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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Dec 11. 2016

첫눈

63화

예전에 아이들과 <할아버지는 바람 속에 있단다>라는 멋진 그림책을 가지고 북클럽을 했다.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하는 식의 동화인데, 그림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학습지의 몇가지 질문 중에 새로운 낱말 배우기가 있었는데, '그리움'이라는 낱말을 알려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들은 아직 그립다라는 말을 모른다. 하지만 그리다는 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사람 얼굴을 그리는 것처럼 보고싶고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어원이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랑이나 이별이나, 백 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 개의 사랑과 이별이 있듯이 그리움도 사람마다 느끼는 방법과 정의가 다를 테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결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몹시 낯선 기분이다. 마치 어제의 기억이 삭제된 듯 하다. 나를 모르겠는 기분이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거다. 뭘 해야할 지... 잠깐 생각한다. 오늘은... 일요일이구나. 일어나야지.. 그러고 일어나서 약간의 추위를 즐기며 나갈 채비를 하고, 대문을 나서면 언제나 생각보다 덜 추워서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좋아진다는 건,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거다. 겨우.


생각해본다. 과정과, 선택과, 결말, 여파, 그런 것들이다. 세상은 일시적이고 순간적이어서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하다. 첫눈처럼. 매우 짧고 흔적도 남지 않는. 사라지기 때문에,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다른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을까. 영원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밤에는 늘 춤을 추고 싶다.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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