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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커뮤니티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

음악 딴따라 이야기

by 정이안

나의 ‘작린이’ 시절

(작린이: ‘작곡’ + ‘어린이’의 합성어로, 작곡 초보자를 의미함.)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마치 무협지 속 무림의 비급을 찾아다니듯, 음악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귀중한 정보를 얻으려 했다.
‘어딘가에 음악 시장을 뚫을 비기가 존재할 것이다.’
‘그 비밀을 알게 되면 나도 업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음악 커뮤니티의 정보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그 한계와, 음악 커뮤니티를 멀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음악 커뮤니티의 정보는 한계가 있다

음악 커뮤니티는 음악을 만드는 기술적인 정보를 얻는 데에는 유용하다.

DAW를 다루는 방법

코드 진행에 대한 기초 이론

특정 악기나 플러그인을 사용하는 팁

이런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독학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DAW: Digital Audio Workstation. 디지털 음악 제작, 녹음, 편집, 믹싱 등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곡을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음악이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되고, 길거리에서 흘러나오고, 유명 가수가 내 곡을 부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지점에서 음악 커뮤니티의 한계가 명확해진다.


음악 커뮤니티는 음악 ‘비즈니스’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어떤 경로를 통해 곡을 판매할 수 있는지,
인맥을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퍼블리셔 계약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이런 중요한 정보는 철저히 함구된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 시장에서는 인맥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획사의 A&R, 음반 제작부와의 커넥션이 없으면 1:1로 곡을 팔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업계에서 인맥이 없는 작곡가 지망생이 곡을 팔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퍼블리셔’(작곡가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음악 커뮤니티에서는 퍼블리셔 계약이 무엇인지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


나는 이 사실을 음악을 시작하고 10년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기획사에 직접 발품을 팔면서 곡을 파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기획사에 보내도 내 곡은 들려지지 않는다.
인맥이 없으면 A&R은 내 메일조차 열어보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퍼블리셔’라는 시스템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곡을 보낼 때마다 계약을 따낼 수 있었고, 그제야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해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만약 이 사실을 10년 전에 알았다면?
나는 기획사에 메일을 보내며 허비했던 시간을 아꼈을 것이고,
퍼블리셔 계약이 되지 않는다면 냉정하게 음악을 접는 선택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음악 커뮤니티에서 흔히 듣는 ‘마법의 문장’들

이러한 현실적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대신, 음악 커뮤니티에서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말들이 반복된다.


"실력을 키우면 언젠가는 누군가 알아줍니다."

"음악이 좋으면 차트 인도 꿈이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 업계에서 ‘잘 만든다’는 것은 기본 전제다.
이 업계에는 이미 잘 만드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 안에서 내가 돋보이려면, 그냥 돈을 써야 한다.


레슨비를 투자해서 선생님의 인맥과 기회를 얻거나,

마케팅 비용을 사용해 싱어송라이터로서 스스로를 브랜딩하거나,

생계 유지 자금을 마련해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당신은 매일 10만개의 신곡을 듣는가?


현재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약 10만개의 앨범이 발매된다.

(참고 기준: UCI 코드 발급 사이트로 대한민국에서 앨범을 발매하려면 무조건 등록되어야 하는 코드 발급 사이트)
타이틀곡 기준으로도 하루 100,000곡이 신곡으로 나온다.


곡 하나가 평균 3분이라고 가정할 때에,
신곡을 전부 들으려면 300,000분, 거의 208일이 걸린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하루 100,000곡을 다 들어보는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트에 있는 곡, 유명한 가수의 노래, 추천받은 노래만 듣는다.

대중은 더욱 냉정하다.
대중이 내 음악을 들을 확률은 ‘내 음악이 우연히 발견될 가능성’에 맡겨두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음악을 대중에게 들려주려면?

내가 유명해지거나

이미 유명한 사람과 함께 작업하거나

유명한 인맥을 활용하거나

광고.마케팅 비용을 ROI (투자 대비 수익율)가 나올 때까지 태우거나


그리고 사실, 위 예시에서 3번까지 도달하면 ‘인맥’은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다.

(오히려 나의 유명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들러붙게 된다.)
저때부터 중요한 것은 ‘대중이 나를 유명하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 유행에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하고, 모르면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음악 커뮤니티에서 흔히 듣는 말에 대한 반박

음악 커뮤니티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음악만 좋으면 누군가는 알아준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세계적인 예술가 뱅크시는 뉴욕 한복판에서
자신의 작품을 무명 화가의 그림처럼 60달러에 판매하는 실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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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하루 동안 단, 8명만이 그림을 구매했다.


하지만 다음 날, 뱅크시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당 작품들이 실제로 ‘뱅크시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전날 60달러에 팔렸던 그림은 하루 만에 10억 원의 가치로 뛰어올랐다.

2.png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결론은 단순하다.


“작품이 좋아서 대중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결정된다.”


따라서 음악 커뮤니티에서 흔히 들리는 ‘음악만 좋으면 성공한다’는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뱅크시의 그림이 너무 훌륭하고 보는 사람들마다 감탄을 해서 그런 유명세와 가치를 얻은 것이라면

60달러에 판매를 할 때, 단 몇분만에 매진됐어야 정상 아닐까?

즉, 해당 실사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좋으니까 대중들이 선택하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닌 누가 했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결정되고 대중들은 열광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 커뮤니티에서 하는 ‘음악만 좋으면 누군가는 알아줍니다’ 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결국 공산품인 스피커, 악기, 장비들인데 무슨 자기만 아는 맛집 노하우 인양,

감추는 것도 안 했으면 좋겠고.

음악 하는 것을 국운을 짊어진 독립투사처럼 흡사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듯이

말 좀 안 하면 좋겠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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