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딴따라 이야기
음악 외주 작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고객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난감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욕심은 많지만 주문이 명확하지 않은 고객입니다.
특히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만을 사용하여 원하는 바를 전달하려는 경우, 의사소통이 어려워지고 작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고객들은 크게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뉩니다.
주문자: "아~ 해놓으신 베이스 소리가 마음에 안 드는데, 수정 좀 가능할까요?"
나: "네! 어떤 방향으로 수정해 드릴까요?"
주문자: "아, 요즘 좋은 베이스 소리 많잖아요…"
나: "……네?"
주문자: "아니, 요즘 노래들 들어보면 좋은 악기 소리 많잖아요."
나: "혹시 마음에 드는 베이스 톤이 있는 곡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주문자: "그게 뭐 한두 곡도 아니고, 그냥 요즘 유행하는 베이스 소리요."
나: "?????? (그게 뭐지??)"
➡ 결과: 50% 환불 완료
이 유형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최상의 결과물을 기대한다는 점입니다.
음악 작업은 디테일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과정인데, "알아서 잘 해주세요"라는 주문만으로는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주문자: "아련한 느낌의 피아노 선율과 사색에 잠기기 좋은 첼로 연주를 깔아주세요. 편곡비는 5만 원입니다."
나: "……(아련함과 사색에 잠긴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심지어 편곡비가 5만 원????)"
➡ 결과: 수주 거부
문제는 감성적인 표현이 개인마다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게 '아련함'이란 강아지가 하품하는 순간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석양이 지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슬픔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의 슬픔과, 여행을 가지 못했을 때, 비트코인을 저점에서 구매하지 못한 슬픔은 그 강도와 표현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이런 경우, 음악가가 고객의 감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원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비슷한 느낌의 곡을 예시로 제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입니다.
주문자: "트로트인데, 요즘 유행하는 EDM처럼 만들어주세요."
나: "혹시 생각하시는 EDM 스타일의 레퍼런스가 있을까요?"
(작곡된 멜로디를 들어보니 굉장히 전통적인 트로트 스타일임… 과연 어떻게 편곡하라는 걸까?)
주문자: "아뇨. 그냥 좋기만 하면 됩니다."
나: "장르를 섞는 작업이라 방향성을 정하는 것이 중요해서요. 특정한 구성을 원하시면 설명해 주시거나,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를 공유해 주실 수 있나요?"
주문자: "트로트는 트로트고, EDM은 EDM인데, 무슨 구성이 더 필요해요? 새로운 시도를 안 해서 못하는 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못하는 거 아닙니까?"
➡ 결과: 수주 거부 & 환불 완료
이러한 요청이 어려운 이유는, 트로트와 EDM이라는 전혀 다른 장르를 결합하면서도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장르를 혼합하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닙니다.
어떤 요소를 살리고, 어떤 요소를 변형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면 어느 정도의 방향성과 참고할 만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주문자: "보내드린 가이드대로 작업해 주세요."
(곡 구성, 악기 구성, 템포, 키, 비슷한 장르 및 레퍼런스 3곡 포함된 작업 지시서가 제공됨)
➡ 결과: 해피 엔딩
이러한 고객은 작업자가 원하는 결과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충분히 제공했습니다.
그만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며,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확률도 높아집니다.
주문자: "제가 러프하게 편곡한 버전을 보내드렸습니다. 이 느낌을 기반으로 다듬어주시면 됩니다."
(러프 편곡 + 비슷한 장르의 레퍼런스 3곡 포함된 작업 지시서 제공됨)
➡ 결과: 해피 엔딩
이러한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직접 표현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전문가의 손길을 더해 완성도를 높이려 합니다.
이런 경우, 작업자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으며, 결과물도 고객이 기대한 방향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 사운드 믹싱은 다른 외주 작업과 다르게, 요청 사항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5분 32초, 여자 배우 대사 20% 정도만 볼륨 올려주세요."
"7분 2초, 발자국 소리 추가해 주세요."
"12분 7초, 시계 초침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대사 볼륨과 같아지도록 조정해 주세요."
"3분 36초, 남자 배우의 목소리에 동굴 울림 효과를 넣어주세요."
혹은 특정 느낌을 원할 경우 유사한 영화 레퍼런스를 제공
➡ 결과: 완벽한 소통. 영화 사운드는 내 천직이 아닌가 싶다.
이처럼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있는 작업은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결과물도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악 외주 작업을 원활하게 진행하려면, 감정이나 감성적인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인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주문해야 합니다.
✅ "이런 분위기와 스타일의 곡을 원합니다." → (레퍼런스 곡 3곡 이상 첨부)
✅ "여기 이런 효과를 넣어주세요." → (예시를 제공하거나, 구체적인 설명 첨부)
"아련한 느낌", "웅장한 분위기", "처절함이 느껴지는 곡", "신나는 곡" 같은 추상적인 표현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상상하는 결과물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면, 직접 러프한 버전을 만들어 보거나, 참고할 만한 예시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문자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작업자는 오랜 시간 답답함 속에서 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느낌을 원합니다"가 아니라, "이런 작품들을 레퍼런스로 삼아 주세요"라고 말해 주세요.
그것이 음악 외주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