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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in Oct 22. 2023

'아이'쇼핑하는 시대

폭넓은 부모가 되자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어른들이 입는 기성 브랜드를 입기 시작했다. 



'~~키즈', '~~키드', '키드 포~~' 등등등



몇몇 브랜드만 론칭해 운영 중인 키즈라인을 너도 나도 론칭한 이유가 있을터였다. 



저출산이 새 트렌드가 되고, 우리도 중국처럼 많아봐야 두 명, 보통 한 명인 자녀들을 '소황제'처럼 받들기 시작했다.



내 아이에게 멋지고 예쁜, 또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히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훔쳐입히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수준에 맞게 자녀의 외모를 치장해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따질 수도 있겠다.



당연히 문제는 아니다.



다만, 문제'적'일 뿐이다.







사실, '아이'쇼핑 이라는 조어 가운데에는 어떤 말이 빠져있다.



아이를 '위한' 쇼핑



그런데 나는 꼭 '~를 위한'이라는 말을 넣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위한 쇼핑이 곧 '아이쇼핑'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



'엄연히 다른 것 아닌가? '



'아이에게 옷을 사입히는 것이, 왜 그 아이를 구매하는 행위인 아이쇼핑과 같은 것으로 취급받아야하는가?'





나는 백화점에서 잘 꾸며진 아이 손을 이끌고 걸어가는 부모들을 보면, 명품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과 그 모습이 겹쳐 보인다.








© neonbrand, 출처 Unsplash






명품이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지위를 높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듯, 2023현재 한국에서-특히 거주비와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과 몇몇 수도권에서-자녀출산과 양육은 그 자체로 '명품소비'와 유사한 효과가 있다.  



풀어서 말하면, 개인 혹은 가정이 경제적 능력이 되어야 자녀를 출산하고, 또 자본-경제적 자본 뿐만이 아닌, 사회적, 문화적, 신체적 자본 등을 총체적으로 뜻하는-이 있어야 그 자녀를 잘 양육하고 교육까지 할 수 있기에 2세 출산은 굉장히 비싼 사치재(명품)를 구매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노 머니 노 베이비 No money No baby'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이'를 위한 쇼핑이 곧 '아이쇼핑'인 이유는 자녀들을 자신들의 캐릭터로 치환하여 그들을 각종 양육 아이템과 교육서비스로 잘 빗어내는 과정이 꼭 캐릭터를 사서 그것을 치장하는 '쇼핑shopping'과 같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그 놀이를 해보진 않았다.



'인형옷 입히기'



하지만 사촌동생들이 모두 여자였기에, 옆에서 하고 있는 모습은 명절 때마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색의 머리, 화려한 상하의, 그리고 휘황찬란한 악세사리까지...



그 많은 것들을 조합해보며 자신들만의 인형극을 하는 여자형제들을 볼 때면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는 그래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체가 있기에 망정이지, 그 옛날에는 그야말로 종이인형이었고, 장신구들은 반짝이는 스티커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매번 새로나온 신상 스티커를 못사서 안달이었고, 한동안 명절 때마다 바뀐 인형의 옷을 보고 감탄해줘야했던 나는 꽤 오래 힘들었던 것 같다. 



내 눈에는 크게 의미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의



미없는 일에 감탄을 해주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드물다.








아무리 예쁘게 입히고, 머리색을 바꿔보아도, 가상의 공주님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요즘 부모들의 자본집약적인 자녀양육과 교육이 곧 '쇼핑', 더 나아가서는 '인형극'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배냇저고리부터 명품을 입히고, 돌잡이 때는 강제로 돈을 잡게 하며, 돈에 대한 관념이 무르익기 전에 그들 앞으로 주식계좌를 개설해 세뱃돈으로 그들이 좋아할만한 주식을 사준다. 학생이 되어서는 학원이라는 서비스로 또 하나의 '스티커'를 붙여주고는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명문대라는 '별'을 달기를 원한다. 



그 '별'을 달아야 조금이나마 편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어쩌면 이런 부모들의 '인형옷입히기'는 당연해보인다.



옷을 갖춰 입은, 그리고 '별'을 단 공주님들만 무대에 설 수 있다면, 나라도 그렇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인생은 일단 공주님들의 인형극이 아니며, 백번양보해서 인생을 무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곳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별'을 단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대 위만이 무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이것(명품) 저것(교육서비스) 사주면서 무대위의 삶만 삶처럼 보이게 해주는 폭좁은 부모가 되지 말자. 



삶은 무대 아래도 있고, 무대 뒤도 있고, 심지어 무대 위도 있다.



무대 아래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무대 뒤에는 스텝과 대기자가, 무대 위에는 연출자와 오페라의 유령(?)이 있다.(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마지막 막을 내린 '오페라의 유령'을 기억하며...)



https://www.nytimes.com/2023/04/16/theater/phantom-of-the-opera-final-performance.html





        With Cheers and Tears, ‘Phantom of the Opera’ Ends Record Broadway Run

The show’s record-breaking 35-year Broadway run came to an end on Sunday night. Its famous chandelier got a bow, and its composer, Andrew Lloyd Webber, spoke after its emotional final performance.

www.ny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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