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런 젊음들
갓 스무살이 되었거나 그보다 두어살 더 많은,
시퍼런 젊음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대학 밴드 동아리에 대한 단상.
지금은 유명 연예기획사의 프로듀서가 됐다던
과선배의 손에 이끌려 대학 건물 한 구석에 있던 밴드실에 들어갔다.
모든 동아리가 그렇듯 신입생 입학 시즌에는 어떻게든 중생을 구워 삶아 가입신청서를 쓰게 해야만 했을 테다.
"다룰 줄 아는 악기는 있어?"
"어.. 바이올린 6년 정도 배우긴 했었는데..."
"그거 말고 기타나 드럼 이런 건?"
예쁘고 깨끗하지 않은 세상 모든 것에 질색했던 당시의 나에게는
시커먼 그래피티로 잔뜩 칠해진 밴드 동아리실 벽면이라든가,
한 마디만 계속해서 반복 연주하는 기타 소리 같은 건 정말 신경 긁는 일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일찍 시작한 덕분에 자연스럽게 과 활동과는 멀어졌다.
그래서 공강이나 방과 후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울며겨자먹기로 동아리방을 찾아가곤 했다.
그곳에는 엉망으로 젊은 대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뽀글뽀글한 히피펌을 한 여자애,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귀에 이어폰을 끼운 채 그린데이만 주구장창 듣던 이상한 남자애,
락페스티벌에서 며칠 째 못 씻은 경험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비쩍 마른 선배,
지저분한 동아리실에서 꼭 풀정장 차림에 정좌를 틀고 앉아 있는 졸업반 선배,
사실은 뮤지션 남자친구가 갖고 싶어 밴드 동아리에 가입한 건 아닐까 의심이 되는 시끄러운 여자애 등등.
이러저러한 개인사정과 뻔한 심경 변화로 인해 동아리 활동은 겨우 1년을 채우고 그만 뒀지만,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면 가끔씩 그때 생각이 난다.
1학년이 끝나자마자 홀연히 유럽으로 혼자 이민 간 히피펌 소녀는,
내가 '그린데이 밖에 안 듣냐'며 핀잔을 주었던 그린데이 홀릭 소년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전히 꼬불거리는 머리를 가졌을까, 아직도 그린데이를 들을까.
나는 이제 예쁘고 깨끗한 것만 취사선택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는데,
엉망으로 어렸던 소년 소녀들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요!