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편지
요시코 할머니의 장례식. 조문객들이 찾아온다. 친족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아야코, 타로, 하나, 스즈가 나란히 앉아 있다. 조문객들의 흐름이 끊기고, 하나는 요시코의 영정을 조용히 바라본다.
관 속에 지금 당장이라도 눈을 뜰 것처럼 누워있는 요시코 할머니.
하나 (생각):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예전엔 커 보였던 할머니의 손이나 발, 몸…… 그게 이렇게 작아졌을 줄은 몰랐다.'
통곡이 멎은 후, 요시코의 영정 앞에 선 하나와 스즈.
스즈: "언니."
하나: "응?"
스즈: "할머니, 언제 이렇게 작아지셨을까?"
하나: "음…… 우리가 커진 거겠지?"
스즈: "그렇구나…… 그렇네."
장례식장의 창문에서 별이 보인다.
하나: "오늘은 별이 아름답네."
스즈: "헤헤, 천국에서 여기가 잘 보이겠지. 할머니, 보고 계실까? 이렇게 큰 손주들을요~!"
하나: "스스로 귀엽다고 하네?"
스즈: "어~? 난 말해!"
하나·스즈: (웃음소리)
스즈: "아, 맞다. 언니, 이거."
스즈가 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낸다.
하나: "그거 뭐야? 편지?"
스즈: "응. 이발소의 대머리 할아버지가 말이야, 이걸 할머니 관에 넣어달래."
하나: "또 대머리 할아버지라고 부르네."
스즈: "그게 사실이잖아. ……언니, 기억나?"
하나: "응?"
스즈: "하나, 둘……."
하나: "……왼쪽부터 벗겨졌네?"
스즈: "하하! 기억하네!"
하나: "그럼, 기억하지. 너랑 몇 번이나 했는데."
스즈: "언니도 좋아했잖아!"
하나: "에이~ 그건 너지. 할머니한테도 몇 번이나 해달라고 했잖아. 그때마다 이발소 아저씨 이야기하고……. 그 편지, 잊기 전에 관에 넣어두는 게 좋겠어."
스즈: "응? ……그래."
하나: "……너 설마."
스즈: "……읽어볼까?"
하나: "안 돼. 할머니께 드리는 편지잖아. 함부로 보면 안 돼!"
스즈: "하지만 궁금하잖아. 조금만 보기라도……."
하나: "안 돼~. 할머니가 보고 계시잖아."
스즈: "보고 계시지 않아."
하나: "너 아까 천국에서 보고 계신다며!"
스즈: "에이~ 안 보고 계셔. 저기 봐봐, 지금 구름이 가려서……."
하나: "정말, 너란 애는…….”
스즈: “언니도 궁금하지 않아?”
하나: “뭐가?”
스즈: “우리 할머니한테 보낸 동네 이발소 할아버지의 편지 말이야. 그거 혹시... 러브레터 아니야?”
하나: “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스즈: “아니라곤 할 수 없잖아? 옛날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그런 거 흔하지 않아? 낭만적이고...
음~ 묘하게 가슴 찡한 그런 이야기 말이야.”
하나: “그런 건 학교에서 배우는 걸로 충분하지 않아?”
스즈: “아, 언니도 참. 학교에서 그런 건 가르쳐주지도 않아. 맨날 시험 공부만 하라잖아. 그런데 말이야,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런 생생한 현실, 그리고 이 로맨스야말로 내가 찾던 거지!”
하나: “로맨스라니... 알겠어, 알겠으니까 조금만. 정말 살짝 엿보기만 하고, 다시 할머니 유품에 넣자.”
스즈: “역시 언니! 그렇게 나와야지!”
(스즈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낸다.)
하나 (생각): “동네 이발소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보낸 편지. 나도 관심이 없진 않았다. 스즈가 말한 것처럼 상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의 작은 호기심은 결국, 할머니의 크나큰 비밀을 밝혀내는 계기가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