 보기 아까워서 사진으로도 몇 장 담았다. 특히, 2층 휴게실에서 해 질 녘 노을빛을 흠뻑 받으며 지중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감성이 한껏 올라서 노래가 나오곤 했다. 희한하게 그 장소에서는 사람들이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귀국하기 얼마 전 촬영한 영상을 다시 보니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해가 지는 순간 들려오는 내 운명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풍경에 더해지면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난다. 사무실 앞 데크도 좋았다. 넓지는 않지만 네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고, 정면에 보이는 운동장과 그 위로 보이는 라임나무가 가득한 숲, 한 시선 더 올라가면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멋진 풍광을 가로지르는 사잇길로 매일 아침 소풍가듯 털레털레 다가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내 운명이었다.
유독 아름다웠던 노을
다른 어느 곳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소는 성당이었다. 독실한 종교관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강압적으로 종교를 접하다 보니 질풍노도 시기에 반감이 생겼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게다가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 불교학교를 나왔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찾아가는 곳은 여전히 성당이다. 종교조차도 기회주의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결국 천국은 갈 수 없을 것이고, 배려심 깊은 주님께서 레바논에서라도 천국을 구경할 기회를 준 것 같다. 사실 성당은 임시 건물로 설치되었고 꼭 필요한 가구와 성경에 나오는 그림 몇 점만 걸려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보잘것없는 성당이 가볼 수 없는 천국같이 보였다. 성당 배경에는 항상 내 운명이 함께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가 있다 보니 시간은 충분했고 마음의 안정을 갖기 위해 주일마다 성당에 갔다. 종교적 신념보다 콩깍지가 씌어 천국과 천사를 마주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그리고, 아름다운 성당 한편에는 우리를 연결시키는 소중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HEAVEN 피아노 연주곡을 좋아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가 아닌 운명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귓가에 다가오는 순간이 좋았다. 운명의 손가락에 집중하는 찰나 시간은 멈췄고 주변 모든 형체는 사라졌다. 단지, 피아노 선율과 우리만 존재하는 마법이 일어났다.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진부한 말 '약속의 땅'이 나에게는 노을빛 가득한 노랫소리와 털레털레 다가오던 그림 같은 운명의 모습, 그리고 손가락으로 들려주는 피아노 선율로 기억한다.
* KBS 다큐 공감에서 방영한 영상이 포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