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3관. 커피
한번 상상해 보자.
한낮 32도가 넘는 날에 외부 회의를 위해 길을 나섰다. 회사 앞 정류장까지 걸어가 5분 정도 남은 버스를 기다려 탔는데 유난히 사람이 많은 날이다. 에어컨을 틀었는데 어쩐지 바람이 시원치 않다. 가까스로 하차하여 지하철을 갈아타고 회의 장소에 도착했다. 주최자는 마실 것을 준비해 준다며 커피 괜찮냐고 한다.
점심 혈당 쇼크로 카페인 수혈이 필요한 당신,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 중 어떤 걸 마실 것인가?
나는 더죽뜨아(더워 죽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다. 개인적으로 추위를 잘 타고 더위를 안타는 체질이라 한여름 카페가 추운 건 사실이지만 이와 별개로 아이스는 커피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맛있다(delicious)가 아니라 맛이 있다(有)는 것과 없다(無)는 기준에서 이야기다. 얼음의 차가움에 커피 맛도 얼어버린 것 같달까. 내가 아이스를 마시는 건 여름에 현장에서 밥 대신 열량과 수분 충전을 할 때다.
유독 한국에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많은데 그 이유에 대해 이해가 가는 것들을 추려보았다. 우선, 대부분의 지반이 화강암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화강암이 불순물을 걸러주는 정수기 역할을 하여 자연 상태의 물을 그대로 마셔도 문제가 없어 예로부터 우물물이나 강물, 지하수 같은 차가운 물을 마셔왔다. 물론 지금은 어려워졌지만, 산에서 약숫물을 마셔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에선 ‘커피’가 사교를 위한 사회적 음료라기보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한 기능성 음료에 가까워 카페인을 빠르게 섭취하고 일하거나 공부하면서 마실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를 선호한다. ‘빨리빨리’ 문화로 생겨난 한국 특유의 커피문화다. 프랑스 언론 AFP통신에서도 ‘얼죽아’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한국을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로 자리 잡았다.
반대로 뜨거운 커피만 마시는 나라도 있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가 그렇다. 사실 이탈리아인들은 아메리카노를 구정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싫어하는데, 거기에 얼음까지 넣어 먹으니 얼마나 싫을까. 6월 초여름쯤 이탈리아 여행을 했는데 아침마다 현지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크루아상을 먹었다. 그러다 보면 출근길에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고 가는 직장인을 볼 수 있는데 추출부터 마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마 5분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인보다 카페인을 빠르게 섭취하는 건 그들이었는지 모른다.
점점 동남아처럼 고온다습한 기후로 변해가고 매년 역대 최고 기온을 갱신하고 있다. 아직 5월인데도 햇살은 따갑고 조금만 걷다 보면 땀이 난다. 기후마저 얼죽아를 종용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커피를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